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섹스라고 대답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자꾸만 조장해대는
빨간 섹시함으로 두루 포장된 마케팅의 이 영화.
하긴, 섹시함으로 먹칠을 해대도 전혀 야하지 않은 영화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 할 때, 이 영화는 충분히 그 표방함에 일응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데서 성공적이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인체 구석구석을 클로즈업 해주는
친절한 포르노그라피를 보더라도 결코 섹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옷을 얼마나 많이 벗느냐가 섹시함의 요소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양한 제반 사정과 목적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숨결 하나 하나가 총 결집되어
만들어지는 복잡 다단한 결과물이며,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야하고
스크린을 뚫어져라 보고 있기 무척 민망하기까지 하다.
일단 야하다는 상업적 요소를 획득한 시점에서
이 영화가 나아간 길은
적어도 연애는 순간적 쾌락과 낄낄거리는 수다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 숨겨진 책임과 눈물 그리고 매우 아플 것 같은 뺨 싸다귀 한 대.
맨 살의 닭을 만지는 것을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는 최 홍이
손 수 닭강정을 도시락에 싸오던 날
이유림이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구타하던 심정
그리고 닭강정을 맨 물에 씻어 버리며 울던 최 홍의 눈물
헤어지면 그 뿐.
둘 만이 간직했던 기쁨과 눈물은 오직 두 사람만이 보유하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성추행이라는 객관화된 결과에 대한 사실 뒤에 숨겨진
과정들 낱낱은 오직 두 사람만의 것.
그에 대해 아무리 설명하려 들어도 그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가 현실과 다른 점은,
바로 위의 그러한 사정을 관객들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래서 영화가 속내와 다른 길로 나아갈 때 관객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증폭된다.
영화가 거기서 끝이 났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이유림이 그 뒤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최홍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을 이유림을 걱정하다 못해
찾아가서 어르고 달랜다는 것등의 부연 설명을 줄줄이 엮어놔서
해피엔딩으로 끌고가는 현실과의 타협이란,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자질구레한 현실 속 대사들로 구차함을 만들어가는 것은
흡사 홍상수 영화를 떠올리게 하고
시종일관 섹시함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이 영화 별로 마음에 안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일이 아니었다면
강혜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이 영화 캐릭터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림이 범행의 연속으로 끈질기게 한 여자를 괴롭혀댈 때
말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최홍이 참 답답했지만
같이 모텔에 쉬러 따라간 최홍을 보며
그 동안 내숭이었단 말인가? 라는 크나큰 반전으로 뒤통수를 호되게 맞고
여자들은 그래도 순수한 종족'이라는 환상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고 반성도 했다.
동시에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들이 늘어나서
스토킹을 합리화하는 어처구니 없는 놈들의 양산에 이 영화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