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만을 위한 단 한번의 특별한 공연에 초대합니다.’》
발레 팬들의, 발레 팬들을 위한, 그리고 발레 팬들에 의한 ‘특별한’ 발레 공연 한 편이 서울 정동극장 무대에 올랐다. 15일 오후 4시 ‘알렉세이 투르코 발레 클래스 콘서트&갈라’는 그렇게 단 한차례 공연된 한정판 공연이었다.
지난달 내한공연을 펼쳤던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공연시 폭발적인 표현력으로 한국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솔리스트 '알렉세이 투르코'를 팬들이 직접 초청하여 성사된 이번 공연에서 알렉세이는 유니버셜 발레단원 5명과 함께 현대발레의 진수를 보였다.
이 공연이 ‘특별한’ 까닭은 공연기획사가 아닌 순수한 발레 팬들이 무용수 초청부터, 비자 문제, 극장 대관, 팸플릿 인쇄까지 직접 맡아 성사시킨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투르코 역시 한국의 발레 팬들이 자신의 춤을 다시 보고 싶어 십시일반으로 초청공연을 기획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개런티를 평소의 절반 정도로 ‘자진 삭감’했다고 한다.
○ 발레를 사랑하는 15명의 ‘엔젤’
공연을 성사시킨 발레 팬들은 이번 공연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박유림(30) 씨와 그를 돕는 14명의 후원 멤버 모임인 ‘엔젤’이다. 발레 전공자로 경기 성남시에서 어린이 발레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 씨만이 ‘발레’와 연관된 직업을 갖고 있을 뿐 나머지 14명은 모두 발레를 전공하지 않은 마니아들이다.
직업도 박물관 직원부터 학생, 디자이너, 회사원 등인 20대 초반∼30대 여성들로 구성된 엔젤은 “지난달 초 에이프만 발레단 내한 공연 팬 모임에서 처음 서로를 알게 됐으며, 투르코가 에이프만 발레단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한국에서 그의 공연을 다시 볼 기회가 있을까 아쉬워하다가 직접 초청해 보자는 데까지 의견을 접근시켜 이번 공연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공연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23일. 알음알음으로 만난 러시아 출신 무용수를 통해 투르코와 연락이 닿았고 “7월 초에 스케줄이 빈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 낸 뒤 무조건 부딪쳐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단 비자문제 해결을 위해 수십 번씩 모스크바에 있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사관에 국제전화를 걸었다. 항공편 예약과 대관이 가능한 공연장 섭외도 동시에 추진했다. 사무실이 따로 없으니 카페에서 회의하고, 주로 e메일과 인터넷 메신저 등으로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1200만 원에 가까운 공연비용이 문제였는데, 일단 ‘엔젤’들이 30만 원씩 갹출해 420만 원을 모아 개런티와 항공료는 해결했다. 나머지는 박 씨가 사비를 털어 먼저 충당한 뒤 공연 티켓 판매로 메울 생각이었으나 전석이 매진된다 해도 100만 원 정도의 적자 공연이 예상되는 프로젝트였다.
○ 새로운 팬덤 문화
투르코는 공연 6일 전인 9일 미리 입국했고 ‘엔젤’들은 매일 몇 명씩 조를 짜서 그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며 찜질방, 한복점 등 서울의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투르코는 ‘돈키호테’ 등 일반 발레 작품 외에도 관객들이 볼 수 없는 평상시의 클래스(무용수들이 매일 하는 연습) 장면을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용수의 ‘무대 뒤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인 셈이다.
이번 공연은 팬들의 투르코 공연 유치는 진화하고 있는 ‘팬덤’ 문화의 한 사례다. 무용칼럼니스트 유형종 씨는 “이번 공연은 소수 관객을 위해 마니아들이 직접 마련한 일종의 ‘맞춤 공연’”이라며 “팬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문화소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스스로 생산하면서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단계까지 이른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중구 정동극장에서 열린 '발레 클래스 콘서트 & 갈라' 라는 제목의 발레공연에서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솔리스트 알렉세이 투르코가 힘찬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에이프만 발레단의 솔리스트 알렉세이 투르코가 공연을 마친후 박수로 팬들의 환호에 보답하고 있다.
솔리스트 알렉세이 투르코가 무대소품에 문제가 발생해 난감한 표정(아랫사진)으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유니버셜 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발레리나 배소희가 공연을 위함 리허설을 거쳐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완벽한 동작, 완벽한 호흡!
유니버셜 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발레리나 배소희와 발레리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유니버셜 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발레리나 이상은 역시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