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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한국의 아널드~

정석환 |2006.07.08 15:41
조회 147 |추천 0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이민자로 꼽히는 사람 중 하나인 아널드 슈워제네거(59).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188㎝, 105.7㎏의 체격을 자랑하는 세계최고의 보디빌더였다. 70년대 최고권위의 프로 보디빌더 선발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를 7번이나 차지한 그 는 지금도 보디빌딩 계에서는 ‘전설’로 남아 있다. 전성기 때 32인치나 되는 이두박근을 자랑하던 슈워제네거였지만 고향인 오 스트리아 시골에서는 큰 키에 야윈 체격,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 으로 ‘왕따’를 당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친구들의 놀림 에서 벗어나고 싶어 바벨과 덤벨을 만졌고 드디어 우람하고 예술적인 선을 이루는 근육 덩어리를 얻을 수 있었다.

바뀐 외모는 그의 성격까지 개조, 내성적이었던 슈워제네거를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만들었다.

[사진=문화일보]
1970년 ‘뉴욕의 헤라클레스’로 데뷔했고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크게 성공, 77년 골든글로브 남자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케네디가의 여성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 혼해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한 그는 2003년에는 캘리포니아 주지 사 보궐선거에서 당선, 정치가로 변모했다.

슈워제네거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데는 당당해진 체격에서 나온 자신감이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창용찬(51) 대한보디빌딩협회 홍보이사는 ‘머슬’ 등 미국 보디빌딩잡지에 나온 슈워제네거의 화보를 체육관 벽에 걸어 놓고 운동하던 세대. 평범한 고교생이었던 그는 우연히 보디빌딩을 접한 후 그에 몰두한 끝에 82년 미스터 코리아 타이틀을 획득했다. 16년간 보디빌딩 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90년 은퇴한 후 우연한 기회에 마라톤에 입문, ‘달리는 터미네이터’로 유명해졌다.

지난 4일 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무교동 체육회관 빌딩에서 창용찬씨를 만났다.

슈워제네거처럼 청소년기에 체격이 왜소했는지 궁금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요. 구기종목보다는 개인종목이 좋았고 특히 복싱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 고1 때 6개월간 복싱도장에 등록해 배운 후 그에게 신인선수권대회에 나갔는데 첫 판에 다운을 당하고 졌어요. 관장이 ‘복싱은 안 되겠다. 너는 가슴과 등 근 육이 좋으니 차라리 보디빌딩을 해보라’고 해서 보디빌딩에 입문하게 됐지요.”

키가 171㎝이니 경량급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70~80㎏이 겨루는 미들급이었단다. “82년 미스터 코리아 일반부 미들급에서 우승한 후 5체급 우승자들이 경합을 벌이는 미스터 코리아 선발전에 나가 대상을 받았지요. 체급별 우승자에게는 미스터 코리아라는 칭호를 주지 않지요.”

보디빌딩은 일반인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혹독한 자기관리를 필요로 한다. “다른 종목은 시즌이 있지만 보디빌딩 선수는 1년 12달이 모두 시즌이나 마찬가집니다. 짜고 매운 것도 못 먹고 술도 하지 못해요. 따라서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죠. 사회생활이 있을 수 없어요.”

그는 17년간 수도사와 같은 선수생활을 했다. “결혼 19년차인데 지금도 습관이 돼서 마누라와 각방을 써요. 물론 혼전에 보디빌딩의 생활을 말해 주고 이해를 구했지요.”

보디빌딩에서 그토록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성취감과 희열 때문이었죠. 보디빌딩은 아주 정직한 운 동입니다. 며칠 게을리 하면 금방 표가 나지요. 대신 정확하게 훈련을 하면 나날이 근육의 ‘벌크(크기)’와 ‘데퍼니션(명확성)’이 달라지지요.”

보디빌딩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35세였던 1990년. 역도연맹과 분리된 보디빌딩협회 일을 맡게 됐고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보디빌더들은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지구력이 좋지 않고 순환기 계통이 약해요. 98년 화장실에서 졸도를 했어요.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1년 사이 4번이나 쓰러지자 정밀진단을 받았죠. 약간의 부정맥과 고혈압 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유산소 운동인 마라톤을 해야겠다고 작정했어요. ”

보디빌딩과 마라톤은 극과 극의 스포츠. 선수 시절 창씨는 근육 이 준다고 장거리를 달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분당의 집 부 근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부정맥이 싹 없어지고 혈압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아예 분당의 ‘검푸 마라톤클럽’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시작했지요. 풀코스에는 2001년 처음 도전했는데 4시간16분21초에 주파했어요.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것은 그렇게 가꿔왔던 근육이었죠. 근육이 크면 피로물질인 젖산 분비도 많아 회복이 더뎌요. 처음 풀코스를 뛰고 3~4일간 움직이지도 못했지요. 또 팔이 옷에 쓸려 까지는 바람에 아예 팔을 들고 어기적거리며 뛰 었고 허벅지근육끼리 부딪혀 사타구니가 까지는 등 고통이 심했 지요.”

하지만 마라톤 입문 1년 만에 88㎏까지 나갔던 체중이 10㎏ 이상 줄었고 무엇보다 피로가 사라졌다. ‘풀코스를 1번만 뛰자’고 시작했으나 보스턴마라톤을 포함해 16차례나 완주하면서 평지를 달리는 마라톤을 뭔가 양념이 빠진 음식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보디빌딩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도전심이 살아났는지 울트라마라톤에 눈이 갔어요. 65㎞, 70㎞, 100㎞ 울트라 마라톤을 소화했고 대관령 등지에서 산악 달리기를 즐겼지요. 그러다 2005년 사 하라사막마라톤이 있다는 알게 되자 먹잇감을 본 맹수처럼 ‘아 드레날린’이 쏟아지더군요.”

사하라사막마라톤은 총 250㎞의 구간을 6일간 뛴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40도나 되고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이 이어지다 자갈밭도 나온다. 게다가 80㎞ 구간부터는 시각장애인인 송경태(44·전북 시각장애도서관 관장)씨의 눈이 되어 완주를 돕는 도우미의 임무도 주어졌다.

“덩치는 큰 게 탈락했다는 손가락질이 무서워 ‘악’으로 완주 했어요. 뛰면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 하지만 사막마라톤은 보디빌딩과 같은 ‘마약’이었다. 그는 지난달 고비사막마라톤에 다시 도전했고 마스터스클래스에서 1위에 올랐다.

“고비사막마라톤은 지도상으로는 총 구간이 250㎞인데 실제 주 파구간은 500㎞는 됐을 거예요. 마라톤이라기보다는 ‘어드벤처 서바이벌 대회’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립디다.

4000m 고도의 산악 지대, 계곡, 호수, 사구 지역을 통과하는 데다 낮 평균 기온이 40~50도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밤에는 5 도 이하로 떨어지고. 구급약품 등 장비 15㎏을 배낭에 담고 외부 지원 없이 5박6일간 달리는데 6개 구간 중 80㎞ 이상을 논스톱 으로 달리는 지옥 코스가 특히 힘들었어요. 조직위원회로부터 지급되는 건 하루 생수 10통이 전부였어요.”

“사막은 그 풍광이 너무 아름답고 생과 사의 갈림길이라는 극한적인 이미지까지 겹쳐 묘한 매력을 지닌 곳”이라고 말하는 품에서 세계3대 사막마라톤의 마지막코스인 아타카마사막마라톤, 그 리고 3대 사막마라톤 완주자에게만 참가자격이 주어지는 남극마 라톤에 도전할 뜻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펼치는보디빌딩 예찬론을 듣다 보니 그는 역시 아직 보디빌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보디빌딩과 마라톤이 상극인 스포츠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다 닿아 있는 거예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도 있 지 않습니까. 지금도 마라토너라기에는 너무 무거운 제가 부상을 당하지 않고 뛸 수 있는 것은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입니 다.

마라토너도 상하체를 고루 웨이트 훈련으로 단련해야 부상을 당 하지 않아요. 웨이트 훈련은 모든 운동의 기본입니다. 국민 모두가 가벼운 웨이트 훈련이라도 정기적으로 한다면 신체적인 건강 은 물론 체력적인 자신감에서 오는 정신적 건강도 좋아져 아마 우리나라 전체 의료비 중 몇 조는 절약될 것입니다. ”

‘달리는 터미네이터’창용찬씨는…

1955년 12월 5일 충남 강경에서 2남4녀의 차남으로 출생. 경희 대학교 체육대학(75학번) 졸업. 82년 미스터코리아. 현재 대한보디빌딩협회 상임이사 및 아시아 및 세계보디빌딩협회 국제심판. 대한역도연맹 최우수선수상, 체육포장, 체육훈장 백마장 수상. 세계보디빌딩협회 회장을 역임한 조 웨이더(미국)가 만드는 스포츠보충식품을 수입판매하는 ㈜한국 스포테크 대표이사이자 프라임 헬스·골프클럽 대표로 재직 중.

99년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입문. 풀코스 18회 완주, 울트라 마라톤 3회 완주, 사하라, 고비사막 레이스 완주. 분당검푸마라톤회 장을 맡고 있다. 87년 11월 결혼한 이형의씨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토탈 보디빌딩, 덤벨 다이어트 등 보디빌딩과 마라톤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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