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화에 음표를 달다
오케스트라와 미술작품의 만남.... 그것은 전형적인 크로스 오버다. 우리는 크로스 오버를 접목, 융합 등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퓨전이기도 하다. 예술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면 대부분의 크로스오버는 어느 분야 내에서 장르간의 만남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때로는 서로 적극적으로 접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 쪽이 영감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예술분야에서 크로스오버는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접근법이 되기도 한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내지는 재즈 음악의 만남이 성공적인 음악분야의 크로스오버라면, 회화 기법과 한지공예나 자수의 만남 역시 미술분야의 성공적인 크로스 오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크로스오버는 또 다른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이미 음악과 연극, 무용 등이 크로스 오버되어 나타난 새로운 장르였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크로스 오버는 종합예술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7일 제주에서는 의미있는 오케라와 미술이 만나는 크로스 오버가 있었다. 제주 방문의 해를 맞아 라고 이름붙여진 KBS 교향악단의 특별공연이 열렸다. 이 연주회에서 변시지 화백의 제주화라는 독특한 장르의 작품을 소재로 한 창작곡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녘바다에 해가 솟는다(위촉,초연곡)/최영섭]가 초연되었다.
제주 방문의 해 기념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
-출연-
지휘 : 오트마 마가(Othmar Maga)
바이올린 : 김윤희
소프라노 : 박정원
바 리 톤 : 김동원
-프로그램-
1. 로시니 /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
Rossini / Overture from "Il Barbiere di Siviglia"
2. 사라사테 / 지고이네르바이젠, 작품20
Sarasate / Zigeunerweisen, op.20
3. 최영섭 / 그리운 금강산
4. 로시니 / 오페라 중 "방금들린 그대의 음성"
Rossini / 'Una voce poco fa' from "Il Barbiere di Siviglia"
5. 카르딜로 / 무정한 마음
Cardillo / Core'ngrato
6. 로시니 / 오페라 중 "이 거리에서 내가 제일가는 이발사"
Rossini / Largo al factotum della citta from "Il Barbiere di Siviglia"
.......................휴식..............................
7. 최영섭 /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녘바다에 해가 솟는다(위촉,초연곡)
8.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Mo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7월 7일 오후 7시30분 제주도민 및 관광객 등 1,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제주 한라아트홀에서 KBS 교향악단 특별공연이 있었다. 이날 공연은 ‘제주의 빛과 소리, 변시지’라는 타이틀 아래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오트마 마가가 지휘봉을 잡고 독일에서 활약하는 제주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와 차세대 바이올린 거장 레이첼리가 협연했으며, 소프라노 박정원, 바리톤 김동원이 출연하는 등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에게 고품격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했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 최영섭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녘바다에 해가 솟는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이 연주되었다.
KBS교향악단이 제주 나들이에 나서 ‘제주 빛과 바람소리, 변시지’란 이름으로 특별연주회를연 의미가 무엇인가?
우선, 연주회 이름 자체가 ‘제주 빛과 바람소리, 변시지’라고 붙여진 점도 화젯거리였다. 2006제주방문의 해 기념 이벤트로 마련된 이날 공연에서는 탐라천년의 역사와 제주가 낳은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딴 창작곡을 비롯해 귀에 익은 선율로 채워졌다. 특히 이날 첫 선을 보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최영섭씨가 변시지 화백의 그림과 제주에서 만난 인상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주섬을 품어안은 변시지 화백의 그림, 제주화가 교향악 선율에 녹아 들었다. 새벽바다, 해가 솟는다, 해가 솟았다, 파도의 희롱, 폭풍은 지나가고, 찬란한 태양이란 내용을 담았다. 요란한 파도와 폭풍의 모습이 음악에 표현된 것이다.
제주가 낳은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작품은 한국화라는 이름 대신 제주화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제주 어느 해안가의 돌담과 초가, 해송, 소, 말, 까마귀, 수평선, 돛배, 태양, 정형화된 화가 자신, 그리고 기호화한 풍경….
지난 30년간 황갈색의 화면 위에 특유한 도상들로 일관해오면서 ‘폭풍의 화가’로 불려지는 변시지 화백(81)의 작품들은 서양화이되 한국적이며, 제주적인 정서로 귀의하면서도 보편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어 제주화라고까지 칭해지고 있다. 이런 변 화백의 제주화는 빛과 바람을 본질로 하는 섬의 토착정서를 녹여 황톳빛 화면을 일궈 세계성을 획득했으며, 모더니즘이 잃어버린 인문학적 신화의 세계를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 화백의 작품을 소재로 한 창작곡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녘에서 해가 돋는다’가 음악가 최영섭에 의해 작곡되고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는 점 또한 미술작품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진귀한 크로스 오버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리고 ‘2006 제주방문의 해’를 맞아 제주도와 KBS교향악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특별공연은 1.10일 방문의해 개막선포식 특별공연, 4. 22일 관광객 150만 돌파 방문의해 특별이벤트, 6. 24일 예정인 대장금 클래식 공연에 이어 개최되는 것으로 개막선포식이후 방문의해 붐(BOOM) 지속을 위한 특별이벤트 개최를 통하여 도민 참여 분위기 조성은 물론 현재 관광객 증가 추세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홍보마케팅 전략으로 추진된 행사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화가의 미술작품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흔치않은 공연이어서 제주이미지는 물론 ‘2006 제주방문의 해’ 사업추진에도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도민참여와 함께 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른 도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주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온 변시지화백의 그림과 KBS 교향악단의 음악이 만나는 특별 음악회. 화가의 미술 작품과 음악이 만나는 흔하지 않은 테마의 공연은 특히 예술의 문외한이나 초보자에게 더 좋은 이해의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나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음악과 미술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 왔었다. 미술이나 음악이 인생에 왜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도대체 예술의 세계를 모르고 살아왔다고 하는 게 옳을 것도 같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라는 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해 보니 사실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는 게 예술이었던 것이다. 마치 축구는 룰이 쉬워서 팬이 많은데 야구는 그보다 좀 적고, 미식축구나 골프는 더더욱 그런데 룰를 아는 사람이 빠져드는 정도는 더 심한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래서 요즘은 참으로 공평한 게 바로 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투자결과가 쉽게 나오는 것을 왜 외면하고 살았던가 하는 후회(?)도 든다. 누구나 관심과 시간만 투자하면 다 할 수 있는건데, 그 별 것도 아닌 것에 너무 주눅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런 나같은 사람에게 크로스 오버는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 장르도 소화 못시키는 주제에 두 가지 씩이나 욕심낸다고 꾸중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반론을 하고 싶다. 모르는 하나에 매달리기 보다는 둘 중에 요기조기라도 조금씩 알 수 있으니 관심이 안 가겠느냐고...
음악을 배운 적도 없고 그렇다고 미술을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아니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그저 어떤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저 작가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이 그림을 그렸나’ 하는 마음으로 보고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도 그런 듯하다. 클래식이든. 재즈든, 팝송이든 ‘저 곡을 작곡한 사람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저 곡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작곡가의 심중을 어떻게 이해하면서 부를까?’라는 생각으로 들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미술을 같은 예술인이기는 해도 역시 초보자일 수 있는 음악가가 보고 음악으로 표현했다니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맘을 저 작곡가는 어떻게 그렸을까, 그리고 연주자들은 또 어떻게 해석하는 걸까? 그걸 듣는 그 화가는 나만큼이나 이해할까‘ 그렇게 음악가와 미술가를 서로 경주시키는 재미, 그것이 크로스 오버는 아닌가 싶다. 그렇게 제주의 빛과, 아름다운 소리, 7월의 초여름 밤에 음악과 그림에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생각해본다. 다만, 폭풍의 화가가 그린 그림을 연주한 작품에도 분명 그 폭풍이 갖는 무서움이 담겼을텐데, 요즘 몰폭탄에 온 나라가 떠 내려가는 것과 연관시키려니 답답하긴 하지만, 그 아픔가지 승화시키는 게 또한 예술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