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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변기, 그 오줌발이 미술계를 적신다....

최용일 |2006.08.05 08:42
조회 63 |추천 1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이 단지 "변기"라고 한다면, 그것도 우리가 익히 아는 피카소나 마티스보다 더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그러나 아무튼 변기가 현대미술을 흔들었다. 변기를 형상화한 뒤샹의 작품 '샘'이 피카소, 워홀 등의 작품을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에 선정된 바 있다. 이미 한참 지난 2004년 11월 29일의 일이다. 영국에서 열린 터너상 시상식에 참석한 미술 전문가 500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뒤샹의 ‘샘’이 1위를 차지했다고 BBC 방송이 2004년 12월 1일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2위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년), 3위는 앤디 워홀의 팝 아트 ‘마릴린 먼로’(1962년)였다. 4, 5위는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년), 마티스의 ‘붉은 화실’(1911년)이 차지했다.



1  마르셀 뒤샹  1917



 


  2위  피카소의 1907

 

 

3위  앤디 워홀의 팝 아트 1962


 

  

4위  피카소의 1937

 

 

 

5위  마티스의 1911


 


남성용 소변기에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인 프랑스 출신 화가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작품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마티스의 '붉은 화실'은 물론, 또 다른 현대 미술의 상징작인 앤디 워홀의 '마릴린 몬로'까지 제치고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선정됐다.


뒤샹이 1917년 뉴욕 앙데팡당전에 출품된 ‘샘’은 세상에 소개되자마자 문제를 일으킨 화제작이다. 1917년 당시 앙데팡당전은 참가비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젊고 패기만만한 작가들의 전시회였다. 당시 이 전시회 운영위원이기도 한 마르셀 뒤샹은 익명으로 희안한 조각품을 출품했다.


샘(Fontaine)이라는 제목이 붙은 유약 처리가 된 도기 작품 위에는 뉴욕의 화장실용품 전문제조업자인 "리차드 머트"의 이름에서 따온  "R MUTT"란 사인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라는 이 작품은 남자 소변기에 지나지 않았다. 전시회 관계자들은 전시 기간 동안 그것을 칸막이 뒤에 숨기는 데 급급했다. 이에 뒤샹은 심사위원직을 사퇴했다.


전시가 끝나자 뒤샹은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조그만 잡지 '눈 먼 사람' (The Blind Man) 창간호에  아래의 편지를 게재하였다.

     

"리차드 머트의사례"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


"6달러라는 참가비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 같다. 리처드 머트씨는 작품 을 출품하였는데 아무런 거론도 없이 그의 출품작은 종적을 감추었고 전시에서 제외되었다. 머트씨의 샘을 거부한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1) 혹자는 그것이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한다.

(2) 혹자는 그것이 단지 화장실용구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머트씨의 은 부도덕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화장실용구 상점의 진열장에서 볼 수 있는 부품일 따름이다. 머트씨가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그는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화장실용구 설비품을 모사했다고 운운하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이 만들어 낸 유일한 예술품은 바로 이 화장실용구들과 교량들뿐이기 때문이다"


 

 

가장 평범한 소재를 미술품화시키려던 마르셀 뒤샹은 이미 1913년 파리에서도 "레디 메이드"라는 새로운 미술 개념을 창안케한 작품 를 발표했었다. 영어로 "레디 메이드"는 기성제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회화나 조각품의 "주문 생산"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공장에서 제조된 이 대상들은 승화된 예술품으로서 보다는 오히려 지성적 반발의 가치가 더욱 컸다. 뒤샹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레디 메이드를 등록해야 하는 것"으로 즉 약속을 하듯 미리 몇날 몇시 몇분에 이 대상이 선택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 한다.


이 "레디 메이드"는 기존의 미술이 누리던 전통적 권위에 가해진 일격이었던 동시에 이른바 고귀한 취향이란 것에 대한 비판, 지적 세뇌, 무관심이라는 원칙의 적용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움과 추함의 개념이 전혀 무의미해졌던 것이다. 흔히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레디 메이드" 대상의 선택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종류의 감정에서건 이 대상에 의해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신과 감수성이 부재한 곳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당신의 흥미를 끌지 않는 대상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선택한 그날 뿐 아니라 두고두고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하고, 또한 바라볼 수록 기분이 좋아진다든지 예쁘게 보인다든지 혹은 추하게 보인다든지 할 가능성을 절대로 갖고 있지 않은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고 뒤샹은 말했다.


그의 작품 은 과연 이 원칙에 적합한 경우였을까? 이 작품에서 뒤샹은 그의 원칙을 얼마간은 위반하고 있다. 이 소재가 본래 갖고 있는 기능은 대수롭지 않은 성격이 결코 아니었으며 물의를 일으키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했다. 앙데팡당전의 심사위원이 조건 반사적 반응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20세기 미술가들 중 그만큼 생전의 무명과 사후의 영광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작가도 드물다. 그는 말년에 미술가를 포기하고 체스(서양장기) 연구에 생애를 바쳤다. 그러나 뒤샹이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을 만든 두 거장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뒤샹은 지극히 평범한 오브제를 선택하여 "레디 메이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의 선택 자체가 이 오브제들에게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예술은 더 이상 풍경이나 인물을 손으로 재현하는 테크닉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때 부터 미술의 역사에서 직접 미술가가 만든 것뿐 아니라 작가가 선택하고 작가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것도 중요한 미술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관객은 그가 1914년 시장에서 산 빈병꽂이대나 1917년의 변기를 볼 때 이것들을 거의 고전적인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인다. 우연과 폐품의 사용으로 반미술이 그절정에 다다랐기 때문이라 하겠다.


앙드레 브르통은 레디 메이드를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예술작품의 지위에까지 높여진 기성품"이라고 정의했다. 뒤샹에 의하면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을 그 일상적인 환경과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 본래의 목적성을 상실하게 되고 드디어는 단순히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함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미는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미술의 새로운 주장이요 특색이다. 그래서 어디서나 손에 넣을 수 있는 레디 메이드를 창의를 가지고 발견하면 창작된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뒤샹의 미학은 한마디로 아이러니였다. 그는 유럽은 물론 어떤 어떠한 문화나 미술의 경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그가 레디 메이드를 미술품으로 선정한 것도 결국 모더니즘을 종식시키는 행위였다. 그의 레디 메이드는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나 혹은 모든 것을 의미했다. 비록 그의 작품은 작품이 아니라 변기일 뿐이며 예술을 모독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전시회 장소에서 쫓겨났을 정도로 기성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렇지만 예술의 본질이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정신적 행위라는 그의 이론은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추상표현주의가 1956년 잭슨 폴록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종말을 고하자 예술가들은 뒤샹의 아이러니에서 미술의 최초의 근원과 영감을 발견하려고 했다. 그들은 오로지 뒤샹만을 바라보면서 그의 다음 행위를 지켜보았다. 뒤샹의 무관심 미학은 미국 예술가들에게 팝아트의 길을 영어주었고 유사한 존 케이지의 선불교 미학과 더불어 미니멀리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앤디 워홀 등이 세계적 작품을 만들어낸 새로운 퓨전 장르인 팝아트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사물을 선정하는데서 출발한 미술이었다. 그래서 뒤샹은 다다이즘의 대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뒤샹, 그리고 앤디 워홀 등의 새로운 시도는 현대미술의 발전 방향을 예측케 하는 하나의 지표임에는 틀림없고 그런 의미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현대미술로 선정된 것임에는 틀림없겠으나, 과연 미술이 이렇게만 진화(?)된다면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존재의미를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뒤샹의 작품에 대해 “오늘날 미술의 역동적인 본성과 예술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한 바 있는 미술 전문가인 사이먼 윌슨조차 “뒤샹의 작품이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앞섰다는 것은 좀 충격”이라는 단서를 달았음에 주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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