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아일랜드 1회

김혜진 |2006.07.30 23:34
조회 313 |추천 43
play

7. # 모텔 앞(밤)

아직도 모텔과 주변은 정전으로 어둡다.
모텔 입구 차양 밑에서 비를 피하며 팔짱을 낀 채 비실대며 왔다갔다 하는 이 재복. 꺾어신은 운동화에 트레이닝 차림. 한 방에 백수태가 난다. 게다가 나름대로 안정환 흉내라도 낸 듯, 여자들이 할 만한 분홍 꽃무늬 머리띠를 했다. 바지 주머니로 손을 넣는다. ... 주머니에선 짤랑대는 동전소리.. 입구 아래로 대 여섯개의 돌계단이 있다.
그 아래서 비를 맞으며 촬영장비를 분주히 옮기는 소규모의 스탭들.

이 때, 감독과 함께 모텔 입구로 나오는 한 시연. 한 껏 가슴을 내밀

며 걸어 나온다. 가슴이 인생 최대의 성공작인가 보다.
한 팔에는 보따리가 드리워져 있다.
힐끔 이 재복을 본다. 그가 징그럽게 한 시연을 향해 웃어 보인다.
여전히 바지 주머니 속의 동전을 짤랑대며...

 

감독:(한 시연에게) 소품 잘 챙겨, 야. ...접때, 마후라 안 챙겨와서
     연결 튀구...(버럭 짜증) 좀, 알아서 챙겨어.

 

시연: (심드렁) 에로 영화는요? 연결따지면 몸맛이 안나. 그냥 내 몸
      으루 커버하면 돼. 그래요, 안그래요?

 

감독: 안그래.

 

시연: 아님 말구...(조감독에게 차키를 내민다. 콧소리.)
      조감독님. 나, 조기 차 좀 빼주지...비 맞으면 백혈병 걸릴지
      두 몰라.

 

조감독: (한 시연의 차 키를 받아 뛰어간다.)

 

감독: (역정을 내며) 마후라 진짜 중요해에, 짜식아.. 왜 그걸
      모르니? 넌? 너무 몰라, 진짜.. 어쩌면 그렇게 모르냐?작품을?
      (빗속을 뛰어가며 혼잣말) 비 맞는데, 왜 백혈병이 걸리냐,
      맹순아.

 

시연: (명랑하게) 가세요, 감독님. (멀어지자 입이 뒤틀리며 혼잣말)
      짱나게 마후라가 뭐냐? 머플러지. 아으, 구려.

 

재복: (미소 지으며 한 시연의 엉덩이를 제 엉덩이로 톡 밀친다.)
      그러게.

 

시연: (어이없이 이 재복을 본다.)

 

재복: (씩 웃는다.)

 

시연: ... (빤히 보며 한심한 듯 퉁명스레) 이빨이 지랄스럽데.
      치석으루 도배를 하셨네, 기냥.

 

재복: (실실 웃는다.) 늙어서 그래.

 

시연: 늙은 김에 왕창 뽑구 틀니루 가셔요, 지랄 이빨.

 

재복: (계속 실실) 돈 없어. (응석을 부리듯) 아가씨가 해 줘잉.

 

시연: (기막힌 표정으로)... 머리에 벌레 먹었나, 이 사람?

 

재복: (여전히 웃으며) 아까 대구리 박살났잖아.
      아가씨 구하니라구.. 그때 벌레 들어왔나봐....바퀴벌레. ..헤

 

시연: ... 그래서... 돈 줘?

 

재복: ...(귀염떤다) 그런거 아니야아... .. 내 맘두 모르구...

 

조감독:(어느새 차를 몰고 와 한 시연에게 차 키를 내민다.)
       내일은 늦지마, 한시연.

 

시연: (다시 콧소리 애교) 안 늦을꼬야, 오빠 땜에. .. 오빠, 고마워?
      ... 너무 고마워서, 우리 집에서 밥해 주구 싶다.

 

조감독: (손을 들어 보이곤 촬영용 승합차로 뛰어간다.)

 

시연: (조감독의 뒷모습을 요상한 눈빛으로 보며 혼잣말) 이 팀에서
      건질 건 조고 뿐인데... ... 조걸 어뜩케 후리지?

 

스탭: (소리친다.) 재복아, 가자.

 

재복: (씩 웃으며 속사이듯) 너 먼저 가두 돼.

 

스탭: (부러운 듯) ... 꼬셨나부다. 쟨 지인짜 여자 잘꼬셔..
      .. 부럽다.(그리곤 승합차 문을 닫는다.)

 

재복: (여전히 반짝반짝 한 시연만 바라본다. 바짓속 짤랑대는
       동전소리는 여전하다.)

 

시연: (이 재복을 힐끔보곤 도도하게) 안녕. (급히 입구 돌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재복: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팔짱을 낀다. 대뜸) 천사 같드라.

 

시연: (가당찮은 눈빛으로 뒤를 돌아 차얀 밑의 이재복을 올려다본다. 빗줄기가 얼굴을 때려 눈살이 찌뿌려진다.)

 

재복: ...(어느새 자상한 아버지같은 표정이다.)
      백혈병 걸려. 얼른 타. ...얼른.

 

시연: (비를 맞으며) 누가?

 

재복: 뭐가?

 

시연: (같잖은 듯) 누가 천사냐고.

 

재복: ...(다시 쌕 웃는다.) 헤... 알면서...

 

시연: 나?

 

재복: 응. 에로천사.

 

시연: ...(어이없다.) 쟤랑 놀다간 벌레 옮겠다.

 

(다시 승용차로 뛰어가 문을 여는데)

 

재복: (중얼댄다.) 슬픈 천사...(말과 동시에 그의 눈에 슬픔이 인다)

 

시연: ...(다시 그를 향해 돌아선다. 비에 젖은 머리칼과 얼굴..)

 

재복: 너 슬프지?

 

시연: ...(불현 듯 막막함이 몰려온다.)

 

재복: ...(말없이 슬픈 눈빛으로 그녀를 본다.)

 

시연: 기쁘다, 어쩔래?

 

재복: (하늘을 올려다 본다. 담배를 물며 쪼그려 앉는다.)
      여기서 널 보니까....  ...(빗물이 꺼지는 라이터를 켜대지만
      붙지 않는다.) 빗물이 니 몸을 적시는게 아니라, ....
      (포기한 듯 생 담배만 입에 물고 시연을 바라본다.)
      눈물이 니 몸을 적시는 것 같다.

 

시연: ...

 

재복: ...(빗물에 물고 있는 담배가 젖는다.) ... 내가.. 별루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늙어서 그런지... ...그게 보인다,
      어린 에로 천사야.

 

쪼그려 앉아 어둡게 비에 젖은 한 시연을 내려다보는 이 재복.
굳은 듯 이 재복을 올려다 보는 한 시연.
이 때, 정전되었던 건물들과 한 켠의 가로등이 화락 거리에 불빛을
뿜는다.

 

재복: (씩 웃는다.) 녹았지, 너?


시연: (씩 웃는다.) ... 달달하네 아저씨.

추천수43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