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창성동, 경복궁 서문쪽 청와대 삼거리 앞 골목길에 위치한 미술관이 있다. Gallery KunstDoc(갤러리 쿤스트독, 홈피:www.kunstdoc.com)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을 내건 미술관의 이름부터 심상찮더니 거기서 의미있는 실험적 운동이 일단의 미술가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어 더욱 주목을 끈다.
KunstDoc이라는 분명 독일어일 수 밖에 없는 이 갤러리의 이름이 주는 의미가 생소한데, 처음 접했을 때 Kunst는 예술 또는 미술이라는 단어 임에 틀림없다고 느꼈지만 문제는 Doc이라는 낯선 접미사로 쓰인 단어의 의미를 찾는 것이었다. 박사라는 의미의 Doctoral의 줄임말일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쿤스트독 갤러리에는 부설 미술연구소도 잇고 미학 박사도 있으니 그럴 법 했다.
그러나 갤러리 관계자로부터 Doc를 Dog으로 하고 싶었다는 농담반 진담반의 얘기를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미술의 개(KunstDog)? 2006 마르쿠스 트레터-쿤스트하우스 브레겐즈의 '진흙탕 실' (Schlammsaal)에서 찍은 그룹 '젤리틴'의 기념사진이 떠오른다. 아랫도리 없이 윗도리만, 윗도리 없이 아랫도리만 입은 남자들도 있지만, 중요한 부분만 진흙으로 가린 나체의 남녀들도 함께 섞여있다. 중요한 부분을 가리지 않은 용감한 나체들도 있다. 남들이 벗든 말든 입을 거 다 입고 조형물 꼭대기에 자신있게 올라가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언뜻보면 이상한 남녀들이 모여서 광란의 시간을 보낸 후 한 장의 사진을 추억으로 남긴 것도 같지만, (방구쟁이로 불리는) 일단의 전위예술가들에게 있어 이 한 장의 사진은 '예술'이다.
그것이 쿤스트독에 가까운 예술적 표현은 아닐까? 쿤스트독의 운영자 그룹은 앞서도 말했지만 독일 유학 경험을 가진 일단의 중견 화가들이며, 그들이 표방하는 것은 나름대로 재능도 있고, 경력도 못지 않은 채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한국화단의 보이지 않는 벽을 깨는 운동이고 실험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한국화단은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한다. 철저한 도제식 교육으로 인해 뛰어난 재능보다는 기성세대가 인정하는 순치된 맛이 있어야 하고, 그 맛은 화단과 공생하는 화랑의 입맛에도 맞아야 한다. 천재성이나 창발력은 그 다음 담론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런 틀 속에 들어갈 길이 없는 유학생 그룹, 그것도 한국 화단의 변방(?)인 독일 유학생이 느끼는 비애는 어땠을까?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깨고 싶은 벽을 깰 기회가 우연히 찾아온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 독지가가 결코 작지 않은 전시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팔리지 않는 재능을 제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남 못지 않은 재능과 결코 지기 싫은 독창적 예술성을 뽐낼 공간을 얻은 것이다. 거기다 거금은 아니지만 1, 2만원씩 매달 정기적이고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납부하거나,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온라인 후원회 클럽에서 지원활동을 벌이면서 작가들과의 인적 교류를 하는 자발적 후원회가 조직되었고 그 후원회장이라는 중책을 내게 맡게 되고 보니 나 또한 그들만큼이나 중책을 느끼게 된다.
사실 그들이 아무리 사회에서 높은 벽을 느끼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강의도 하고 여러 화랑의 큐레이터도 하는 그들이 전시공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손가락 빨 처지도 아니지만 자발적이고 무조건적인 전시공간의 제공이나 후원금을 납부하겠다는 지원시스템이야말로 한국화단의 거대한 벽을 돌파하는 원동력으로 그들은 본 것이다. 그래서 KunstDog으로 짓고 싶었던 이름도 다소 순화시켜 KunstDoc로까지 양보했으리라.
독일 사회에서 이러한 현대미술의 생활속 구현이 가능했던 것은 쿤스트 페어라인(Kunstverein:미술협회)이라는 오랜 문화적 전통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술협회라고 번역은 되지만 사실은 독일식 작가지원시스템을 말하는 쿤스트페어라인의 그런 모습을 유학시절 다양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접했던 독일 유학파 중견 예술가들이 오늘 쿤스트독(KunstDoc)을 천명하고 나섰다. 청와대 바로 지근이며 4대문안 중심지역임에도 이른바 개발제한의 피해로 인해 낙후지역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창성동 한켠에서, 5천년 전통의 문화국가라는 자위에도 불구하고 후진적 문화예술 정책과 교육, 생활양식을 가진 문화변방국가에서 선진적 예술문화 전개방식을 펼쳐야 하는 중압감으로 인해 쿤스트페어라인과 유사한, 그러나 더욱 바닥부터 다지기 위한 쿤스트독(KunstDog)이 필요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 결코 가볍지 않은 걸음이 후원회장을 졸지에 맡게 된 내 어깨마저 무겁게 한다. 자발적으로 갤러리 공간을 제공한 독지가, 작품 활동에 다소 희생이 되더라도 스스로 갤러리 운영을 맡아 후배 신인작가들의 전시활동을 돕고, 후원회원들의 교육 및 지역사회를 위한 인적교류를 하고자하는 운영위원, 그리고 물심양면에서 작가와 갤러리 지원에 나서는 자발적 후원회 조직으로 탄탄한 삼각체제를 이루는 가운데, 내가 운영하는 [갤러리 쿤스트독 후원회] 싸이클럽(club.cyworld.com/kunstdoc)이그 한축을 당당히 맡게 되었으니 40에 시작하는 운동이 상쾌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