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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놓은 첩 잡아주는 회사에 직원 무려 100명!

아시아경제 |2006.08.07 14:06
조회 110 |추천 0


광둥성 둥관에서 열린 일단의 현지 경제인들의 부부 동반 행사.

요즘 둥관에 파다한 소문들을 들어보면 부부가 아닌 첩이 참석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어로는 웨두오웨하오(越多越好)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틀린 말이라 하기 어렵다. 이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백 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는 속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중국 남성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할 경우 여자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는 지구촌에서 둘째 가라고 하면 펄쩍 뛸지도 모른다. 카마수트라에 결코 뒤지지 않을 소녀경(素女經)이라는 방중술 교과서가 수천년을 두고 내려온 것이나 전족(纏足)의 풍습이 불과 100여년전까지 존재했다는 사실만 봐도 이런 단정은 크게 과하지 않을 듯 하다. 춘궁투(春宮圖)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리는 춘화도가 아직까지도 저자 거리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지천인 현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보인다.

 

실생활로 깊이 들어가면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분명한 일부일처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바오얼나이(包二奶), 즉 첩을 두는 것이 거의 문화로 굳어져 있는 것이다. 어느 수준인지는 "남자들이 일생을 편하게 보내려면 여자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우선은 부인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한다. 그 다음은 딸, 장모, 첫째 첩, 둘째 첩의 순서이다"라는 항간의 유모어가 잘 설명하지 않나 보인다. 우스개 소리이나 심각한 현실을 증명해주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광둥성 광저우의 한 사설 탐정 사무실.

첩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영업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유명한 사례 역시 상당히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마 12년여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왕바오썬(王寶森) 전 베이징(北京)시 부시장 사건인 것 같다. 그는 당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겸 총서기와 비견될만한 파워를 자랑하던 천시퉁(陳希同) 베이징 당 서기의 후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웬만한 부장(장관)급은 그의 앞에서 오금을 제대로 펴지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그의 좋은 시절은 얼마 안 있어 곧 막을 내렸다. 후견인인 천서기가 각종 비리 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그 역시 코너에 몰리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권총 자살의 극단적 결단을 내렸다. 그의 사후 밝혀진 비리는 엄청나게 놀라웠다. 무려 5명의 첩에게 별장까지 구입해주면서 호화생활을 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설에는 첩이 2-3명 더 있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까지 밝혀진 것은 5명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 9월 사형당한 청커제(成克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부위원장의 사례는 더욱 기가 막힌다. 부총리급의 최고위 간부라는 신분을 망각, 리핑(李平)이라는 정부를 두고 뇌물 수수등의 각종 비리를 자행했다. 그가 챙긴 4000만위안(元. 48억원)대의 뇌물은 그가 정부와 말년의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베이징 근교에 자리잡은 한 호화 별장의 모습.

적지 않은 별장들이 첩살이하는 여성들의 소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첩 문화의 유행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꼽혀야 하는 것이 법률의 미비라고 단언할 수 있다. 중국에는 현재 중혼죄라는 것이 있다. 이 법을 적용할 경우 한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의 이성과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은 법리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간통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비난은 할 수 있을지언정 법적인 잣대로 처벌하지 못한다. 문제는 간통죄를 대신할 수 있을법한 중혼죄라는 것이 아주 애매하다는 사실에 있다. 첩과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거나 혼인 신고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진짜 그렇다. 첩을 두고 있더라도 빠져나가는 길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원래 성에 너그러운 중국인들의 자유분방함 역시 거론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성을 즐겼다. 그 점에서는 성을 은밀한 것,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과는 확실히 상당히 많은 차이가 난다. 더구나 이 성향은 사회주의가 들어오면서 더욱 강해졌다. 유물사관에 입각한 인생관에서 보면 성은 즐기면 즐길수록 좋은 것이다. 능력 있는 남성들이 첩을 두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이중톈(易中天) 샤먼(厦門)대학 교수의 분석이 그야말로 정곡을 찌른 것 같다.

 

개혁, 개방 정책의 확산으로 졸부들이 많이 양산되는 현실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는 경제가 발전한 지역 남성들의 첩을 두는 문화가 그렇지 않은 지역들에서보다 훨씬 더 극심하다는 사실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개인 사업가인 C씨의 설명이 상당히 호소력이 있는 듯 하다. "나도 사업을 하지만 돈에 여유가 상당히 있는 사업가들은 대부분 첩이 있다고 보면 된다. 부인이 묵인하든 몰래 하든 여유가 있으니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아는 모씨는 첩이 전국의 각 도시에 몇명씩이나 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한다"면서 첩 문화가 경제 발전과 직결돼 있다고 단언한다.

 

젊고 예쁜 여성들의 편하게 살려고 하는 행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공급이 있으니 수요가 있게 된다는 논리가 아닌가 싶다. 본인 자신이 첩으로 몇년을 산 경험이 있는 30대 초반의 베이징 시민 Z모씨의 술회는 놀랍지만 오늘날의 현실인 듯 하다.

 

"솔직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봐야 얼마 받지 못한다. 기껏해야 월 2000위안 전후에 불과하다. 그러나 돈 많은 유부남 하나 잘 만나면 한달에 최소 5000위안은 받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잘 하면 집까지 사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한다. 별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이처럼 많은 수입을 올리는 직업이 세상에 어디 있나.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첩으로 살겠다. 솔직히 내 주위에 이런 생각을 하는 여자들은 부지기수다"라고 고백, 첩 문화의 확산이 여성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했다.

 

현재 첩의 형태로 전국 곳곳에 살고 있는 여성들은 많게는 100여만명, 적어도 20-30만명은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첩 문화의 경제적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때문에 충분히 계산이 가능하다. 1인당 월 1만위안(120만원) 전후에 상당하는 금액과 각종 편리를 남자로부터 제공받는다고 볼때 1년에 최대 1200억위안(14조4000억원), 최소 240(2조8800억원)대의 시장은 형성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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