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벨의 볼레로(Bolero) ◈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대표작 관현악곡 볼레로는 근대 전위무용가인 이다 루빈스타인(Ida Rubinstein)으로부터 스페인 풍의 무용에 쓸 음악을 부탁받고 작곡하여 1928년 10월 프랑스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볼레로는 1780년경부터 에스파냐에서 유행한 민속 무곡으로 3박자의 느린 템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동양적인 풍조와 무도조의 시적인 정서가 공존하고 있다.
라벨의 무용곡 볼레로는 작곡자 자신이 습작 정도의 가벼운 기분으로 썼다고 밝혔듯이, 멜로디도 쉽고 리듬도 반복의 연속이다. 원래 스페인에 볼레로 춤곡이 있지만, 음악 볼레로는 그 리듬과 관계없이 춤곡으로서가 아닌 음악만의 독자적인 연주로도 사랑받는다. 저음 현악기인 비올라, 첼로의 피치카토 3박자에 실려 볼레로 리듬의 작은북 연주가 시작되다가 플루트가 약한 소리로 밝은 주제를 끌어낸다. 아주 여린 소리로 시작해서 조금씩 커져가면서 마지막에 더욱 높아지는 '크레셴도(Crescendo)' 만을 사용하는 특이한 작품이다. 실제로 세어보면 서두의 리듬이 전 곡에서 169회나 똑같은 형태로 되풀이되고, 그 리듬에서 풀려나는 건 마지막 2소절뿐이다. 이처럼 2개의 주요한 테마가 제시된 후, 발전과 변화 없이 음악이 진행되면서 하나의 리듬꼴과 두 개의 주제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면서 악기만 더해지고, 종장으로 갈수록 점점 세어져 가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일품인 근대적인 수법을 썼다. 그의 뛰어난 오케스트레이션 기교를 최고도로 발휘한 걸작이이라 하겠다.
볼레로의 전체 구성은 총 18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제1-75마디) : 주제-제1변주
제2부(제75마디-147마디) : 제2변주-제3변주
제3부(제147-219마디) : 제4변주-제5변주
제4부(제219마디-291마디) : 제6변주-제7변주
제5부(제291마디-340마디) : 제8변주
멜로디와 기본음향은 변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멜로디를 가지고 음색만이 바뀌는 특징을 보인다.
모리스 라벨 (Joseph Maurice Ravel 1875*시부르∼1937*파리)
라벨은 드뷔시가 죽은 후에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작곡가로 '관현악의 마술사'라고 불릴 만큼 세부적인 면에까지 세련되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 인상파 계열의 음악가이다.
라벨은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소도시 시브로에서 태어나 출생 3개월 후에 파리로 이사하여 정착을 했다. 아버지가 라벨의 음악 교육을 위해 이사한 것이다. 음악애호가인 아버지의 권고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1889년, 14살의 나이로 파리음악원에 입학, 베리오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같은 해, 파리세계박람회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국정서(異國情緖)가 풍부한 음악과 접하게 되었는데, 이 경험은 그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바스크인의 피와 맞물려서 그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1897년부터 포레에게서 작곡을, 제달주에게서 대위법을 배웠다. 이 시기에 라벨은 스승 포레와 사티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 그리고 1898년《귀로 듣는 풍경》을 첫 작품으로, 1899년에 피아노곡《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등 이국정서가 넘치는 개성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평가들로부터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당시에 음악계의 등용문이었던 로마 콩쿠르에서는 4차례 도전, 모두 대상(大賞)을 획득하지 못했다. 1901년에 2등을 수상한 후, 1902년과 1903년에도 출품, 1904년에 네 번째 도전을 했는데, 예선에서 30세가 된 학생은 응모 자격이 없다는 구실로 거절을 당했다. 1904년 이전에 이미 음악계엔《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1899)》《물의 장난(1901)》《현악 4중주곡 F장조(1902∼1903)》로 라벨이 로마 대상의 수준에 이르렀음이 알려진 처지였는데도 기어이 도전을 반복했던 것이다. 당시, 그는 이미 신진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낙선 결과는 세론의 표적이 되었으며, 파리음악원 원장의 사직(辭職)으로까지 발전했다. 한편, 이 무렵 평생을 두고 존경하게 된 C.드뷔시와 만났다. 그리고 드뷔시의 숭배자인 시인 트리스탄 클링그조르의 시에 관현악 반주를 곁들인 가곡《셰헤라자데(1903)》을 발표했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피아노곡《거울(1904∼1905)》《밤의 가스파르(1908)》, 오페라《에스파냐의 한 때(1907∼1909)》, 디아길레프의 의뢰에 의한 발레음악《다프니스와 클로에(1909∼12)》, 관현악곡《에스파냐 광시곡(狂詩曲, 1907∼1908)》《어릿광대의 아침 노래(1918)》, 가곡집《박물지(博物誌, 1906)》등의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후에, I.F.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하다>는 평을 받게 될 정도로 명석하고도 분석적인 구축력, 치밀하고도 미세한 객관성은 이 무렵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우렁차게 소리 높여 부르는 것보다는 조용히 말을 건네는 스타일의 그의 가곡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활력 넘치는 문화상황에 고무되어 그는 재즈음악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국면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1막 오페라《어린이와 마술(1920∼25)》《바이올린 소나타(1923∼27)》등을 발표하였다. 1927∼1928년에는 미국 연주여행 후에 유명한《볼레로》를 작곡하였고, 1928년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뒤 발레영화로도 제작된다.
라벨의 음악적 성향 : 라벨은 주로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며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거나 성악가들의 반주를 할 때만이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베니스, 스웨덴,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1928)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1929년 옥스포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부터 몸에 마비증상이 나타나 작곡활동이 불가능해진다. 라벨은 이미 20세에 나중에《스페인 랩소디》의 제3악장으로 쓰이게 되는《하바네라》를 작곡한다. 전통적 음악기법에 대한 그의 긍정적 수용현상은 그가 제달즈와 포레로부터 수업을 받던 학창시절부터 이미 잘 나타난다. 라벨의 초기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쇼팽, 리스트, 샤브리에, 포레,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이다. 1890년경에 라벨은 사티의 화성학적 실험들로부터 한동안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드뷔시의 작품《프렐류드》도 그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 5인조그룹 중에서는 특히 보로딘이 라벨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드뷔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라벨의 상당 작품들에서는 프랑스 로코코의 목가풍이 반영되어 있다. 쿠프랭과 라모 이상으로 라벨의 흥미를 끈 것은 스카를라티의 기교적 측면이었다. 이것은 이미 리스트에 가까운 그의 작품《물의 희롱》(Jeux d'eau)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리스트의 역동적인 기교주의와는 다르게 라벨의 기교적 작품들은 세밀한 음향구성에도 강하게 집착하는 면을 보여준다. 라벨의 음악에는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러운 멋,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등이 잘 조화되어 있다. 라벨의 멜로디는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한 선을 가진다. 화성에서는 높은 3도층들이 즐겨 사용된 반면 증3화음이나 온음음계 등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폴리포니적 작곡경향은 현악사중주나 피아노삼중주의 파사칼리아 등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복조성도 가끔씩 발견된다. 라벨의 작품에서는 또한 오스티나토 기법 등이 곡의 뼈대로 자주 사용된다. 예로써 G장조 피아노 콘체르토의 중간악장은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오스티나토 기법을 연상시킨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당시에 대성공을 거두었던《볼레로》역시 멜로디와 기본음향은 변하지 않으면서 음색만이 바뀌는 특징을 보인다. 이곳에서는 한 개의 오스티나토 리듬과 두개의 오스티나토 선율이 많은 악기들이 점차적으로 참여하면서 도취적인 포르티시모로 상승한다. 라벨은 이 곡에서 단순성을 이용하여 의식적(儀式的) 효과를 거둔다. 즉, 모티브작업도 없고 섬세한 형식도 없으며, 전조조차 하지 않다가 끝에 가서야 E장조로 전조한다. 라벨은 오랫동안 심도있게 숙고를 하는 반면 빠르게 악보를 써내려가는 작곡방법을 가졌다. 작품을 위해 쓰인 스케치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라벨은 육군에 지원했는데 키가 작아서 채용이 안 되어 항공대를 찾았다. 그러나 거기서도 체중 미달로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은 그는 자동차 수송대에 지원하여 화물차 기사로 전쟁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 라벨이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스페인에서 요양하면서 "나는 한 조각씩 사라져간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1937년 12월 28일 파리에서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의 죽음은 한 조각의 상실에 불과하고, 역사는 계속 같은 박자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볼레로처럼.......
◎ 라벨의 주요 작품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1899), 물의 희롱(1901), 현악사중주 F장조(1902-03), 소나티네(1903-05), 거울(1904-05), 밤의 가스파르(1908), 스페인 랩소디(1907-08), 스페인의 시간(1911), 감상적이고 고상한 왈츠(1911), 다프니스와 클로에(발레곡, 1909-12), 피아노삼중주(1914), 쿠프랭의 무덤(1917), 왈츠(1920), 치가느(1924), 어린이와 요술(오페라, 1925), 피아노콘체르토 G장조(1929-30), 볼레로(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