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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2R 한국 VS 일본 하일라이트

김선태 |2006.08.23 12:12
조회 272 |추천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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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씨에 의해 야구가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선교사로 온 미국인 질레트(P.Gillett)가 황성기독청년회(현재의 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그 시초이다.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가 한국에 야구를 소개 할 때는 방망이로 볼을 때리는 동작에 힌트를 얻어 '타구(打球)' 또는 '격구(擊球)'라고 했다.

1906년 2월 11일 황성기독청년회와 덕어(독일어)학교 사이에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렸는데 덕어학교팀이 승리하였다. 이후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오성학교·경신학교·배재학당 등 여러 야구팀이 조직되어 1911년 11월에는 황성기독청년회팀이 처음으로 일본원정에 올랐다.

이 당시 활약한 팀은 중앙고보·오성학교·배재고보·휘문의숙·송도고보 등의 팀이었다.

야구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 1920년 조선체육회가 창립되면서는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해 11월 4일부터 3일간 조선체육회가 주최하는 제1회 전(全)조선야구대회가 5개 학생 팀과 5개 실업팀이 참가한 가운데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배재가 중학부와 청년부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였다.

초창기에 가장 괄목할 만한 일은 1922년 12월 8일 미국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단 초청이었다. 철도구장에서 전조선군과 경기를 가졌는데, 결과는 21:3으로 크게 패하였다.

1923년 5월 23일 조선야구협회가 창립되어, 한국 야구가 비로소 본궤도에 올랐으며, 같은해 7월에는 하와이 동포 야구단이 고국을 찾아 여러 차례의 경기를 가졌다. 그 이듬해인 1924년 그곳 동포들의 초청으로 중앙YMCA의 야구단이 허성의 인솔로 하와이 원정을 떠났다. 전적은 4전 1승 3패로 부진했으나 동포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후 야구는 발전을 거듭했으나 1938년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경기가 중단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광복이후 각 학교마다 야구를 통한 학원 이미지 제고, 사기진작 및 단합을 도모하게 되었고 고교 및 대학야구를 비롯한 실업야구팀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드며,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1981년 창설 준비를 시작한 프로야구는 서울의 'MBC 청룡',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 대전의 'OB베어즈', 광주의 '해태 타이거즈', 인천의 '삼미 슈퍼스타즈' 등 모두 6개 팀으로 출발하였다. 1982년 3월27일 동대문 구장에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가 개막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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