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6일, 네이트 블로그에 썼던 글]
관계를 살펴보면, 애초에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나타나고, 그것이 갖는 ''비중''이 커지면서 그 ''비중''을 경감시키기 위한 중간적 단계들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결혼이나, 연애에 있어서 생기는 ''중간적'' 단계들이 그렇다.
원시사회에 결혼이라는 개념이 필요했을까? 그냥 남녀가 좋아하면 거기서 관계를 맺고, 그렇게 애가 생기고 하는 게 순리였을 법하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 (욕구와 재생산)에서 남녀가 만났을 것이고, 그렇게해서 살다보니 결혼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소위 그게 ''가족 제도''라는 시스템 안에 들어오다보니,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갖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던 사회에서는 소위 ''연애''라는 게 생겨나지 않았을까?
''제도''나 "틀"에 대한 오랜 갈등은 역사와 함께 해 왔을 법하고, 문학에서는 결혼과 연애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고뇌''를 종종 다루었다.
그래도 결혼이 비교적 ''연성''이었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게 좀 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혼''을 하면 되는 것이니, 그렇게 이혼하고 또 결혼하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로마 시대에는 이혼이라는 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경성''이 되다보면,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이상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결혼 관계가 '깨기 어려운 것'이 될 경우, 세컨드를 두거나, 결혼과 사랑을 별개로 하는 형태의 ''계약 결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뭐 듣자하니 유럽의 ''상류층''들은 이런 식으로 잘 살고 있다고도 한다. 결혼에 영토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으니, 우리가 그렇게 쉽사리 윤리적인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반대로, 결혼 전에 미리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합의서 교환'' 같은게 있을 텐데, 그게 ''약혼''아니겠나 싶다. 뭐 하긴 세상이 하도 불확실하니, 군대나, 또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암튼 ''결혼 계약 협상 진행중''이라는 딱지 정도가 되겠지. 가족들 사이에선. 약혼까진 이르지 않더라도, 한 때는 군대 가는 남자와, 그 여자친구의 가족들이 앉아 '언약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더랬지?
뭐 결혼 자체에도 여러 단계가 있겠지만, 일단 연애-약혼-결혼 의 형태로 분화된 결혼 문화는, 프랑스에서 더 발전하기 시작한다. 뭐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사실혼 동거''인 경우는 논외로 하고라도, 좋아하는 두 남녀가 여러가지 이유로 ''결혼은 하지 않고 함께만 사는'' 관계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연애-동거-약혼-결혼 의 순으로 분화된 셈. 여기에 동거 자체에도 각종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함께 사는 "계약"만 하는 커플이 있다 하니, 법률 관계는 참 복잡해 질 듯 하다.
연애도 사실 따져보면 좀 단계가 많은 편이다. ''진지하게 사귀는 사이''/''그냥 만나는 사이''로 구분이 될 뿐더러, 최근에는 ''데이트 메이트''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구속받기는 싫고, 데이트는 즐기고 싶은'' 신세대의 풍속도다. 엄밀히 말하면 이 연애관계에서의 관건은 ''사랑에 의한 상호 구속''의 여부인데, 그 때문에 위의 연애 및 결혼의 단계는...
그냥 만나는 사이(데이트메이트) / 연인(lover) / 동거 계약(concubinage/pacse) / 약혼(fiancee) / 결혼(mariage)로 분화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각각의 경우가 모두 의미가 있는 남녀관계의 단계다. 최근에는 약혼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있긴 하지만... 이 약혼 ''반지''는 소위 ''커플링''이라는 형태를 띠면서, ''중간단계''에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론 결혼도 최근에는 ''애를 낳은 부부''와 ''애를 안낳은 부부''로 나누어서 아직 2세를 갖지 않은 커플에 대해서는 보다 이혼에 관대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중간단계''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식의 ''결혼 관계''에 너무 많은 사회적, 경제적 부담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지탱해준 사회구조적 틀이 현실에선 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과거 였다면, 결혼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구조가 경성화 되어 이런 것을 떠받쳐 줄 수 있었지만, 오늘날엔 사회구조가 연성화 되는 바람에, 경성화된 결혼 시스템 자체의 무게를 ''중간단계''의 연애 관계가 떠받쳐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아마 저 연애의 단계 조차도 좀 더 세분화되어 실생활에서 통용되고 있을 것이다. 남녀간의 데이트에서, 소위 ''진도''라는 개념도 그렇고, 서로가 구속하는 관계 양상도 조금씩 다를 것이다.
당신은 어디까지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