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경기침체 등으로 잔뜩 풀이 죽은 우리 청년들의 현실이 대중음악을 통해 표출되기 시작했다. “또 바쁜 걸음 재촉하며 그댄 어딜 가고 있나, 땀 흠뻑 젖은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이는데, 오 잠시만 쉬어 가 잠시만 놀다 가, 그대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갈 테니까.”
최근 각종 인터넷 음악사이트 상위권을 지키며 인기를 끌고 있는 혼성 3인조 그룹 쿨(Cool)의 신곡 ‘오늘 하루’. 쉽고 명쾌한 멜로디에 실린 가사의 메시지는 “오늘 하루만 쉬자”는 것이다.
노래 초반 “어딘가 떠나고 싶어, 되는 일 없이 할 일은 많고,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면 몰라, 혼자 바쁜 척, 혼자 잘난 척, 그 많은 짐 혼자 다 지고서” 등의 가사에 힘겨운 과정을 거쳐 취업을 해도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20대 청년들의 비애가 느껴진다. 쿨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지친 삶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밝혔다.
영화 ‘짝패’에 삽입된 힙합그룹 다이나믹 듀오의 신곡 ‘도망자’는 좀 더 비장하다. “그림자 같은 날 쫓아오는 시간이란 놈은 밤까지 날 추격해 오 지독한 고문, 아차 하는 순간에 추월당하면 들려오는 것은 나는 이미 늙었다는 소문… 시간이 멈췄으면 해, 찾는 건 술이고, 다음날 아침 잠을 깨면 속 쓰리고, 모든 일이 수수께끼처럼 오리무중.”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무한경쟁에 대한 강박이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 요즘 젊은이들의 힘겨운 현실을 반영한 노래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쿨, 자두, 다이나믹 듀오.
다이나믹 듀오는 노래 끝부분에서 결국 이렇게 내뱉는다. “내가 원한 건 자유, 시간에 붙잡힌 자유, 쫓기는 내 삶이 이젠 너무 힘들어.” 이 노래는 영화 속에서 류승완, 정두홍 두 주인공이 범인을 숨가쁘게 쫓는 장면에 흘러나오지만 가사는 묘하게 현실의 젊은이들을 비춘다.
디지털 싱글로 나온 이 노래 또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10~20대의 인기곡으로 뜨고 있다. ‘다이나믹 듀오’의 멤버 김윤성(개코)은 “20대 후반이 되면서 주변 친구들이 취직에 대한 부담을 많이 갖거나 때로 현실에서 도피하려고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 이런 가사를 쓰게 됐다”며 “생계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포기하고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안타까운 청춘의 모습을 담았다”고 했다.
작년 발표된 자두의 ‘놀자’는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신조어 ‘이태백’을 고스란히 노랫말로 옮겼다. “삼류여고 졸업하고 백수생활 벌써 2년, 시간은 많고 음 미모는 없고 예, 일류대학 졸업하고 오라는 데 하나 없고, 돈 한푼 없고 오오 얼굴은 되고, 내 멀쩡한 손 하얀 손으로 변해버렸네.” 결론은 결국 “놀자. 내친김에 계속 놀아버리자”다.
대중음악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197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참담했던 영국의 경제현실과 청년 실업자 양산은 섹스 피스톨스, 클래쉬 같은 펑크(Punk) 음악의 폭발을 가져왔다. 섹스 피스톨스의 멤버 자니 로튼은 당시 “실업자들에게는 사랑 노래가 필요없다”고 말하며, 무정부주의를 찬양하는 ‘Anarchy in the U.K’라는 명곡을 남겼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경제적으로 우울한 사회 분위기가 대중음악의 가사와 스타일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SG워너비, 바이브 등 애절한 멜로디의 사랑 노래가 인기를 끄는 것도 답답한 젊은이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며, 앞으로는 경제난, 청년실업 등을 직접 노래하는 리얼리즘 계열의 곡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