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게 너무 많다(1)
Less is More!
중요한 것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
김영권 정보과학부장 겸 특집기획부장 | 11/17/2006
벼르고 벼르던 옷장을 뒤집었다. 옷이 너무 많아 무슨 옷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가진 게 너무 많다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 먹는다. 최근 1년간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은 모두 솎아내기로 했다. 그래도 주저주저하며 빼낸 옷이 한 짐을 넘는다.
내친 김에 냉장고도 열어본다. 먹을 게 차고 넘친다. 냉동실에 있는 생선은 어느 명절 때 넣어둔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만두피에는 유통일자가 2002년으로 찍혀 있다. 냉장실에도 버릴 게 수두룩하다.
솔직히 `이건 먹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게 한두개가 아니다. 가게에서 살 때는 유통일자가 하루만 지났어도 분개하면서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찜찜해서 버린 음식이 쓰레기 봉투를 다 채울 정도다. 이러면 벌받는데….
작심하고 신발장도 뒤집는다. 신지도 않은 채 모셔둔 신발들이 가득하다. 낡은 것들만 골라서 버려도 짐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 남긴 신발들도 대개는 신발장만 지키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버리기도 힘들어서 손을 놓는다. 아무래도 나는 가진 게 너무 많다. 책장에는 책이 넘친다. TV 볼 시간은 있어도 책 읽을 시간은 없는데 책 만큼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 있다. 결국은 다시 들춰 보지도 않을 책들을 꾸역꾸역 끌어안고 산다.
소파 침대 책상 걸상 식탁 탁자 수납장 경대…. 가구도 없는 게 없다. 안방이며 거실이며 큰 공간을 다 차지한 가구들을 피해 다니다 보면 누가 주인인지 헷갈린다.
피아노는 몇년째 울림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위에는 먼지 탄 봉제인형들이 `동물농장'을 이루고 있다.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는 훨씬 더 많다. 연필, 볼펜, 지우개, 손목시계, 열쇠고리, 동전, 쓰지 않는 가방, 망가진 장난감, 빈 화분, 카세트 테이프, 약봉지 등등 끝이 없다. 부엌살림은 매일 잔치를 치러도 될 정도다.
이렇게 가진 게 많아도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 늘 무언가 부족하다. 하긴 강남 사람이 더 부자라고 하지만 더 행복하게 산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도 부족한 게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또 열심히 사들이고, 집안 곳곳에 쟁여 놓는다.
그러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고 벌어들인다. 더 좋은 차와 더 큰 집은 필생의 목표다. 이것까지 사들여야 나는 행복할 것 같다. 경제기자를 하다보니 '이젠 소비가 미덕'이라며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인다. 지구를 망치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함정으로 유인한다.
그러나 옷장과 냉장고와 신발장을 뒤집어 실컷 버리고 나니 채우는 것보다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남은 옷이 옷답고, 남은 신발이 신발답고, 남은 음식이 먹음직스럽다. 빈 공간이 더 충만한 느낌이다.
Less is More! 이른바 `한계효용'이 높아진 것이다. 버리고 비울 수록 남은 것들이 소중해진다. 역시 중요한 것은 차지하는게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번잡함을 덜고 단순화할수록 그 가치가 드러난다.
다이어트는 체중을 줄이는데만 필요한 게 아니다.
ㆍ가스렌지〓불 나오는 곳이 2곳이면 충분하다. 4개 짜리인데 절반은 사치다.
ㆍ식기건조기〓그냥 말린다. 안쓴지 오래됐다.
ㆍ식기세척기〓명절이나 제사때 생각나면 돌려본다. 없어도 아무 지장없다.
ㆍ소형청소기〓보기엔 그럴 듯 하더니 실제로는 별로다. 발에 자꾸 채인다.
ㆍ다기세트〓살 때는 우아하게 다도를 즐기려 했지만 생각에 그쳤다.
ㆍ체지방 체중계〓요즘에는 아무도 올라가는 일이 없다.
ㆍDVD플레이어〓최근 6개월동안 켜본 적이 없다.
ㆍ라디오〓여기저기 달린 것을 포함해 5개. 이중 3개는 필요없다.
ㆍ플레이스테이션1〓플레이스테이션2가 나온 다음에는 무용지물이다.
ㆍ피아노〓최근 3년내 뚜껑을 연적이 없다. '비싼 건데 나중에 혹시 필요하면 어쩌나.' 이런 생각으로 모시고 산다.
ㆍ핸드폰〓쓸데없이 MP3 기능이 붙어있다. 한곡 내려받아 한달 듣는데 1만원씩 내는 '사고'를 친 다음부터는 손도 안댄다. 낡은 것도 어딘가 3개나 쳐박혀 있다.
ㆍ쌍안경〓어디서 흘러왔는지 군사용 1개와 최신형 1개, 오페라용 1개 등 3개가 있다. 최근 10년내 써본적이 없다.
ㆍ인형〓수십개. 강아지가 갖고 노는 서너개를 제외하면 모두 필요없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ㆍ장난감〓철지난 장난감이 창고에 서너 상자다. 버리지 못해 갖고 있다.
필요없는데 꾸역꾸역 끌어안고 사는 것이 이것 뿐이랴. 하다못해 쓰레기통도 방마다 한두개라 몇개는 버렸으면 좋겠다. 아직도 한참 더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걸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고 야단맞을 것같아 이 정도에서 줄인다.
그러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필요하다는 의식주부터 따져본다.
ㆍ의〓유행을 따진다면 항상 부족하다. 그 유행이 정장 캐쥬얼 등산 조깅 골프 자전거 등등 종목별로 다르니 따라잡기 벅차다. 유행 지난 옷이야 차고 넘쳐 주체하기 힘들다.
ㆍ식〓무공해 자연식을 원한다면 정말 귀하다. 그게 아니라면 먹을 게 너무 많아 문제다. 솔직히 내 주변에서 굶주림에 고통받는 이웃은 보지 못했다.
ㆍ주〓더 크고 좋은 집을 원한다면 결코 만족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사는 집으로 충분하다. 세식구가 30평형대 아파트에 사니 내 공간이 10평은 된다.
결론적으로 입고 먹고 자는데 아무런 문제 없다. 아니 너무 풍족하다. 꼭 필요한 의식주의 2배, 아니 5배는 갖고 산다. 그런데도 항상 부족한 것 같다. 채우고 채워 `고도비만'이 됐는데도 더 채우라 한다.
그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자꾸 더 사들인다. 그래서 사들인 것도 알고 보면 위에서 줄줄이 읊은 것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한사람이 평균 1만가지 상품을 소비하면서 산다. 반면 나바호 인디안은 25가지만 갖고 편하게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나에게 부족한 건 무엇인가. 그건 이런 거다. 깨끗한 물, 맑은 공기, 놀고 먹을 시간, 마음 편한 친구, 한가로움, 홀가분함, 고요함, 넉넉함…. 내가 사치를 부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거다. 이런 것도 넘치게 사들이려면 얼마나 더 정신없이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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