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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억이 희미해 지기 전에 출산기를 어느 정도 기록

백인정 |2006.07.26 23:01
조회 61 |추천 0

더 기억이 희미해 지기 전에 출산기를 어느 정도 기록해 놓는 것이 우리 수민이에게도 커서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되어서 이렇게 잠시 틈을 내어 컴을 켰다. 수민이는 한시간 전부터 자고 있는 중.^^

3월 29일 출산 하루전.

저녁을 먹고 오빠와 어김없이 식탁을 치웠다. 그날 역시 계속되는 체중증가로 머리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건강이를 힘들게 낳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고 느꼈던지 죽자고 운동을 할 생각이였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40분 정도를, 추위때문에 오빠와 몸을 꽁꽁 싸매고 양재천을 걸어다니고 틈틈히 걸레질도 해보고 그랬으니..요가는 워낙 배가 많이 쳐진 탓에 다니기 힘들어서 빠짐없이 다니는 것엔 실패했지만..ㅋ

이날은 청소를 할 찬라에 배도 땡겨오고해서 내친김에 조금 무리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걸레질도 그냥 걸레질이 아닌 토끼뜀뛰기 자세였는데 배가 부를대로 불러서 출산을 바로 유도시키기 좋은 자세라 웬만하면 산부인과 의사나 요가 선생님도 막달에만 권유하는 자세라고나 할까. 그만큼 일반인들도 무리가 가는 좀 위험한 일이였다.

바로 그 전주말엔 오빠와 분만시연대에도 오르고 분만촉진지압법도 배웠기에 분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였고 지압점도 멍이 들세라 눌러댔다.ㅋ

아무튼 그렇게 하고 나니 진통이 점점 규칙적으로 계속 되었다. 뭐 3주전부터 자궁문이 열린 상태고 오래전부터 가진통이 가끔 있었기에 오늘도 그냥 지나려니 생각했었다. 출산예정일도 열흘 정도 남았으니..작은 진통이 시작된건 밤 10시경이였고 오빠와 진통간격을 따져보면서 책을 들여다 보니 10분씩 30초정도 계속되는 것이 거의 정확한 듯했다. 그래도 가진통이라는 의심은 떨쳐버리지 못한채 억지로 잠을 청했다. 속은 적이 한두번이 아녔으니까..ㅋ 오빤 잠에 취해 내가 뒤척이는 것도 모르고..여간 얄미운 것이 아녔다..그래도 담날 출근해야하는 신랑을 위해 잠자리에서 나와 쇼파에서 통증을 견디기로 했다. 조용히 끙끙 거리는데 전같지가 않게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고..결국 새벽 2시 반이 다 되어서야 오빠를 깨우기로 결심했다.

"오빠..나 못견디겠어.."

"많이 아퍼? zz"

"..."

"아프다니깐..-.-"

"병원갈까?"

비몽사몽으로 깨다 어느순간 조금 상황을 파악한듯 오빤 황급히 병원갈 채비를 하고 나도 진통을 경감시켜준다는 아로마 오일과 아기에게 들려줄 cd까지 꼼꼼히 체크한 후 일산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새벽 3시 15분에 집을 나서서 차디찬 새벽기운이 감도는 어둠을 헤치고 오빠는 차로 자유로를 빠른 속도로 밟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차안에서도 천장 손잡이를 잡고 진통이 올때마다 고통을 순간을 겨우겨우 견뎌냈다.

'안돼, 안돼..힘주면 안돼..ㅠ 차 안에서 아이를 낳을 순 없어..'

그때는 정말 차에서 애기를 낳는 줄로만 알았다. 

여러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산통이 죽는 것보다 더 아파 세상에서 가장 고통이 심한 것이라는 아빠의 말씀도 떠오르고..두려움은 말도없이 밀려만 왔다.

새벽 3시 55분 그렇게 산부인과 응급실에 도착하니 마침 담당 원장 선생님께서 당직이셨고 나는 바로 진통실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전부터 여러차례 책과 인터넷을 뒤져 미리 출산과정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진 않았지만 관장만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간호사의 지시대로 관장약을 투여했는데 두가지 진통을 한꺼번에 겪어야해서 정말 죽을 맛이였다. 15분 안에는 화장실을 가지 않고 참아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여서 더더욱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였던가..ㅠ

몇번을 화장실을 왔다갔다하고서야 링겔을 꼽고 제대로 병실에 누워있을 수 있었다. 옆으로 눕거나 해서 진통을 견디기 쉬운 자세로 있고 싶어도 아기의 심박수를 체크하는 기계를 배 위에 올려놓아야 했기에 간호사는 계속 바로 눕는 자세를 요구했는데 실로 몸을 못 움직이게 꽁꽁 묶고 진통을 견뎌내라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고통은 배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댔고 그때까지 오빠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기에 혼자 아침까지 몇시간을 그렇게 있었다.

도착해서 한시간마다 간간히 내진을 했지만 처음에(새벽 4시) 자궁문이 겨우 2센티 열린 상태에서 너무나도 더디게 상황이 진행이 되었기에 칼로 천천히 배를 베는 듯한 고통에 차라리 수술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동안은 오빠 역시 이리저리 발빠르게 돌아다니며 친정에 연락을 하고 입원수속을 마쳤다고 한다.(새벽 4시 45분)

다행히 새벽 7시쯤에 엄마가 왔고 그땐 3센티정도 자궁문이 열렸다 해서 자유분만실 분만대에 누울 수 있었다. 간호사의 지시아래 오빤 간호사와 함께 아로마 마사지를 해주었고 엄만 끊임없이 내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가 싶었지만 더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인상은 구겨질대로 구겨지고 나도 모르게 천장의 밧줄을 잡아당겨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9시가 되면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무통주사를 놔주실 거라는 약속대로 날이 밝아 아침 9시 40분이 되자 드뎌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통주사 투입반이 왔다. 이때는 자궁문이 0.5센티 더 열린 상태..간호사는 오빠와 엄마를 잠시 나가게 한후 등쪽에 무언가를 넣는 듯했다. 인터넷 출산기를 여러번봐서 그 순간 또한 아프다고 들었는데 워낙 진통이 심해서, 또한 무통주사를 너무나도 갈망했기에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1차적으로 넣은 주사의 효과가 그렇게 클 줄이야..순간 새로 다시 태어난 듯했다. 너무나도 말끔히 통증이 사라졌고 오빠, 엄마와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먹기를 거부했던 초코렛과 음료수도 조금씩 입에 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시간 반이 흐른 11시 반정도에 또다시 약기운이 풀리면서 점점더 무서운 진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공포감은 극대화대고 다시 무통을 외쳐댔지만 엄마와 오빤 분만시간이 오히려 지연된다며 내 호소를 들어주지 않으려 했다. 죽음 앞에 사람이 이렇게 처절해지던가..결국 내가 불쌍했던지 오빤 사람을 불러 2차 투입을 조금 더 하게 해주었다. 너무나도 조금..ㅠ 또 살 것같은 순간은 너무나도 잠깐이였고 그때부턴 진통간격이 더 좁혀오면서 밑이 뜨겁게 젖는 느낌이 들었다. 양수까지 터져나온 것이다. 양수가 터져나오면 아기가 더욱 골반진입이 쉬워지고 꽉 끼기때문에 본격적으로 고통이 심화된다고 들었기에 몸은 절로 부르르 떨렸다.

아무것도 못먹은 상태에서 소리를 지른 까닭에 몸은 탈진이 되고 아기역시 내 고르지 못한 호흡때문에 심박이 규칙적이지 않았다. 기계를 통해 '둑.둑.둑.둑'하는 아기 심박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이 소리에 힘입어서 힘들더라도 끝까지 오빠와 함께 미리 연습해 두었던 라마즈 호흡법으로 죽을 힘을 다해 숨을 내뱉었다.

그뎌 까만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는 간호사의 말에 오빤 더욱 사력을 다해 내 다리와 등을 잡고 같이 힘을 주었다. 너무 잘해 이대로라면 더 빨리 애기가 나올 것 같다는 간호사의 칭찬 덕분인지 나도 모르게 더더욱 힘을 내기 시작하고..

이때부터는 정말 머릿속엔 오로지 한가지만 생각만 떠올랐다.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해서는 안돼..죽더라도 아기는 낳아야한다..'

지금 생각하면 오빠앞에서 너무나도 창피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이였지만 오빠가 옆에 있건 없건 난 아기와 함께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간호사가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기가 잘 내려오는데에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같아 간호사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때면 오빠에게 빨리 불러달라고 울부짖었다.

이윽고 분만이 많이 진행이 되었는지 2시 쯤 되서야 담당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바로 회음부절개에 들어갔다. 내가 바라던 순간이였다. 어차피 그 순간은 마취를 하고 절개를 하면 아기가 쑥 터져나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몇배의 힘을 주었다.

드디어 드라마에서나 보고 말로만 듣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픔은 씻은 듯이 없어졌다. 탯줄을 그대로 달고 핏덩이가 된 아이가 가슴에 얹혀지고 젖을 물렸을 때 회음부 봉합작업이 이루어졌고 여전히 의사선생님은 밑에서 뱃속에 남은 나머지 엄청난 양의 잔여물(?)을 눌러 꺼내고 있었다. 큰 대야에 피와 함께 쏫아져 나오는 듯 했고 의사선생님이 손으로 배를 누를때의 고통은 여전히 견딜 수 없었지만 해냈다는 생각에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르봐이에 분만이라 평상시 태교를 위해 듣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분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진행되었다.

아기는 신기하게도 세상에 나오자마자 꿈뻑꿈뻑 눈을 뜨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너무나도 귀엽게 엄마가 된 나를 얌전히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뒤 오빠가 직접 탯줄을 조심스럽게 자른뒤 간호사와 함께 아기를 따듯한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에서 목욕시키고 옷을 입혔다.

오빠의 눈시울이 젖는 순간이였다.

나 역시 힘들었지만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이젠 그 무엇이라도 다 해낼 자신이 생겼다. 우리 아기 수민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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