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발효차
완전 발효차는 18세기초부터 영국을 비롯한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주로 마셔온 차이다. 영국은 처음에는 중국과 인도에서 발효차를 수입해 가다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1849년부터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인도의 모든 산물을 수탈해가면서 인도의 앗삼 발효차를 싣고 가게 된다. 그러나 수에즈운하(1859∼1863)가 개통되기 이전이어서 남아프리카를 돌아 영국에 이르니 시일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해상의 기온과 습기로 인하여 변질이 심했으므로 아예 완전 발효를 시켜 홍차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영국은 안개가 많이 끼는 다습한 기후 조건으로 인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C의 주 공급원인 채소와 과일이 잘 안 되는 곳이다. 그래서 차는 영국 사람들의 필수불가결한 음료가 되었다. 거기다가 홍차는 포도주보다도 더 고운 색깔을 내어서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마시는 애용품이 되었다. 홍차는 설탕을 타서 마시며 어느 때 마시느냐와 무슨 음식과 같이 마시느냐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중국의 발효차는 17세기초 복건성 숭안(崇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국토가 광할하여 먼 곳까지 운반하는 데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변질을 막기 위해 완전 발효차인 보이차를 만들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은 대부분의 음식을 기름에 튀겨 먹기 때문에 발효차가 제격이어서 보이차를 많이 마신다.
발효차는 중국을 비롯하여 동양의 인도·파키스탄·네팔·버마·태국·인도네시아·스리랑카 등 차 생산국에서 많이 마시며 발효차의 수입국으로는 아프리카의 케냐·남아공화국·이집트 등과 유럽의 여러 나라 그리고 미국이 있다.
반 발효차
완전 발효차에 비하여 향이 맑다. 대표적인 차가 오룡차이고, 철관음과 무이암차, 만리향차 등이 있다.
만리향차는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차로 우리 나라의 숭늉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마신다.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다양하여 중국의 음식점에서 나오는 차는 대부분이 만리향차다.
찐 차 또는 녹차
찐 차는 일본의 녹차가 대표적이다.
모든 식물의 잎은 엽록소 때문에 녹색이다. 물론 찻잎도 그러하다. 엽록소란 식물의 세포인 엽록체 속에 들어 있는 색소로서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얻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차를 마시는 것은 엽록소 때문이 아니라 차가 지닌 독특한 성분과 향색미 때문이다. 그러기에 차나무의 잎은 녹색이지만 법제한 차까지 녹색이 될 필요는 없다.
차는 찻잎이 제다(製茶)를 통해 변화된 상태이다. 그러기에 찻잎의 색과 법제된 차의 색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찻잎은 녹색이 맞고 차는 다갈색이 제 색이다. 차마저 녹색을 만들려고 찌는 방법을 선택한 차가 녹차이고 녹색 찻잎의 법제된 색인 다갈색의 제 색을 찾아 덖는 방법을 선택한 차가 덖음차이다.
푸른잎 채소를 더 녹색이 나게 하려면 물에 데치거나 찌면 된다. 그런데 푸른잎 채소를 데치거나 찌면 비린내가 나고 텁텁하다. 그래서 양념을 하고 간을 맞추는 것이다. 찻잎도 마찬가지다. 섬나라인 일본 사람들은 평소에도 생선의 비린내를 좋아한다. 찐 차에서 나는 비릿하고 텁텁한 향을 즐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습기가 많고 염기 섞인 바람이 불어 찻잎을 쪄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찻잎이 어릴수록 풋내는 더욱 강하게 나기에 일본에서는 우전차나 세작을 선호하게 되었다. 더욱이 차나무에 질소비료를 주면 찻잎은 더 텁텁해지고 비린내는 짙어진다.
일본 사람들은 영국에서 홍차를 개발하여 전 유럽에 홍차 문화가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에 맞서 일본차를 녹차(green tea)라 이름하여 외국에 소개했다. 그 전에는 우리 나라처럼 차를 ‘차’라고만 했을 뿐이다. ‘오차’는 일본에서 차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덖음차
한국차를 대표하는 차가 완전 덖음차이다.
완전 덖음차는 완숙한 찻잎이라야 한다. 우전이나 세작의 어린 잎은 덖는 과정에서 강한 열을 견디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비는 과정에서도 으깨어져서 제대로 향색미를 낼 수가 없다. 반드시 일창이기의 성숙된 찻잎을 따다 열 번쯤 덖고 볶아야 우리 전통의 덖음차가 된다.
흔히 우리 전통차를 작설차라 하는데, 자생찻잎 중에서도 남향받이 자갈밭에서 난 찻잎으로 봄에 일창이기의 첫순이 올라오면 끝이 자색빛을 띠고 그 모양이 마치 참새 혓바닥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의선사도 이를 최상품이라 했고 덖어 마셔보면 향색미가 유별나다. 자생찻잎이라도 대밭이나 보통 차밭에서 난 찻잎 또는 변종 자생찻잎으로 만든 차를 작설차라 한다면 옳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만 덖음차를 만든 것은 아니다. 중국차 중에서는 구화산차와 용정차가 덖음차인데 법제의 차이는 있다. 중국은 차 역사가 오래되고 국토가 광대하고 차밭 면적 또한 넓어 다양한 방법으로 차가 법제되었을 것이라 짐작은 되지만 현재까지 전해 내려온 덖음차로는 이 두 가지가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두 가지 차는 우리 한국차가 중국에 들어가서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화산차의 구화산은 중국 안휘성 청양현에 있는 산인데 절경으로 이름 높다. 청나라 유원장(劉源長)이 1699년에 지은 『개옹다사(介翁茶史)』에 의하면 신라의 김지장(金地藏, 김교각; 696∼794) 스님이 당나라 지덕(至德) 연간(756∼758)에 바다를 건너와 신라의 차를 심었다고 되어 있다. 이 차가 신라의 자생차였고 만드는 방법은 신라식 덖음차였는데 다만 찻잎을 딸 때 일아일엽(一芽一葉) 즉 순 하나에서 잎 하나를 따는 것과 덖는 횟수를 세 번 정도 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1996년 구화산 방장(方丈) 인덕화상(仁德和尙)이 중국 공산당원 2명을 수행하고 선암사로 나를 찾아와 하루를 묵어가신 일이 있었다. 김지장 스님의 조그마한 좌상과 구화산차를 선물로 가져와서 그 차와 선암사차를 번갈아 마시면서 선문답도 하고 현재의 중국 선불교와 한국 불교 이야기도 나누었다. 인덕 스님에 따르면, 김지장 스님의 신라식 덖음차를 구화산에서는 그대로 만들어 전해온다 하였다.
두번째 용정차는 예로부터 한민족이 중국으로 이주하여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용정 지방에서 나는 차로 우리 나라 자생 덖음차와는 덖고 나서 찻잎을 납작하게 만들어 살짝 볶거나 말리는 것만 다를 뿐 덖음차로서의 향색미가 중국의 다른 어떤 차보다 뛰어난 우수한 차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