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토스테네스
지구 둘레의 길이를 처음으로 구하고, 소수를 추려내는 방법을 처음으로 고안해낸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그가 지구 둘레 길이를 잴 때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의 태양의 고도와 두 도시 사이의 거리값이 필요했다. 그는 800km정도 떨어진 두 도시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구했을까? 에라토스테네스는 자기 노예에게 도시 사이의 거리가 몇 발자국인지 세도록 시켰다.
발렌티누스
15세기의 수도사이자 연금술사이다. 당시에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발렌티누스의 동료 수도사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발렌티누스는 해결책을 찾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는 어느 날 돼지가 자신이 버린 실험실 쓰레기를 먹는 것을 보고 흥미를 보여 돼지가 건강이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관찰을 계속했는데, 오히려 돼지는 더 건강해져 있었다. 발렌티누스는 이것을 보고 싫다는 동료 수도사들을 설득해 실험실 쓰레기를 먹게 했지만 수도사들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고 죽는 사람까지 나왔다. 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쓰레기를 계속 연구했는데, 안티몬을 발견했고, 이 안티몬이 수도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발견했다.
티코 브라헤
케플러의 스승이자, 뉴턴에게 많은 영향을 준 덴마크의 천문학자이다. 지구가 공전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장비의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는 결투에서 한 귀족에게 코를 베여 가짜코를 달고 다녔다고 하는데, 싸움의 원인은 한 수학문제에 대해 서로 자기가 구한 답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유명한 정치가이자 근대 철학의 틀을 만든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또 경험과 실험을 강조해 과학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자기의 호기심도 남달랐다. 눈을 이용해 고기를 저장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닭을 한마리 사다가 눈속에 묻어두고 지독한 눈보라 속에서 밤새도록 관찰했다. 이 일로 지독한 병을 얻은 그는 얼마 안가 사망했다.
아이작 뉴턴
미적분학을 만들어내고, 물리에서 뉴턴 역학을 확립한 말이 필요없는 과학자이다. 그의 대표 저서인 '프린키피아'는 당시에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어렵게 쓴 이유는 질문을 받기 귀찮아서였다.
헨리 캐번디시
수소를 발견했으며, 물의 조성, 공기의 비열 등을 발견한 업적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황당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증이 너무 심해 독신으로 살았는데, 하녀들도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했으며, 일을 시킬 때에는 일일이 서신으로만 하였다. 그는 연구할 때에도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서랍 속에 처박아두기 일쑤였는데, 그의 연구 대부분이 그가 죽은 뒤에 발견되었다. 이러한 습관으로 그는 명성을 얻는 데 실패했다.
제임스 줄
열역학 제 1법칙을 발견해 유명한 과학자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신혼여행지에 폭포가 있다는 것을 알고 황당한 실험을 구상했다. 폭포의 물이 떨어짐으로써 위치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전환될 것이고 그에 따라 폭포 아래의 물의 온도는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 폭포 주변에 이는 물보라가 너무 심해 도저히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를 셸레
스웨덴의 과학자로, 산소를 먼저 발견했지만 출판사가 그의 저서 출판을 늦추는 바람에 프리스틀리에게 공적을 빼앗겼기로 유명하다.(현재는 둘 다 산소 발견자로 인정된다.) 이 사람은 너무 꼼꼼해서 모든 화학약품을 맛을 본 다음에 실험했다. 심지어는 극독물인 비소화합물(우리나라 사약의 원료인 비상과 성분이 비슷), 염화제이수은(방부제, 살균제 성분), 시안화수소(살충제 원료)까지 직접 맛을 보았다. 덕분에 그는 44세의 한창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떴다.
토마스 에디슨
말이 필요없는 발명의 제왕이다. 초등학교 퇴학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명예를 얻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미국에서 1093개의 특허를 얻었는데, 여기에는 사형집행용 전기의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직류를 발명했고, 에디슨의 경쟁자는 교류를 발견했는데, 이 경쟁자가 맘에 안들어 교류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그 홍보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전기의자이다. 이 전기의자는 교류 전류를 사용하는데, 에디슨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기의자로 개와 고양이를 태워죽이는 실험을 반복해 교류의 위험성을 홍보했다. 덕분에 근처의 개, 고양이 수는 10분의 1로 줄어들고, 도덕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입어 노벨상을 타는 데 두번이나 실패했다.
그레고르 멘델
유전학의 지표를 만든 성직자이자 과학자이다. 그는 완두를 통한 유전실험을 했기로 유명한데, 무려 28000그루나 되는 완두콩을 기르면서 그 많은 식물들의 키, 꽃과 색깔, 열매들을 기록하고 숫자를 세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나 이 연구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혀져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다.
마리 퀴리
노벨상을 두번이나 수상하고, 방사선 연구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여성 과학자이다. 그녀는 방사능 물질을 실험할 때,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연구했고 심지어는 주머니에 넣고다니면서 실험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평생 건강이 좋지 못했다. 이를 단지 과로로 인한 것이라고 퀴리는 생각했는데, 퀴리는 말년에 들어서야 방사능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결국 방사능으로 인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쿠르트 괴델
불완전성의 정리와 괴델의 정리를 발표하여 버트란드 러셀과 같은 수학자들이 수학의 체계를 노력을 좌절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괴델은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꺼낸 미국인에게 미국에서도 독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해괴한 행동등을 이유로 그는 망명한 지 13년 동안이나 교수 자리에 앉지 못했다. 죽을 때도 그는 음식을 먹지 않아 굶어죽었다고 한다.
리처드 파인만
양자역학에 공을 세운 그는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그는 황당한 일을 많이 남기기도 하였다. 원자폭탄 기밀정보 금고를 무려 10분만에 열어버리기도 하였고,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하자 악기를 두드리면서 자축하고, 원자폭탄으로 히로시마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 폭파반경을 게산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노벨상을 수상할 때도 그는 오히려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 연구를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는 귀찮은 일인데다가, 노벨상은 사람을 망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상을 받았는데, 아내가 노벨상을 받지 않으면 대중의 관심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위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