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지하철을 타면 광고판들을 살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수많은 광고판들 중에서 제가 가장 감명깊게 느낀 문구는 한 공익광고 문구였습니다.
"책이 없다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지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책이 없는 세상,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2
디지털 시대, 저는 참 좋아합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놀고, PC통신으로 사람을 만나며 인터넷으로 숙제를 해결했던 터라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생활, 그 자체이지요.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세상을 꿈에라도 보았을까요. 사실상 TV와 라디오, 신문 등이 없어도 컴퓨터 한 대만 있다면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는 세상을 말입니다. 오늘날 "인쇄문학(비단 문학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의 죽음"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디지털 매체로 인해 인쇄매체는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을 되짚어보더라도,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은 본디 입(말,음성)이었고 이후 글(문자)로 옮겨가게 되었지요. 글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말과 달리 보존성이 뛰어나며 멀리까지 전달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인쇄물의 발달로 같은 문서를 수천 권 찍어낼 수 있게 되자 지식은 대중화되면서 동시에 균질화되었습니다. 수만 명이 지식을 같은 방식으로 점하게 된다는 사실은 지식의 객관화, 권위 등의 믿음을 낳는 것입니다. 때문에 근대의 세계관은 인쇄술의 방법론과 일치하는 바가 많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지식의 전달과 보존의 방식이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한계에 봉착하였고, 그 극복의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사실 저 둘 사이의 선후관계는 저도 따지기가 어려울 것 같군요. 인쇄의 종말이 디지털의 탄생을 부른 것인지, 디지털의 탄생이 인쇄의 종말을 부른 것인지.
#3
올해 수능을 치를 제 동생은 책만 펼치면 잠이 듭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하여, 작년엔 어르고 달래어 『삼국지』를 간신히 읽게 하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동생의 어휘력은 고3의 수준에 못 미칩니다.[아니, 어쩌면 요즘 고3의 어휘력 평균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군요;;] 지난 일에 대한 "향수"를 "사향"이라고 답한 적도 있습니다.
누군가 수능 언어영역이나 논술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으면,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세요." [이런..실은 과외자리 구하는 중인데..=_ =;]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은 그냥저냥 들으면서 소설책과 만화책에 빠져 살던 제 친구는 다른 과목은 제껴두고 언어영역만은 늘 1등급이 나왔었습니다.
물론 디지털 매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매체가 바뀌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수도없이 많다는 것이 문제지요.
사회시간이었던가요. 우리나라 문화, 혹은 가치관의 혼돈 등의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면 항상 나왔던 말. "외세에 의한 독립으로 인해", "너무 급작스럽게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단기간 내에 빠른 성장을 이룩하느라" 등등.. 제가 보기엔 디지털 매체도 똑같아요! 너무 빨라요. 차근차근 한계단씩 밟아야하는데, 급행 엘레베이터로 슝- 올라갔단 말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귀여니의 글이 왜 싫으냐고 묻는다면 딱 잘라 말하렵니다. 저는 그녀의 글이 소설이라면 소설일 수도 있겠구나 합니다. 이모티콘이건 외계어건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호에야 맞지 않지만 뭐, 기준이란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다만 그녀가 진정 '소설'로 인정받고 싶었다면, 과연 그 글에는 인간에 대한, 사회 혹은 문화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담겨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전혀 못느꼈어요.-_ -
"현대 도서의 대부분은 현대에 반짝이는 영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늘 아름답다가도 내일이면 쑥스러워진다. 이것이 문예의 길이다." -카프카
#4
디지털 매체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맹점은 멀티플레이어라는 것입니다. 디지털을 통해선 문자와 영상, 소리가 동시에 구현될 수 있습니다. 가령 소설과 함께 음악이 재생될 수 있고, 이는 동영상으로도 제작이 가능합니다.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던가요. 이젠 그 이름을 컴퓨터에게 넘겨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영상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합니다. 때문에 쉽게 빠져들 수 있으며,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반지의 제왕』을 원작 소설 6권을 읽는 것보다 영화 3편을 감상하는 것이 더 빠르고 쉽다고 예를 들면 괜찮을까요;; 영상에 익숙해지면 이제 문자는 어렵고 귀찮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조금만 긴 포스트를 보아도 "스크롤의 압박"이라고 말하는 세태를 보면....
#5
사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은 사회 풍조에 대한 고민이나 탄식 등의 거창한 목적이 아닙니다.
8호선, 분당선 모란역에 있는 서점입니다. "폐업"이라고 크게 써붙인 가운데에 이렇게 글을 써두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주변의 동네서점이 하나둘씩 사라져갔습니다. 물론 대형서점들이야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사랑받고 있지만, 뭐랄까.. 동네서점은 늘 가까이에 책을 두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제가 다니는 대학 앞에는 서점이 없었습니다.[제가 입학할 당시 년도엔 말입니다] 그 당시 선배가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했을 때 어린 저는 교보나 영풍같이 큰 서점에 가도 되잖아요- 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지요. 과연 내가 그 큰 서점들에 몇번이나 가는가. 다행히 현재는 학교 안에 [교재 위주이긴 하나] 한 곳, 학교 정문 앞에 한 곳이 새로 생겼으며, 학교에서 주변 역으로 가는 길에 있던 서점이 2층까지 넓혔습니다. [박수] 또한 개인적으론 정문 옆 골목에 생긴 헌책방을 자주 이용하는 편입니다.
사진을 찍고 있자니 주인아저씨께서 나오셨습니다. 저는 흠칫,하며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걸까'라고 생각했는데 주인 아저씨 말씀, "찍어서 신문에 좀 내주세요. 우리나라 사람들 책 안 읽는 건 정말 큰 문제예요."
#6
신문에 기고하는 법을 알지 못할뿐더러 그만한 용기가 없는 탓에, 그래도- 적어도 제가 아는 분들께만이라도 꼭 당부, 호소하고자 포스팅했습니다. 사실 저도 책과 멀어진지 오래;; 때문에 두서없고 설득력 없는 글이 나왔지만, 제발 한 사람만이라도 저 사진 속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책이란 구원의 손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상의 모든 영광은 망각 속에 되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리처드 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