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귀금속공예 명장의 작품 산실은 여러 가지 공구들로 가득하고, 조명을 받고 찬란하게 꽃피운 진열장 속의 보석들이 자연의 한 자락을 옮겨놓은 듯 아름답고 화려하다.
박창순 명장은 지난 2000년에 기술 분야 최고의 기능인인 올해의 대한민국 귀금속가공 명장으로 선정되었고, 1999년에는 귀금속대상(노동부장관상)을 수상, 신지식인 인증을 받았다.
또한 2002년 WGC(세계금협회) 주최 “GOLD VIRTUOSI 2” 공모전에서 응모된 5098개의 디자인 가운데 최종 당선된 34개 대상작 중 하나인 이주희씨의 디자인을 작품으로 제작하기도 했으며, 한국장신구디자인공모전 특선을 비롯하여 익산 전국귀금속디자인공모전 금상, 전국기능경기대회 동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각종 기능대회 심사위원과 출제위원, 감독관으로 활약하며 귀금속보석기술협회 이사와 디자인협회 이사를 맡아 귀금속공예 발전에 앞장서는 한편, 동신대학교와 재능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박창순 명장이 귀금속공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76년 그의 나이 20세 때이다.
“농촌에서 학업을 계속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남이 갖지 않은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갰다고 생각해 배우게 됐지요.”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기술을 배워야 장래성이 있을 것 같아 배우게 되었다는 박 명장. 귀금속 일을 하던 삼촌이 좋다고 해 서울 면목동에서 공예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금은방이라 해서 굉장히 화려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정집에서 서너 명이 망치로 두들기고 갈아대는 걸 보니 좀 실망이 되더라고요.”
전남 구례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의 도제생활은 그야말로 어깨너머 공부에 지나지 않았다.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 선배들 속에서 이를 악물고 참아내기를 2년여 지나 마침내 은으로 연습하기에 이르렀다.
작업도구를 잡고 깎고 갈고 하는 과정에서 그는 금속가공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년 정도 열심히 배우며 일했으나, 부도가 나자 사장이 월급도 주지 않은 채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생각에 불안했었다며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하는 박 명장.
“80년대는 일자리 구하기가 지금만큼 힘들었지요. 중간에 다른 일을 잠깐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공구를 잡았습니다.”
당시 최대의 귀금속거리인 명동으로 진출하여 ‘신화사’에서 새롭게 기술을 익혔다. 유명한 귀금속 장인 김영우 스승에게 4년을 배웠다.
금속가공이 제일 재미있다는 그, 적성에 맞으니까 재미있었을 것이라며 그때부터 귀금속가공이 ‘천직’이라 여기며 한길을 걸어왔다.
“인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좌우명대로 29년간 귀금속 공예인으로 일관해 온 박창순 명장.
“인내가 부족했으면 이 일에서 떠났을 겁니다. 오랜 세월 하다보면 싫던 것도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다가 실증 날 때도 있었지만, 여행을 하며 자신을 추슬렀다고. 자신에게 맞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힘들고 어려워도 꾹 참고 꾸준히 한 게 오늘에 이르렀다는 박창순 명장.
30여년 계속하다보니 명장이 되었다고 담담히 말하는 박 명장은 ‘명장이 되고나서 기쁨과 함께 보람을 느꼈고 기능인으로서 긍지를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명장이 된다는 것은 기능인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이다. 명장은 선정 과정부터 매우 까다로워 최소한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종사해야 하고, 공정 개선이라든지 품질 개선 등 그 분야에서 확실한 업적이 있어야 함은 물론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야 한다. 현재 귀금속공예 명장은 전국에서 5명밖에 없다.
초등교때부터 팽이 썰매 만들어…손재주 타고난 장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이며 팽이, 썰매를 잘 만들어 동네에서 소문났지요. 이 길에 들어설 운명이었나 봅니다.”
박 명장은 귀금속공예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기에 힘든 과정을 참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인기질을 타고난 그는 작품에 그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생활주변에서 얻은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에 친근감과 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을 듣는 박 명장.
지난 아셈회의 기간 중 열린 귀금속전시회에서 ‘지게’를 디자인한 귀금속제품으로 26개국 참가회원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이주희씨의 디자인을 작품으로 승화한 ‘울림’은 산을 모티브로 하여 네모난 금속으로 산에서 들리는 여러 소리를 울림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5천여 응모작중 34개 대상작중 하나로 당선되기도 했다.
박 명장의 손끝에서 자연의 꽃과 풀, 나비와 돌, 물이 작품으로 태어난다.
갖가지 보석이 꽃으로, 잎으로, 줄기로, 나비와 잠자리와 벌들로 살아나 자연의 한 자락으로 다가온다. 보석으로 표현해 낸 자연은 광채를 발한다.
“장신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디자인입니다. 나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아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담아보려 합니다.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주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그리고 메말라가는 우리네 마음을 풍요롭고 밝게 만드는 그런 모습을 담아보려 애썼습니다.”
어릴 적 섬진강 변에서 소를 먹이며 보아오던 들꽃과 잔디와 물 등을 떠올려 자연 위주의 디자인을 주로 해왔다.
요즈음 들어서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박 명장.
박창순 명장은 ‘선제’라고 불리는 공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것으로 가공 초기 작품의 모양새를 원하는 방향으로 만드는 기계다. 선제의 사용으로 작업 시간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 자존심 지키고 싶어 수작업만 고집"
우리나라의 가공기술이 세계 으뜸이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국제기능대회에서 메달을 거르지 않고 따내는 것으로도 입증되는 사실이다. 그런데 보석을 가공하는 기계부분은 부족하다.
이태리는 줄 목걸이, 일본은 섬세한 디자인으로 이름나 있지만, 우리는 핸드메이드 임가공이 뛰어났다.
기계부분이 약해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는데 지금은 기계 설비를 많이 개선해 수출도 활발하다고.
그러나 박창순 명장은 오로지 수작업으로 작품위주의 주문생산만 한다. 핸드메이드 위주로 다량생산은 하지 않고, 디자인을 의뢰해오면 상담해주고 있다.
“80년대, 가공 기계의 발달로 다량 생산할 수 있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손으로 만드는 걸 고집하여 지금까지 일관하고 있고 그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디자인 개발이나 공법 개발에 함께 경쟁하고 있지만, 기술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어 수작업을 고집합니다. 그러다 보니 명장이 됐고요.”
“나만의 노하우라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의 영감에 따라 디자인이 나오지요. 열심히 작업하다보면 작품에 혼이 실리게 됩니다.”
박 명장은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를 조상들의 공예기술로 든다.
기계화와 수작업의 차이는 금속을 담금질했을 때 현미경으로 보면 기계 작품은 미세한 구멍이 많고 변질이 쉽게 되지만, 수작업 작품은 광택이 오래가고 변질되지 않는단다. 무덤에서 출토된 귀금속 제품들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현재 귀금속가공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대략 100만 명 정도. 기능인으로 대접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장인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고 박 명장은 말한다.
가능성 무궁무진…고급인력 양성 주력
귀금속 공예는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GNP가 만 불 이상 되면서 귀금속이 대중화되고 디자인이나 소재도 다양해졌다.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의 장신구로 널리 애용되는 추세에 맞추어 시대에 맞는 디자인, 새로운 금속의 개발, 새로운 보석으로 재료가 풍부해졌다.
“귀금속도 관광산업과 마찬가지로 굴뚝 없는 산업입니다. 그동안 사치품, 밀수품으로 잘못 인식돼 기술도 사장되고 국가적으로도 적지 않은 손해를 봐 왔습니다. 이제는 부가가치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가 바로 귀금속 업종입니다.”
동신대학교와 재능대학교에서 일주일에 3일 강의를 하고 있는 박 명장은 경제가 성장되면 귀금속시장은 더욱 커져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된다고 역설한다. 귀금속 가공은 기술 연마에 시간이 많이 걸려 이직하는 경향이 있지만, 수출 쪽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표적 보석은 자수정과 옥이지만 매장량 적어, 원석을 수입하여 입가공해 역수출할 수밖에 없다.
인건비가 비싸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는 현실이지만, 고급인력은 줄어들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
귀금속 업종은 판매, 감별, 가공, 마케팅 등 분야가 다양해서 취업률이 좋은 편이다. 젊은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빠른 결과만을 원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박창순 명장.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기술력이 곧 나의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적 부를 느낄 수 있는 공부를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손재주와 지식 그리고 노력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진다면 빠른 시간에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며, 학교와 자신의 작업장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겠다고 명장다운 포부를 밝혔다.
홍창신(작가) 등록일 : 2005.08.30 덧글 쓰기 | 엮인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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