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서 복싱은 야만적이고 격기 종목 중에 제일 단순하고 재미없는 경기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축구나 야구에 열광한다. 하지만 내게 제일 재미없는 스포츠가 축구와 야구다. 생각해보라 공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 애들처럼 몸싸움과 속임수로 상대 골대에 공을 집어넣거나 조그마한 공이 담장을 넘기는 것이 약간 신기하지만 전혀 내겐 생산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 무식쟁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 그들에겐 복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복싱에 대해서 모르거나 복싱을 싫어하는 사람은 복싱의 폭력적인 면만 보이고 그저 싸움처럼 보여질 것이다. 선수들의 피와 잔인한 장면만 본다면 야만적인 스포츠라 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복싱에는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복싱의 전부는 아니다. 아니 그것은 복싱의 아주 지엽적이고 말단적인 부분으로 오히려 복싱의 본질을 왜곡 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자, 그렇다면 복싱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 대답을 얻기 위해 우리가 왜 복싱을 하고 주변에서 복싱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이야기해보자. 주변에서 싸움을 잘하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 일부 관장들이나 선수들은 복싱을 잘하는 것이 싸움에 도움이 된다고 부추기고 일격에 상대를 죽일 수도 있다고 자랑한다. 심지어 복싱을 배워 깡패 짓거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복싱은 싸움하고 비슷하지도 않고 싸움하고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아 두자. 만약 그렇게 말하는 관장이나 선수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다 사이비임이 분명하다. 분노, 감정도발에 의한 법적인 폭행은 있을 수 있고 그 순간 복싱을 배운 이 에겐 아주 효과적인 타격이 될 것이지만, 물리적 싸움이란 것은 인간세계에서 없어진지 오래다. 현대엔 물리적 싸움이 없어진 자리는 이성적인 싸움이 자리 잡았고 그 싸움에서 이기려면 강한 몸이 아니라 똑똑한 머리가 있어야 이긴다. 그리고 앞으로 그 싸움은 더 치열해 질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에 물리적 싸움을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사람은 그야말로 한심한 사람이고 영원한 패자다. 복싱 잘하는 것과 싸움을 얘기하는 것은 당구 잘한다고 싸움에 나서는 사람 보다 더 위험하고 어리석다. 복싱은 하나의 매력적인 자기개발 스포츠일 뿐이다.
또, 주변에서 복싱은 폭력적이고 많이 다친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그러나 복싱이 폭력적이고 부상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복싱의 시각적인 요소 때문인데 우리는 사회과 현실 속에서 자신의 조그마한 권리를 위해 상대를 짓밟고 합리화 시키는 비열한 짓이나 비인격적인 경우를 수도 없이 보지만 그 폭력에 너무 익숙하기에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부상율도 통계 결과 축구나 럭비에 비해서 현저히 적고 가볍다. 복싱을 하다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통계적으로 축구하다가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의 10분에 1도 안된다. 그렇게 복싱의 폭력적인 부분이 상업적인 이유와 시각적이 요소들 때문에 과대 포장된 것이다.
복싱! 태초에 복싱은 인류가 걷기 시작하면서 두 손이 걷기를 포기하고 자유로워지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단세포가 발전하여 인간이 되었듯이 그 태초의 복싱은 아주 단순한 주먹다짐 이거나 싸움의 표방과 연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싸움이 발전에 발전을 하면서 손으로만 그것도 너클파트로만 가격해야 하는 정제되고 신사적, 개인적인 전쟁이 되었다. 연설가는 말로서 사람을 설득한다. 미술가는 그림을 그림으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소설가는 글로서 독자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복서는 주먹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고독한 인생과 맞닿는다.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자신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신과 인사한다. 그렇게 복싱은 선수와 선수간의 펀치와 모션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고 관중이나 시청자 그들의 아름답고 치열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복싱은 카오스 적인 링 위에서 상당히 과학적이고 심리적으로 계산되어진 스포츠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문장도 모르고 멍하니 있듯이 복싱이라는 커뮤니케이션도 배워야 안다. 그리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복싱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