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 이루어진다
2. 아버지와 소
오늘은 1985년 7월 4일.
벌교장날이다.
우시장도 열렸다
5일장
아버지는 동이 트기전에 우시장엘 가셨다.
장날이면 항상
나는 일찍 일어나야한다
눈꺼풀도 안떨어진채로
가마솥에 불을 지핀다.
장작불도 아닌 덜마른풀과 소나무잎
바삭거릴정도로 마르지 않아 연기가 자욱하게
부엌가득 찬다.
`콜록 콜록, 콧물반 눈물반`
여물을 가마솥가득 채운채 팔팔 긇여서야
나무가래로 저어 소죽통에 집어 넣어준다.
소죽이란 주로 들풀을 낫으로 베어와 10센치정도 크기로 작두로 썬다음 여물통에 모아두었다가 그때그때 알맞은 양만큼 가마솥에 쌀겨와 함께 쪄서 소에게 먹이는 소가 먹는 밥이다
1시간 30분이 흘렀다.
학교갈 시간이 다 되어
어머니와 교대를 했다.
우리집엔 11마리(어미소 8마리,송아지 3마리)의 한우(소)를 키웠다.
처음엔 2마리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소에게 나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태어나기전부터 아버지는 소를 키우셨다.
아버지의 형제(7남3녀)중 4명이
소 가격이 올라간다고 하여
요즘말로 투자한 것이다.
그날따라
아버지가 늦도록 들어오지 않으셨다.
중학교 3학년인 나는
인문계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방울이가(개이름) 짖어데더니
철판대문 덜컹거리며 대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래채 방문을 열고(당시 집구조는 ㄱ자형 윗채는 부모님 아랫채는 우리가 썻다)
여느때와 같이
"아버지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못들으신것 같다?
"다~~망햇다"
" 망했어" "흐흐"
" 빌어먹을 놈의 X끼들"
" 머 먹고 살아라고"
한없이 중얼거리셨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 취하셨다.
다른마을 아저씨께서 모시고 오신 것이다.
시장에서
무슨일 있으셨나보다!
시험기간인지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슨일이었을까?
다음날 아침.
"소파동"
라디오에서 작은 목소리로 들려왔다.
소파동이 멀까?
난 솔직히 몰랐다.
그해 겨울에서야 알수 있었다.
아버지는 우시장 소중개인이셨다.
옆집 아저씨의 소를 팔아드리고 5만원을 받아오신적이 있다.
아버지는 가끔 송아지 한마리를 사오신다
송아지는 볼품이 없다
약해보인걸 보니 싸게 사신것 같다
30여일간 보양사육하셨다
보양사육이란 뱀술(우사 한쪽 짚틀 병에 작년에 잡아 술을 부어둔 독사뱀)을 먹이고 사료와 벼짚으로 소죽을 써서 먹이는것이다.
어느땐 개미도 잡아와 소죽에 넣기도 하셨다.
이렇게 사육한 송아지를 다시 되팔아 10여만원이상을 받으셨다.
당시
아버지의 수입은 과수원 농사보다 훨씬 많았다.
맑은 하늘에 왠 날벼락이람!
그런 소값이
하루아침에.....
소값이 개값으로 떨어진것이다.
우리집 소보다 작은아버지들이 투자해서 사온 소들를 생각하니
하늘이 노랗다.
그후 아버지는 술로 사셨다. 그리고
우시장엘 나가지 않으셨다.
여름방학때일이다.
남동생과 함께 4마리 소를 끌고
뒷산 과수원으로 갔다
원두막에서
수박밭을 지켜야 했다
물론 소는 뒷산에서 지(소)들 맘대로 풀 뜯게 고삐를 풀어주고
내버려 두었다.
본래 소는 주인이 없어도
멀리까지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원두막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해가 뉘엇뉘엇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차!
소가 보이지 않았다.
큰일났다.
소를 찾아 헤멨다.
4마리의 소가 한꺼번에 없어졌다
정신없이 풀숲이 우거진 산속을 찾아 다녔다.
......
저 건너편 산에 소 4마리가 보였다, 다행히다
숨이 넘어갈듯 불야불야
소를 끌고 "이랴""이랴" 소들와 내가 함께 뛰다시피 하여 동네 어귀로 들어섰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버럭 화를 내셨다
"이게 소띠끼는거냐"
"머하고 놀다오냐"
"소 배는 불려와야지"
"다시 나갔다와"
쉴세 없이 떨어진 호령에
우리 형제는
소를 몰고 어둑어둑해진
들판을 걸어야했다
한두번도 아니기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한시간이 족히 지났다.
시골길은 가로등도 없고
조명도 없다
오로지 수년 동안 걸어다닌 길이기에
돌맹이 개수까지 알수 있다는것뿐!.
아버지는 우리가 배고픈 것은 안중에도 없으신건가?
왜~~~!
소 풀먹이기(소띠끼기)에만 여념하신건가?
이제는 이해가 간다.
아버지의 소에 대한 사랑은
가이 우리마을에선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다.
"소파동" 그후
우리가족은 뿔뿔이 흐터지기 시작했다.
빚에 밀려
광주지역 인문계에 합격하고도
전남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잠시 광주 이모님댁에
머물게 되었다.
물론 남동생과 여동생은
초중학생이라
집에서 아버지와 살아야 했다.
-서울우유 입성하기까지 -
1. 2010 리딩프로젝트 (일만권 리딩프로젝트)
2. 아버지와 소(소 파동이전과 이후)
3. 오산 원동초등학교 (현장잡부)
4. 보따리 장사(고1여름방학)
5. 아버지와 과수원 (고향을 떠나다)
6. 3번의 시험낙방(87년 재수시절)
7. 어느판사의 팁 10만원(주독야페)
8. 계약금 1억 + 1% = 연봉 ? 억 (서울우유 입성하다)
9. 150개의 계란후라이(군대)
10. 하루 2000명의 고객을 만나라 (택시공제조합)
11. 감사원을 찾아서(신구대 대의원회의장으로)
12. 태평양생명연도신인상 수상(98년)
13. 아버지의 만찬(보리밥)
14. 남동생의 죽음(초6)
15. 서울우유와 나 (가정배달 혁명을 일구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