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글읽고
눈물날뻔햇어요..
다시한번
일본이 싫어지고
저건 진짜 인간이 아니네요..
‘천황폐하를 위해 몸을 바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장교가 말했다.
하루 밤에 10∼15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임신. ‘아직 쓸 만한데’하는 생각에 자궁째 태아를 들어냈다.
“일본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을 땐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그 해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하고 물었다.
그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긴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박은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을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고
정씨는 표현했다.
그 다음 군인들은 못판 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정씨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1933년 12월1일에는 한 여성이
장교가 철봉을 자궁에 꽂아 죽어버렸다.
다음해 2월4일에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피살되었다.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다.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다.
문신은 온몸에 걸쳐 새겨졌다.
군인들은 처음부터 죽일 셈으로 여성들에게 문신을 했다.
마차에 실려온 여성들을 들에 팽개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중국인 남자가 일본인이 사라진 뒤,
숨이 남아 있던 여자 두명을 옮겨 약 두달간 간호해줬다.
정씨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하며 의자에 앉아 있는 내 팔을 꽉 쥐며 울부짖듯 소리질렀다.
눈앞에 있는 일본인이 자신을 극한까지 학대한 일본 병사와
겹쳐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문신한 자국을 보여줬다.
정씨가 손가락으로 뒤집어보인 입술 안쪽엔
선명한 짙은 보라색 반점이 있었다.
좀 흐릿했지만 혓바닥에도 푸르스름한 반점이 몇군데 있었다.
수많은 바늘로 혀를 찔렀기 때문에 그뒤로는 말하기도 곤란해졌으며
지금도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고 했다.
등 아래쪽은 척추를 따라 둥근 반점이
염주처럼 줄줄이 그려져 있었다.
가슴과 복부 문신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 낙서 같은 무늬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
일본 군인들은 정녕 그 잔인한 행위를 즐기면서 했음이 분명했다.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지배하고 있던 조선에서
일본은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 버러지처럼 짓뭉갰다.
정씨의 몸에 깊숙이 새겨진 문신은
그 어떤 많은 얘기를 듣는 것보다도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지배의 실태와
천황의 군대의 악랄한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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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일본에 요구하는 것
처음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는 일본 정부에 다음의 6개항을 요구하면서 시작 되었다.
1.일본 정부는 조선인 여성들을 위안부로서 강제 연행한 사실을 인정하라.
2.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라
3.만행의 전보를 스스로 밝혀라
4.희생자들을 위해서 추모비를 세워라
5.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배상하라
6.이러한 잘못들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역사교육 속에서 이 사실을 가르쳐라.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계속 무시하는 자세를 취해 왔다.
수요시위 집회 13년. 강산도 변한다는 10 여년의 세월 사이에,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된 보상은 아직도 이루어 진 바가 없다
-일본놈들아 독도어쩌고 우끼지말고 이거부터 사과해
원래 앞에서는 실실웃고 뒤에서는 할짓안할짓 다하는것이 일본
월드컵도 같이 해놓고 좀 친해졌나 싶었더니
왜곡하고 독도달라고하고 이런 싸이코들!!이런짓을 해놓고도
위안부같은게 없었다고 할꺼냐?
네이버에 인조이재팬에 들어가보면,
위안부할머니들보고 돈많이받고 일해놓고 이제와서 보상해달라고하는
창녀들이라고 말하는 쪽발들이 수백명임..정말 그거보면
머리에서 화산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