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은 2003년 살인의 추억 이후
3년만의 신작입니다.
메이저 데뷔 2번째작에서 이미 시나리오와 촬영에 대한 이해, 탁월한 미장센 구성 등 탄탄한 기본기와 고집스러운 작가적 집념으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나갈 가장 강력한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그의 주목의 차기작이 한강에 나타나는 괴물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당황스러움이었고, 다들 꽤나 긴 제작기간동안 불안반 기대반의 심정으로 개봉을 기다려 온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칸느에서의 찬사와 쏟아지는 호평속에서 그동안의 우려는 옛날일이 되어버렸고 그 어떤 영화와도 비교되지 않는 기대감 속에 선보여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에 말도 안되는 커다란 괴물이 나오긴 하지만 여전히 봉준호 감독이 보는 세상에서 그 특유의 리듬으로 전개되는 봉준호식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그의 이전작들에서도 확인할수 있듯이 다른 영화에서는 볼수 없는 그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감독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농촌과 스릴러를 연결시켰던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는(제목부터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살인+추억이라니.) 영화 초반 전형적인 스릴러물처럼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여자 시체들이 그것도 연속적으로 발견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 치열하고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야할 형사들은 제대로 범인을 잡을 생각도 능력도 없이 엉뚱한 사람 범인 만들기에만 골몰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흐름이라 당연히 이렇게 되고 저렇게 나가겠지 생각하지만 뭔가 항상 끝이 비틀려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관객은 예상을 그만두고 이야기에 빨려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초반에 그렇게나 웃겨주던 그 모든 것들이 어디서 부턴지 모르게 툭툭 가슴을 건드리더니 어느 순간 뭉쳐져 생각지도 못한 묵직한 카운터를 날리고 멍해진 머리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 여운까지 남겨줍니다.
봉준호 특유의 엇박자 리듬은 단순히 지금까지 보아오던 장르영화들의 흐름을 비틀기만 한건 아니지요, 감독은 지금까지의 익숙한 전통을 비틀어 놓은 자리에 한국사회의 지극히 익숙한 수많은 부조리의 디테일을 빼곡히 채워넣습니다. 그의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한국사회의 어이없는 단면들은 영화의 긴장을 밀고당기는 완급조절의 역할을 할뿐 아니라, 웃기지만 맘껏 웃을수도 없는 우리들이 이 나라를 살아가면서 수없이 반복해서 보아왔던 부정할수 없는 모습인 까닭에 영화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이번 영화의 조합 또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한강과 괴물이군요.
우리가 매일 아침 보고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수있는 친숙한 한강이라는 장소에 나타난 헐리우드나 일본 괴수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돌연변이 괴물의 이야기, 언제나 그랬듯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익숙한 출발을 보이는 듯 하지만 이내 그만의 방식으로 비틀려 가기 시작합니다.
여타의 괴물영화처럼 주인공 괴생명체의 탄생을 짐작케하는 대량의 독극물 방류장면에 이어 찝찝하게 생긴 무언가의 성장을 보여주며 이내 한 자살기도자를 통해 어마어마하게 큰 무언가가 한강 물밑을 헤집고 다니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말해줍니다.
강두 가족의 짤막한 등장 직후 예상보다 엄청나게 빨리 실체를 보인 괴물은 나타나자마자 익숙하기 그지 없던 한강둔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사람들을 납치해 갑니다, 곧바로 저녁 언론이 들끓고 당연히 이어지는 경찰과 군대의 대규모 출동...은 어라, 어디 갔지?
잊으시면 안됩니다. 이번 영화에서 괴물이 나타난 곳은 사이즈가 문제라며 대도시를 한번 쓸고 지나간후 어마어마한 군병력에 프랑스 비밀첩보단체까지 끼어들어 괴물을 찾아 헤매던 뉴욕도, 자위대라는 이름의 50년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괴물전담 엑스트라 집단를 국가에서 직접 양성하고 있는 일본도 아닌, 현장에서 부상당한 한 미군병사의 피부 트러블로 인해 바이러스 존재를 지레짐작한 미국의 정보를 곧이 듣고 눈앞에서 납치당한 사람을 사망자 취급하고 현장 주위를 바리케이트로 둘러친후 세균전 전문팀과 방역인원만을 남기고는 모든 병력을 깡그리 철수시키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 나라의 군인들은 딸을 잃고 넋이 나가있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삶의 터를 10분안에 비워달라는 말을 심드렁하게 뱉어내고 그 나라의 경찰은 모자라 보이는 아버지가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사망자인 딸이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그 나라의 공무원은 이러한 초유의 비상상황에서도 돈 나올 구멍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그 나라의 의사들은 윗 사람의 눈치에 마취도 안된 사람의 가슴팍에 주사기를 찔러 넣는가 하면 그 나라에 들어와 있는 어떤 다른 나라 군대의 사팔뜨기 관계자는 바이러스가 없음을 알면서도 신무기 투입을 위한 당위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한 죄없는 아버지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 놓으며 그 나라의 학교선배라는 사람은 카드빚 때문에 현상금을 노리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후배를 팔아넘기고, 결국 그 나라는 딸을 잃은 한 가족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참다 못한 가족이 직접 나서게 만들고 또한 그 가족을 막아서는 거대한 벽이 되어 최종적으로 그들의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은 감독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내며 영화의 큰 줄기를 형성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전작 플란더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괴물은 누구나 즐길수 있는 오락영화(감독말대로라면...^^)를 표방한 것답게 그러한 부조리를 살인의 추억보다는 훨씬 직접적이며 노골적으로 알기쉽게 드러냅니다.
주인공 스스로가 시스템의 일부로서 그 썩은 행동을 생각없이 저질렀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 본능의 근원적인 곳까지 서서히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져가는 자신을 지켜봐야만 했던 살인의 추억과는 달리, 괴물에서는 스스로의 부조리로 인해 뒤틀리고 폭력적이며 동정없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의해 태어난 불행한 사생아와 그 시스템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나름대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자기 이야기를 외쳐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살인의 추억과 괴물도 마지막만은 둘다 공통적으로 모든 것이 뒤틀려 있는 세상에서 지독한 시스템의 부조리에서 태어난 두 존재가 서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서로를 찾아내려 으르렁대다 또 다시 부조리의 구렁텅이에서 증폭된 이유들에 등떠밀려 서로의 모든 것을 폭발시키고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비극의 장입니다. 살인의 추억은 상당히 복잡한 영화였습니다.
초반의 박두만(송강호)형사는 인물 그 자체로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고 제대로 좀 해보려는 서울에서 온 서태윤(김상경)형사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세상의 벽 같은 존재였지만 사건이 진행되어 가면서 결국은 목적이 같은 두 형사는 묘하게 동질화 되어갑니다. 두 형사는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싶어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 비틀린 대한민국의 농촌마을에서 피해자는 꼬리를 물고 죽어나가고 두 형사의 범인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갑니다. 그 와중에 얽혀든 박현규(박해일)는 두형사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범인 그 자체였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자 이제는 서태윤 형사 스스로가 그를 범인으로 만드려고 안간힘을 써대기에 이릅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은 한번 빠져들면 절대 벗어 날수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의 상징같은 칠흙같은 어둠의 터널을 배경으로 온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진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범인을 잡고 싶은 아니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들어서라도 이 죄책감과 무력함이 뒤엉킨 분노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형사와 범인일지도 모르는, 만약 범인이 아니라면 라디오에 복숭아 등 말도 안되는 일을 증거랍시고 갖다대며 윽박지르는 이 상황에 대한 억울함과 나름대로 배운 자로서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온 권력에 짓밟인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한 젊은이, 두 이유있는 존재의 유래를 보기힘든 무시무시한 감정의 충돌과 예상치 못한 결말, 그리고 그 이후 수십년이 지난 현재에도 벗어날수 없는 상처를 암시하면서 암울하게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구도는 괴물에서 더욱 커진 스케일로 선보여집니다.
자그마한 농촌 마을이었던 배경은 서울 한복판으로 옮겨지고 한 나라와 또 다른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배경으로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존재와 다섯명의 가족이라는 존재의 투쟁의 이야기로 말입니다.
괴물은 괴물이 전부인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괴물과 동등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주인공 가족에게 비중을 두고 있으며 괴물에게 지나치게 이야기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괴물이 영화 초반에 바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수 있습니다. 영화속의 주역괴물에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일반적인 괴물영화에서는 최대한 괴물을 숨겨서 초반에는 그 말단의 일부분만 조금씩 드러내며 관객의 관심을 고조시킨후 결정적인 부분에서 드라마틱한 연출과 함께 괴물의 정체를 보여주면서 그 거대한 공포를 과시하는게 보통이지만, 초반 백주대낮의 갑작스런 습격과 함께 시작하는 괴물은 일반적인 괴수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비틀어 빗겨나감과 동시에 이후 영화가 지나치게 괴물에 집중되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또한 절대악의 캐릭터가 잘 등장시키지 않는, 대립하는 두 존재 모두를 납득가능한 이유로 무장시키는 봉감독 특유의 스타일답게 괴물도 나름대로 이유있는 출생배경과 일관적인 행동양식을 가지고 최종적인 비극의 한축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영화속의 괴물은 인간이 만들고 흘려보낸 독극물에 의해 돌연변이된 생물이며, 겉모습에서도 알수 있듯이 외형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생물로서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한 기형적인 생명체입니다.
일반적인 괴물영화에서 괴물이 무서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괴물영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이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덩치나 힘 또는 고유의 능력으로 개개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항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거나 인간의 문명이난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만한 파괴행위 또는 번식생태 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괴수영화의 기원격이라 할수 있는 일본의 고지라의 경우 방사능의 여파로 거대화한 고지라가 압도적인 크기와 힘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인간에게 침범당한 자연의 역습이라는 의미와 인간문명의 상징인 도시를 거침없이 파괴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인류 멸망의 이미지라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있었고 또다른 괴물영화의 대표격인 에이리언의 경우에도 인간은 물론 인간이 가진 모든 물건을 녹일수 있는 산성 혈액과 이중턱 등 에이리언 고유능력의 무시무시함도 있었지만 자신이외의 다른 생명체들의 몸을 숙주로 삼아 번식에 번식을 거듭해 나가는, (그들 입장에서) 자연적으로 정확하게 짜여진 번식방법에 따라 본능적으로 인간을 사냥해 가는 생태의 공포가 엄청났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은 위에 언급된 선배들과는 다릅니다.
나름대로 인간의 부주의 또는 오만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에서 태어나 인간을 습격하긴 하지만 사이즈도 버스 정도의 크기를 넘지 못하고 신체적으로 제대로 움직이는 것은 입과 앞다리 2개 그리고 꼬리 정도이며 이 생물 저 생물이 덕지덕지 돌연변이 되어 등에는 덜 흡수된 물고기 두세마리를 꽂고 다니는 데다 주행시 방향전환도 그다지 자유롭지 못해 발을 헛디디기 일쑤인 이 괴물은 그 파괴의 규모나 피해정도로 봤을때는 헐리우드로 수출된 고질라는 물론 1954년 초대 고지라와 비교해도 완전 애교 수준이고, 신체적인 특수능력이나 생태적으로 인간의 존재자체를 위협하기는 커녕 어류의 이빨이 커졌을 뿐인걸 반영이나 하듯 제대로 된 저작운동(치아 등을 이용해서 먹이를 씹어 부수는 일) 하나 못해 사람을 뱃속에 집어넣어 한참동안 녹여먹고 채 녹이지 못한 뼈를 토해내는 것으로 봐서 배설기능 또한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보이며 암-수 또는 여왕-일 개체의 구분도 당연히 없어 번식이 가능하기나 한것인지 의심스러워서 생태적인 공포로 따지자면 단 한마리로 온 노스트로모호를 전멸상태로 몰아넣은 인간 습격계의 대선배 에이리언에게 명함도 못내밀 지경인 것입니다.
그렇게 영화 속의 괴물은 기존의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영화상에서 최후의 악당보스로서 자격미달입니다.
그것은 영화 속 괴물의 목적이 보금자리를 잃고 벌이는 인간을 향한 분노에 찬 복수도 인간을 이용한 종족 번식도 아닌 어떡해서든 살아남는 것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몸집이 작았을때는 한강에 자살하는 이들을 주워 먹는 것으로 충분했던 듯 보이지만 그것도 한때였던 모양이지요,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지 대낮에 물밖으로 나와 직접 사람들을 사냥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바이러스가 없었던 이 괴물이 사람에게 해를 입힌 건 두가지 경우 뿐입니다. 먹이를 구해 먹는 경우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 따라서 영화 괴물에서는 괴수영화의 전매특허인 건물 부수기나 화염발사 등의 능력과시 같은건 찾아보기 힘듭니다.
말하자면 현서를 잡아감으로써 강두가족에게는 괴물이 팔다리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짐승이지만 괴물의 입장에서 인간의 상식과 법도가 통하지 않는 야생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괴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먹이사냥을 했을 뿐인 것이지요.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란 그에 직접적으로 얽혀든 사람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는 처연해 보이기 마련, 관객의 입장에서 괴물은 그를 퇴치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악역으로서의 카리스마가 턱없이 모자라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한강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꽤나 동정가는 돌연변이일 뿐입니다.
괴물이 시스템에 의한 사생아라면 이에 맞서는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인 강두가족은 시스템에 버림받은 자들의 집합체입니다. 강두가족의 큰어른인 박희봉 할아버지는 매점에 걸려있는 멧돼지 박제와 사람 잡아먹은 짐승은 팔다리를 절단낸다든가 젊은 시절 밖으로만 나가돌던 시절 등의 대사를 통해 알수 있듯이 왕년에 사냥 관련일을 하시다 그만두시고 늘그막에 한강둔치에서 매점을 하며 강두, 현서와 함께 살고 있는 권력이나 학력 등 소위 높고 똑똑한 윗사람들에게 참으로 약한 우리네 전형적인 어르신들 모습의 무지렁이 할아버지이고 차남인 박남일은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경찰에게 수도없이 쫓기는 생활을 무릅쓰고 자신의 믿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던 민주화의 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시대에 버림받아 욕과 소주에 절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졸백수이며 차녀인 박남주는 뛰어난 실력임에도 너무나 굼뜨고 항상 한박자 늦는 성격 때문에 정해진 시간내에 쏘아야만 하는 경기의 시스템에 버림받은 저선수 시간끄는 스타일 결국은 이런 결과를 가져오느니 하는 조롱을 들어야만 하는 비운의 양궁선수입니다.
거기다 영화의 주인공인 강두는 그 무기력함과 특유의 무지함으로 구제불능의 분위기마저 풍기는 모자란 캐릭입니다.
평형감각에 문제가 있는지 자주 넘어지고 아버지 말처럼 성장기때 단백질 섭취가 모자랐다는게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늘 잠에 취해 늘어져 있는데다 제대로 배운 것도없고 척 보기에도 어딘가 많이 모자란 바보같은 인물에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노랗게 물들어 있는 머리는 나이값 못하는 철없는 어른이라는 딱지마저 절로 붙게 합니다. 어딘가 나사가 빠져도 한참 빠져 보이는 그지만 딸에 대한 사랑만은은 우주최강입니다.
다른 여자애의 아빠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걸 시작으로 현서가 나타나자마자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며 별로 무겁지도 않은 가방을 뒤에서 받쳐 들기까지 하는군요.
강두가 현서를 대하는 모습, 그 끝을 알수 없는 보살핌의 이면에는 깊은 미안함과 자괴감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학부모 참관 수업에 삼촌을 대신 내보낸 것만해도 많은 친구들 앞에서 바보같은 행동으로 현서를 창피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먼저였을 것이고 그렇게 삼촌을 내보낸 것조차도 또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몇번이나 하고 왜 안받았나 묻는 와중에 남일이 그자리에 술을 먹고 찾아간 걸 알고는 살짝 원망을 돌려댑니다. 참관수업에 잃은 점수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새 핸드폰 사주겠답시고 딸에게 보여주는 동전은 자신의 바보같음 때문에 제대로 돈벌이도 남부럽지 않게 뒷바라지도 못해주는 딸한테 핸드폰이라도 하나 좋은거 사주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강두라는 사람이 지금 하는 일이 딸을 위하는 일이라는 본능적인 그 한가지 확신만 있다면 '그거 모아봐야 얼마나' 또는 '어느 세월에 그걸 다' 같은 좀 배웠다는 헛똑똑이들의 비관주의를 떠올리기보다는 그 어떤 편견도 선입견도 없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게 어떤 일이든 일단 하고 보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며, 뒤이어 빨대까지 찾아 꽂아 딸에게 권하는 맥주 한캔도 딸에게 하는 행동에 있어 사회의 전반적인 관념이나 인습 같은 것보다는 지금 자신에게 좋고 맛있고 시원한 걸 딸한테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일단 먼저 앞서는, 생각이 좀 모자라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의식의 겉치레에 속박되지 않고 어떠한 진실이나 본질에 다이렉트로 닿아 있는 것같은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그런 그의 눈앞에서 현서가 잡혀가 버립니다.
존재 자체에 감사하며 자신의 모자람 탓에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하루하루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대하는 딸이 하루종일 깨있는 동안은 뭘해주면 좋아할까 생각뿐인 아버지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에게 그것도 자신이 끌고가다 자기가 넘어져서 놓치는 바람에 벌건 대낮 자신의 눈앞에서 그대로 잡혀가 버립니다.
지금 이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강두가 오징어 굽다 내던지고 헐레벌떡 달려가는 저편에서 흐릿하게 걸어오는게 현서입니다.
어머니 없이 모자란 아버지와 그를 바라보며 늙어가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13살, 넘어진 아빠를 약간은 퉁명스럽게 끌다 놓아버리고 제대로 터지지 않는 한참은 유행지난 모토로라폰을 창피하다며 툴툴대는 보통 여자아이지만 이제 이골이 났는지 철이 빨리 든건지 요즘 제대로 까칠한 애들이 이런 아버지랑 함께라면 꽤 나오고도 남을 법한 꼴도 보기 싫다는 듯한 반응까지는 가지 않으며 아버지가 모아놓은 동전을 보며 살짝 실망은 하지만 이어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 그 한심함을 매도하는 눈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지도 생각지도 못한채 고모의 경기를 지켜보던 현서는 실망한 마음에 매점밖으로 나왔다 사태에 휩쓸려 사라집니다. 눈앞에서 현서를 잃고 매점에 멍하게 앉아있는 강두의 뒷통수 너머로 10분후에 나가셔야 합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고 한강을 뒤로하고 나오는 강두와 아버지 옆으로 (잠시후에 싹 사라지긴 하지만) 수많은 병력들과 장갑차가 들이닥치는 군요
대한민국의 뉴스화면을 몇년 걸러 몇번이나 장식하던 합동분향소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오열하는 가족들과 탈진한 사람들, 그와중에 누워자거나 풍선을 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아이들로 혼란스러운 이 카오스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세상 어디서도 보기힘든 희한한 광경입니다.
이어서 하나둘 모여든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과 고모가 뒤엉켜 시선은 한곳 현서의 사진을 보고 울어대긴 하지만 네명이 모였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건 할아버지뿐입니다. 고모는 동메달을 사진옆에 두고 쓰러지고 아버지는 잠깐 정신이 들면서 또 다시 북받쳐 오르는 현서생각에 주위 살필 겨를이 없으며 삼촌은 현서생각과 형의 바보짓에 대한 분노가 섞여 폭발하는 난리부르스. 그 와중에 높은 사람 등장이라며 정작 가장 상처입은 당사자인 유가족들이 경호원들에게 쓰레기 치우듯 밀려끌려 나가는 광경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치밀게 하는군요. 병원으로 끌려간 강두에게 한밤중에 걸려온 현서의 전화, 하지만 이들을 믿어줄 사람은 없고 현서가 얼마나 굶은 거지라는 생각에 가족들은 두말도 필요없이 탈출을 결행합니다. 부모란게 또 가족이란게 자신이 굶는 건 예사일지라도 자식이 한끼 굶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로 아는 게 보통이니까요. 간만의 백광호(^^) 일당에게 전재산을 올인하고 얻은 샷건과 지도, 방역복을 방역차에 싣고 가족들은 한강으로 향합니다.
일주일에 14개의 방역업체가 요일별로 들락거리는 검문소, 바이러스 발생지역이자 생물학적 제1급오염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방역차에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별 검문도 없이 군인도 경찰도 슬슬 뒷걸음질 치는 마당에 후드를 꾹 눌러쓰고 창문까지 열어보는 건 돈약속이 되어있는 구청과장뿐입니다. 에효... 하수도를 뒤지기 시작한 강두가족과 스쳐지나가는 건 영화 초반 매점에서 자고 있던 송강호의 틈을 노려 매점물건을 건드리던 세주와 그때 동생이 희봉 할아버지에게 들킨걸 눈치채고 황급히 동생을 데리고 사라지던 세주형, 두 노숙자 형제의 목적지는 또다시 강두네 한강매점이군요. 형이 강조하듯 자신들의 한달식량을 해결해준 매점서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형제는 괴물에게 습격당해 은신처로 옮겨집니다.
50만원이나 주고 산 지도만 믿고 의욕만 넘쳐 쑤시고 다닌 첫번째 탐색은 실패, 쓰러지듯 매점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매점의 컵라면과 쏘세지, 김밥 등으로 요기를 합니다. 네 가족이 음식을 먹는 중에 강두의 뒤에서 스르르 일어나 김밥을 집어드는 현서와 당연한 듯 강두가 계란을 소금에 찍어주고 남주가 안스럽게 볼을 쓰다듬으며 남일이 젓가락을 챙겨주며 할아버지가 만두를 먹여주는 일련의 장면들은 지금 시점에서 이 다섯가족이 가장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광경이며 영화 통틀어 단 한번 이들 모두의 생각이 단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가장 따뜻하고 저리게 그리운 가족의 환상에 이어지는 것은 그렇게 가족을 그리며 그들이 자신에게 먹여줄 사랑 담긴 음식들을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대신하는 현서의 눈앞에 괴물이 내려놓고 간 세주와의 만남입니다. 콜록거리는 세주를 보고 놀란 현서가 지척에서 들려오는 괴물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아이의 눈을 가리고 온몸을 꼭 세주를 껴안는 모습에서 누나 혹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잠든 강두를 한심해하는 남일과 남주에게 일장연설을 풀어놓는 희봉 할아버지, 강두 어릴적 얘기부터 자신이 밖으로 나돌던 이야기, 결국은 현서 이야기까지 이어지면서 울분이 북받칩니다.
보는데, ...우릴 봐.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강두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창틈으로 고개를 쳐들고 빗물을 하염없이 받아 삼키고 있는 그놈이 보이고 할아버지의 얼굴은 전에 없던 분노로 한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산을 누비던 전투모드에 다시 한번 불이 들어온걸까요, 첫발이 놈을 도발시켜 매접이 뒤집히는 위기에 몰리지만 제2탄은 정확하게 안면을 강타, 놈은 배를 보이고 뒤집혀 정신을 놓기에 이릅니다.
잠시 틈을 보던 할아버지가 황급히 말렸지만 성급한 남일의 확인사살에 놈은 되려 깨어나버리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뒤따라 가면서 샷건을 난사하는 세가족, 유효타는 나오지 않고 물속으로 도망쳐간 괴물은 다시 이쪽을 노리고 돌아나오고 할아버지는 아들이 준 한발 남았다는 총을 건네받고 분에 넘치는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괴물 앞에 나섭니다. 둑길로 올라와 돌진해오는 괴물의 정면을 노리고 할아버지는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알은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계산을 잘못했음을 알아차린 아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돌아서서 아들에게 어여가라는 손짓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서 아들을 향한 원망따윈 한점도 찾을수가 없습니다... 순식간에 아버지는 돌진해온 놈에게 받쳐 쓰러지고 괴물은 아버지의 발목을 꼬리로 감아 손쓸새도 없이 그를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 꽂습니다.
이는 할아버지를 물어가지 않고 백다이빙으로 사라져 버린 점에서 알수 있듯이 괴물에게 있어 인간에 대한 먹이포획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가장 강력했던 공격행위이며 이 보잘것 없던 할아버지가 짧은 순간이나마 이 커다란 괴물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었던 무서운 존재였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우리의 희봉 할아버지는 괴물에 대한 안면 유효타로 놈을 완전한 무방비상태로 뉘여버린 최초의 인간이며 남일의 성급한 엉터리 확인사살만 아니었으면 할아버지의 노련한 마무리로 인해 괴물의 인생과 첫 영화출연은 아마 거기까지 였을 것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괴물은 할아버지에게 극에 달한 분노를 내뿜으며 자신의 입장에서 반쯤은 정당방위에 가깝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잔인한 행동으로 할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이는 남일과 남주 특히나 강두에게 괴물을 상대하는 것이 단지 현서를 찾는 단서로만이 아닌 이 못난 자신을 평생 그렇게도 챙겨주시던 아버지를 살면서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잔인한 죽음과 함께 비에 젖은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그렇게 보내게 만든 철천지 원수와의 비극적인 혈투로 번지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이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 아닐수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앵커의 멘트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진짜 영웅의 죽음은 뒤로한채 나름대로 열심히 하긴 했지만 결국 한 미군병사의 영웅만들기와 화학무기 에이전트 옐로우의 투입결정을 보도합니다.
이미 강두는 군당국에 잡혀가고 남일은 선배에게 정보를 얻으러 가며 남주는 한강에 남겨진 상태.
한편 괴물의 은신처에서 현서는 세주에게 먹고 싶은걸 물어보며 시체들에게서 옷을 벗겨내 연결하기 시작합니다.
세주가 온 이후로 현서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둘씩 옮겨져 오는 사람들을 잘 건드리지도 못하고 핸드폰만 두손가락으로 겨우 빼내던 현서지만 지금은 지독한 시체 냄새를 참아가며 옷을 벗겨내고 자신도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 마당에 세주에게 먹고 싶은 걸 물어보며 무서움을 가시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녀도 지금 이 순간 가장 먹고 싶은 건 맥주라면서, 쓰다고 채 한모금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챙겨준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과 함께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챙겨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제 현서가 세주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너무나 무조건적으로 자신에게 잘해주던 아버지를 지금까지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상황 이 아이를 보고 있자니 화면 가득 크게 잡힌 현서의 미소짓는 얼굴에 조금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 떠오르는 듯 합니다.
힘들게 만든 밧줄이지만 손에 닿지가 않고, 갑자기 돌아온 괴물은 속에서 사람들의 뼈를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주의 형을 입속으로 끌어다 넣는 괴물을 보고는 세주의 얼굴을 감싸 안습니다. 다음 순간 현서에게 덤벼드는 괴물, 그나마 안전한 곳은 그 덩치의 괴물이 비집고 들어오기에는 무리인 은신처 구석의 구멍뿐입니다.
남일로부터 현서 원효대교북단 문자를 받은 남주는 강두에게 전화를 하고 현서의 위치를 알게된 강두는 마음이 급합니다.
하지만 주위에는 수많은 의료진이 둘러싸고 있고 그들은 아무도 강두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딸이 있는 곳을 알았지만 있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있어야만 한다며 온몸이 꽁꽁 묶인채 갈수없는 이 상황, 이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인공적인 마취가 제대로 먹힐리가 없습니다.
현서의 납치로 촉발된 강두의 비현실적인 힘이랄까 상식을 뛰어넘는 이 현상은 아버지 희봉의 죽음으로 증폭되고 지금 노바이러스를 들은 순간 폭발 직전에 이르며 이는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현서옆에 누운 세주가 죽은 듯 잠잠하자 현서는 조바심을 내며 세주를 흔들어 깨웁니다. 다행히 살아는 있지만 세주는 심하게 허기지고 코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비장한 얼굴로 홈에서 나와 그 무서운 괴물에게 맥주캔를 던져 자는지 확인을 하고 누나 잠깐 나갔다 온다며 세주에게 말한후 괴물을 밟고 밧줄을 향해 뛰어 올라갑니다.
세주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확인함으로써 이제 세주를 지킬수 있는 건 자신뿐임을 자각하고 뒤이어 심상치 않은 세주의 생명의 위기를 느낀 현서는 무서우리만큼 강해집니다. 예사롭지 않은 손길로 세주의 이마를 훔치고 피가 계속해서 흐르는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이미 비 떨어지는 천정만 바라보던 감금 초반의 현서는 없습니다.
맥주캔으로 상태 확인후 결연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이미 자신의 동생과 다름없는 아이에게 나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는 현서. 현서가 불러오겠다는 사람의 제일 첫머리를 의사와 119가 차지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만큼 지금 현서의 머리속에 가득한 것은 세주의 안위 뿐이며 괴물의 거대한 뒷모습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공포가 엄습해 오지만 고개를 돌려 세주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은 후 발을 떼어 달려나가 괴물의 등을 딛고 뛰어올라 밧줄을 잡아냅니다.
하지만 뒤이어 찾아온 것은 압도적인 절망, 괴물의 꼬리에 휘감긴 현서는 콘크리트 바닥에 얌전히 내려 앉습니다.
그와중에도 현서를 가장 공포에 떨게 한것은 괴물의 뒷모습도 혹시 그녀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눈동자도 아닌 세주가 이 은신처에서 그나마 안전한 장소인 구멍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현서의 팔을 기어오르는 거미를 보면서 괴물에게 자신은 자신에게 이 거미처럼 죽이려면 언제든지 죽일수 있는 벌레에 불과하다는 아득한 공포와 절망감에 휩싸이면서도 지금의 현서에게는 세주를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게 해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불안감으로 요동치는 가슴을 억지로 눌러내리며 현서는 세주에게 숨죽여 들어가라고 속삭입니다. 세주도 상황을 인식한후 고개를 끄덕이고 현서가 괴물의 상황을 살피려 고개를 돌리자 괴물의 눈꺼풀이 순간적으로 열리고 현서는 있는 힘을 다해 세주에게 뛰어갑니다, 뒤이어 몸을 뒤튼 괴물의 돌진과 함께 현서와 세주는 구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괴물의 벌린 입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됩니다.
자신의 피가 담긴 주사기로 간호사를 위협해 탈출한 강두는 괴물의 은신처로 찾아 들어오고 자신의 위쪽으로 지나가는 괴물의 입에서 현서의 팔을 봅니다.
앞서 괴물에게 일격을 당하고 하수고 아래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남주도 겨우 깨어나 저멀리서 뛰어오는 괴물을 활로 겨누지만 오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먼저 들리는 군요. 필사적으로 남주에게 현서의 위치를 알린 남일은 심심한차에 잘됐다는 노숙자와 함께 손이 안보이는 솜씨로 화염병을 만들면서 원효대교로 향하고 이미 원효대교 남단에는 월남전 당시 미국이 베트남에 무대포로 살포한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의 패러디 버전인 에이전트 옐로우가 설치되어 있고 이를 지키는 경찰들과 시위대 사이의 실랑이가 한창입니다.
하지만 괴물이 시위장소로 올라오고 경찰과 시위대가 미처 모두 피하기도 전에 미군 관계자는 주위의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살포스위치를 누릅니다. 화학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필사적으로 뛰어온 강두는 에이전트 엘로우의 위력에 괴로와 뒹구는 괴물의 입을 억지로 열고 현서의 팔을 잡아 온힘을 다해 끌어냅니다. 현서는 세주를 꼭 끌어안은 모습으로 축축히 젖은채 괴물의 입안에서 아버지의 손에 끌려나옵니다.
아버지 강두가, 할아버지 희봉이, 삼촌 남일이, 고모 남주가 영화내내 그 무수한 역경과 장해을 헤치며 그렇게 찾아 헤맨 현서는 온몸을 축 늘어뜨린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지옥같은 곳에 끌려와 그저 불안해만 했던 작은 소녀에서 깨어나 세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자기보다 약한 자를 위해 희생했던 소녀는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현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책임이 아닌 사고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몰리는 와중에도 함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용감히 희생하다 죽어간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상징이자 헌사이며 그들을 기리는 위령비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고현장에서 숭고하게 죽어간 그들처럼 현서는 자신도 무서워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얼굴도 모르지만 같은 사고로 같은 공포에 떠는 자신보다 어린 또 약한 아이를 보호하고 무서움을 가시게 해주며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함께 이 위기를 빠져 나가려 노력하다 죽어갑니다.
지금까지 영화의 모든 상황을 보아온 우리지만 믿을 수도 없고 믿기지도 않으며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유의 사고로 인해 무너지는 백화점과 추락하는 다리와 불에 타는 지하철에서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그 순간에도 자신보다는 슬퍼할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주위에서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너무나 보통 사람들이지만 마지막 순간 스스로를 거룩히 하며 죽어간 수많은 현서가 있었다는 것을 읽고 들어 알고 있으며 감독은 단순히 희생자라는 단어로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어이없고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모든 것에 치가 떨리는 그들의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마지막을 현서라는 작은 소녀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보여줍니다.
뒤쫓아 달려온 남일과 남주도 현서를 끌어안고 믿기 힘든 이 현실에 몸서리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들을 억눌러온 모든 것들에의 분노를 오로지 한곳에 쏟아 부으며 각자의 무기를 손에 쥔채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뒤집어 쓰고 괴로와 날뛰는 괴물에게 달려듭니다. 이 마지막 살아남은 가족과 괴물의 최후의 사투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뒤틀린 세상을 배경으로 둘 모두 어쩔수 없는 이유로 생겨나 이 세상의 부조리로 증폭된 서로에의 증오를 마주선 서로에게 퍼부어 대며 울부짖는 처절한 비극에 다름아닙니다.
남일의 화염병 난사와 노숙자의 기지 넘치는 휘발유 뿌리기, 단 하나 남은 화염병의 실투에 이어지는 남주의 기적같은 라스트샷, 온몸에 불이 붙은채 물만을 찾아 강으로 뛰어드는 괴물을 막아선 강두의 최후의 일격은 그 기법과 연출, 아이디어 모두에서 장르영화 최고의 쾌감을 안겨주지만 이 모든 것들이 현서의 죽음을 본후에야 가능했다라는 점은 보는 이의 폐부를 찌릅니다. 재난에 맞서 주인공들 각자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혼신의 노력으로 최후의 위기에서 탈출하거나 극복한후 기적같은 만남으로 재회의 기쁨을 함께 해야할 인질 캐릭터의 죽음이 그 모든 그림같은 액션의 모티브가 되는 아이러니.
거기다 지금 이들 앞에 펄떡거리는 괴물은 주인공들에 대한 살기를 불태우며 아무리 죽여도 부활에 부활을 거듭하며 공포스럽게 그들을 쫓는 몬스터가 아니라 자신의 탄생에 결정적인 아니 그를 태어나게 하다시피한 존재로부터 직접 치명적인 세균병기를 얻어맞은, 자신의 창조주로부터 스스로의 존재를 거부당하고 당한 사람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지만 살기위해 저질렀던 자신에게는 어쩔수 없었던 일에 대한 댓가를 죽음으로써 치르는 슬픈 사생아입니다.
쇠파이프를 괴물의 입속으로 깊숙히 찔러넣고 이 모든 비극을 저주하는 듯한 슬픈 눈빛을 보인 강두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쓰러져 있는 세주에게 다가갑니다. 죽은 현서를 끌어안고 멍한 눈빛으로 강두를 바라보는 남주와 남일을 뒤로한채 그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딸과 마지막을 함께 한 그 아이에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현서와 세주를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보게 하는 단서는 영화에서 꽤 여럿 등장합니다.
그둘은 경로는 틀리지만 강두의 매점에서 같은 음식을 먹었고 괴물의 은신처에서 현서는 세주에게 있어 친누나 혹은 거의 어머니에 가까운 존재였으며 마지막 순간 그둘은 자궁형태의 괴물의 입에서 아버지 강두의 손에 의해 쌍둥이의 형태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현서의 세주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세주가 살아남음으로서 조금이나마 보상받게 되고 딸을 너무나 사랑했던 이 철없고 모자라지만 아무런 편견도 선입견도 없는 이 아버지는 세주에게서 그렇게 간절하던 현서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눈을 뜬 세주를 끌어안습니다.
강두가 세주에게 너... 현서랑 같이 있었어? 라고 묻는 순간 카메라는 눈감은 현서를 비춘후 바로 세주를 화면 가득 잡아내며 지금 현실의 상황에서는 저 멀리 떨어진 남주에게 안겨있을 현서를 안아올리는 강두의 모습을 보여주고 곧이어 강두의 품속 어깨 너머로 눈을 뜬 세주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두가 세주를 현서와 완전히 동일시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강에서의 사투이후 몇개월... 눈내리는 어두운 밤 한강변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매점 안에서 눈을 번득이고 있는 강두가 보입니다.
저멀리 강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리자 강두는 곧바로 엽총을 손에 쥐고 창문을 엽니다. 다음 장면 밥상을 차리고 세주의 밥을 넉넉히 펀후 자신의 밥을 퍼고 던진 밥먹자 한마디에 세주가 벌떡 일어나는 군요. 입안 가득 흰 쌀밥을 우겨넣으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세주를 바라보며 강두도 조금전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조금 누그러 뜨립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할아버지, 강두, 남일, 남주, 현서의 다섯가족은 완전히 흩어졌습니다.
할아버지와 현서는 돌아올수 없는 곳으로 떠났고 현서가 죽은게 엊그제인데 생전 보지도 못한 아이를 데려다 키우겠다고 나서는 강두에 대한 그것도 현서의 죽음을 자신의 눈앞에서 보았던 남주, 특히 남일의 반응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세주를 현서가 남기고 갔다고 굳게 믿는 강두에게는 이것이 그 비극을 헤치고 나온데 대한 조그마한 보상이자 나름대로의 행복일지도 모르겠지만 기존 가족의 완전한 해체위에 겉으로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이 조합의 탄생을 이야기의 마무리로 삼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를 기존의 일반적인 가족영화에 포함시키기에는 망설여지는 이유로 남습니다. 이렇게 영화 괴물의 마지막은 상반되는 두개의 이미지의 겹침을 계속 보여주면서 막을 내립니다.
저렇게 사는 것도 사는건가라는 생각과 그나마 저렇게라도 사니 다행이라는 생각, 눈내리는 캄캄한 밤의 한켠에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매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갇힌 누구의 이해도 바랄수 없는 철저한 소외라는 느낌과 칠흙같은 암흑속을 작게나마 밝히는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희망이라는 느낌을 동시에 던져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삶은 계속됩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그것은 한강에 나타난 괴물의 이야기이고 그 괴물에게 딸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정작 그 딸을 찾아주어야할 모든 것들이 그 가족 앞을 막아서는 이야기이며 딸을 잃은 슬픔과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장해를 뚫고 딸을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가족의 이야기이자 사고의 한복판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보다 약한 자를 지키고 죽어간 거룩한 희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진 조그마한 촛불 같은 희망에 모든 걸 걸고서라도 그렇게 또 살아갈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졌던 것은 이런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나왔다는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기도 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이런 영화, 이런 결말이 나올밖에 없고 믿기 싫지만 또 부정할수도 없는 이 나라, 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슬픔 또한 뼈저리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의 수많은 의견들이 인터넷과 언론을 뒤덮고 있는 지금 그 많은 분들이 마음속에 이것 하나만큼은 간직해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제 더이상 이 땅에서 또다시 현서를 그렇게 보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