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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철책선 옷입다.

김경희 |2006.08.19 14:07
조회 27 |추천 0

철책선은 분단의 상징이었다. 한반도 남부를 둘러싼 해안선을 따라 둘러진 철책선. 생활주면에서 분단을 경험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한 매체였다. 사실 해안가의 철책선을 보며 저것 정도 못 넘어올까하는 조소를 머금을 때가 많았다.

다시 철책선이 쳐지고 있다. 이번에는 해안을 침범하는 적의 무리가 아니라 포스코를 넘보는 적(?)을 겨냥해 포스코의 담장에 쳐지고 있다. 어제 인터넷으로 본 철책선에 앞서 기차커버 비슷한것(코일싸개라나 머라나)이 이미 포스코 문에 거대철책선으로 쳐진 바 있다. 그것도 부족한 듯 해안선에 쳐저있던 것과 같은 뾰족침을 달고 있는 철책선이 또 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포스코는 그 코일커버와 뾰족 철책선이 필요한만큼 일상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가. 그것들이 포스코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필수 방어기제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포스코의 철책선 두르기는 창사이래 '외부세력에 의한 점거'라는 불명예 재발방지와 사유권보호라는 차원에서 자기방어적 행위에서 나온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 발로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있을 지라도 포스코의 이런 액션은  엄살부리기나 호들갑으로 내겐 비쳐진다. 그게 개인이 아니라 세상을 조용히 움직이는 사회적 기업이 하는 것이기에 무척 불쾌하다. 포스코의 재산과 안녕은 마땅히 지켜져야한다.

  그러나 포스코 점거로 많은 구속자들이 발생하고 그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마당에서 철책선 두르기를 포스코가 억울한 희생자이며 엄청난 피해자임을 알리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포스코 점거로 회사측의 불편과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포스코 점거사태라는 결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에 주목한다면 이런 철책선 두르기같은 해프닝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해안선의 철책선이 국민들에게 반공의식과 체제유지를 위한 선전도구로서 유용했을지 모르나 아름다운 해안선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뾰족한 철책선의 망을 통해 볼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매우 거추장스럽고 거북스러운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포스코 앞에 놓인 겹겹의 철책선은 포스코를 안전하게 지켜줄 방어막이 아니라 그동안 포스코가 노조활동에 대한 탄압과 불법하도급에 대한 감시와 책임을 방관하였었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는, 설치자의 의도와는 반대로의 선전물이 될 수있다. 그리고 또 그것은 그것을 매일 봐야하는 시민들의 눈과 감성은 안중에도 없다는 이기주의로 비친다. 일반 가옥의 담장위에 사납게 깬 병조각을 꽂아 위협하는 폭력을 대기업이 시민을 상대로 할 수 있는 행위는 결코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노골적인 선전문구가 아니라 이미지광고로 감동을 주고자 하는 포스코의 광고전략과도 매우 대치되는 행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포스코는 철책선 숲에 싸여있다 하더라도 결코 포스코가 바라는  안녕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일 때 그들이 추구하는 안녕은 오히려 더 빨리 당겨질 수 있게 된다. 하루빨리 사회적기업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기업, 포스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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