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자친구도 김진명 소설가를 좋아해서... 그의 작품은 거의 다 봤다고 하더군요...
오늘 점심식사하다가 한반도 라는 영화가 주 얘기거리가 되었는데...
음...일단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지식검색을 해보았죠..^^
근데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워서 여러분들에게도 알켜 드리고자...^^;...
* 국치일 (國恥日)을 아세요?
8월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 광복절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 나라를 빼았기 이른바 '국치일'도 있습니다
바로.... 1910년 8월 29일 입니다...
먼저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과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명칭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합니다. 무엇이 '보호'입니까? 일제(日帝)가 우리를 보호한 것입니까? 강압에 의한 치욕적인 조약. 그렇다면 우리가 조약 명칭에 '보호'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을사오조약(乙巳五條約)'이나 '을사조약(乙巳條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 명칭 역시 우리의 치욕을 풀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명칭이 맞을까요. 바로 '을사늑약(乙巳勒約)' 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당시부터 우리의 민족적 지식인 들은 이렇게 불러왔습니다. '늑약(勒約)'은 억눌러서 이루어진 조약이라는 의미입니다
* 아직도 일제치하의 기간을 36년이라고 하십니까?
{ 45-10=36 }이 맞습니까?
명칭의 문제 보다 더 큰 잘못이 있습니다. 바로 일제(日帝)가 우리를 강점(强占)했던 기간을 36년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것입니다. 올해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에도 신문, 방송 등 언론(言論)에서까지 아직도 일제(日帝)의 압제(壓制) 치하(治下)를 36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36년이 아니면 몇 년일까요.
초등학교(初等學校) 1학년 학생들에게 우리 민족(民族)이 1910년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겼다가 1945년에 광복(光復)을 맞았다고 하면 나라를 빼앗긴 기간을 몇 년간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당연하게 { 1945 - 1910 = 35 } 35년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보면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34년 11개월 14일입니다. 곧 35년도 안되는 기간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36년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한 심정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이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수학 실력보다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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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적 을사조약을 지지하고 일본에 대해 처음으로 매국행위를 한 자들이 있었죠. 그 인간들이 바로 을사오적이라고 하더군요. 을사오적은 이런 사람들로 이루워져 있었습니다.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이 인간들 때문에 결국 우리나라는 35년간 식민통치를 받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됬지만 제대로 된 친일청산이 부족한 탓인지 결국엔 100년 후인 지금에 또다시 이런 인간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을사오적이라고 하더군요. 지금의 신을사오적은 아마 이런 사람들인게 분명합니다.
한승조 - 식민통치 축복 발언
지만원 - 한국 자체 폄훼
김완섭 - 독도를 일본에 넘기라 망언
일빠 - 일본문화의 무분별한 유입 지지
사이버 친일파 - 친일카페, 친일사이트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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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마지막으로.... 명성황후를 민비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민비, 민씨, 명성황후는 다 한인물을 대상으로 부르는 이름이오나, 부르는 방법이 다릅니다.
명성황후의 본명은 민자영입니다. 그래서 흔히들민씨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중 민비는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 흔히들 여우사냥)후, 일본인들이
역사왜곡, 조작을 위해 명성황후를 민비라고합니다.
그리고 명성황후란 을미사변후 고종황제가 명성황후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내려준
높은 시호를 추증(내려주었다고 합니다.)해주었다고 합니다.
될수있음 명성황후라고 불러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