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율궁과의 만남.
천재 음악가 송율궁,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작곡가로, 연주가로
명성을 날리던 그를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96년도로
기억한다. 난해한 현대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는 탓에 그다지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던 그였기에, 나도 누군가의 소개로
연주회를 찾아갔더랬다.
소위 알만한 사람들만 오는 그의 연주회였지만, 그의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함께 하러온 나같은 일반대중들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따뜻한 - 연주회를 마치고 조촐한 다과까지
정성스레 마련한 모습에서 느껴지던 - 연주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난 그를 잊고 있었다. 몇 년전 잠깐 스치듯 그를 기억한
것을 제외하고.
그런데 과외를 하러 가던 3호선 열차 안에서, 오늘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여느 시각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
던 것이다. 목에는 한국현대음악당을 건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은다
는 팻말과 자신의 신문기사를 코팅한 것을 매단 채.
90년대에는 꾀나 유명짜했던 그였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드문 듯 했다. 모두들 여느 맹인들을 대하듯 값없는 시선조차
주지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옆에 서있던 난, 정말 박동이 격렬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
다. 순간 스쳐가던 많은 생각들. 아니 왜 저런 음악가가 이런 곳까지
내몰려야했는지와, 그를 담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짧은 분노,
조금도 변하지 않은 맑은 미소, 하지만 많이 야윈 그의 모습에 대한
연민. 그만큼이나 유명하던 -그의 모든 것이었던- 어머니는 어디에
계신 것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생각도 잠깐, 지갑을 보니 돈이 하나도 없었다. 가방 깊숙히 방금
받은 과외비가 있긴 했지만, 수표라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동동구르던 중 그는 옆칸으로 조용히 옮겨가고
말았다.
불꽃이라는 곡이 기억난다. 자신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불의 형상
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라 했다. 끝없는 변박속에서
실제의 불보다 더 격렬한 불이 오롯이 피어오르는 듯한 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그 곡을 연주하기 위해 단상으로 나오던
그가, 보이지 않는 탓에 어딘가에 크게 부딪혀 상처를 수습하고 다
시 단에 나오던 디테일들도 함께.
소심한 탓에 선생님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릴걸...하는 생각만 삼켜야했다.
난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의 재능이 생활고로 인해서 길에서
소진되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시선들
에 의해서 목에 건 '현대음악당 건립'마저 초라해지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릴없이 돌아와 나말고도 그를 마주치고 기억해낸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보니
티비프로에도 방영이 되었고, 일부 그 일을 소재로 쓴 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글들이 씌여진 2003년도 이후에 지금도
외로운 걸음을 여전히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이 남기고간 허전함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슬프다. 우연에 맡길 수 밖에 없겠지만, 3호선 어디선가 다시 만나
고 싶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