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한가로운 포장마차안.
주인 아줌마는 닭발을 요리 중이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강변의 바람에 휘날린다.
옆 테이블에는 두 사람이 권커니 잣커니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 요즘엔 어떻게 지냅니까?"
앞에 놓인 닭발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던 남색 가디건 차림의 사내가 불쑥 말을 꺼냈다.
"글쎄요, 힘들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답한 남자는 이제 갓 약관을 넘은 듯 순수해 보이는 얼굴이다. 남자는 약간 흐트러진 차림새로 아련한 눈빛을 하염없이 강물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린 사내가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
한동안 이어진 침묵. 사내는 가만히 기다렸다. 이럴때 호들갑스럽게 말하면 남자의 입은 더욱 더 다물어 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남자가 천천히 운을 뗐다.
"...오늘로... 8일쨉니다. 어제는... 그녀를 만났죠."
"......"
"잘 지내고 있더군요. 그녀와 얘기도 나눴습니다. 괜찮았어요. ...하하, 뭐 조금 가슴이 아리긴 했습니다. 아... 아시죠? 의남매 맺기로 한 사실요."
"...네, 압니다. 힘든 결정을 하셨더군요."
"아니요. 그다지 힘든 건 없었습니다. 마음이 거의 정리가 됐었다고 봐야하나... 아무튼 별로 힘들진 않았습니다."
힐끗 남자를 쳐다본 사내가 그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남자는 한 입에 술을 털어넣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놀라더군요. 신기해하고. 얼굴도 보기 힘들텐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얼굴도 못 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볼 수 있더군요."
사내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사내를 일견한 남자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전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애써 고개를 돌린 사내도 술을 털어넣고는 얼굴을 한차례 크게 찡그리더니 닭발을 하나 들고 씹었다. 남자도 닭발을 하나 들더니 이리저리 살피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싶었다.
"첫날하고 둘째날은 정말 힘들었죠. 그녀와 노래방을 갔을때에는 진짜 아, 슬픔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녀 앞에서 크게 울었어요."
"그랬군요... 그 마음 저도 이해합니다. 근데 둘째날까지라는 걸 보니 다음날은 괜찮았나봐요?"
"네. 확실히 둘째날보다는 낫더군요. 후후... 물론 하루 중에 거의 대부분이 그녀 생각 뿐이었어요. 힘들어서, 실연카페에도 가입하고... 여러 사람 글도 보면서 위로받고 그랬죠."
"......"
"5일째 되던 날, 한 가지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그녀를 미워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다 내 잘못인걸..."
"그게 왜 당신 잘못인가요? 당신을 버리고 간 그녀 잘못이지!"
가만히 듣고 있던 사내가 오히려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는 쓴웃음을 크게 지어보였다.
"아니에요. 제 잘못이에요. 아무튼, 그렇게 깨닫고 나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겠더군요. 흔들릴까봐. 겨우 일으킨 가슴인데 확 무너져내릴까봐.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되던 날,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됐죠."
취기가 조금씩 오르는 듯 눈가가 붉어진 남자가 다시 소주병을 들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황급히 소주병을 빼앗아 잔을 채워주었다. 한 입에 잔을 비운 남자가 실실 웃었다. 사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자 웃음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그녀에게 너무 바보같이 얽매이지 말자. 그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덜컥거리지 말고, 신경쓰지 말자. 다른 여자도 많다. 당당하게 행동하자! 였지요."
"음..."
"그렇게 생각하니까 비로소 그녀를 볼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일주일 아니, 그러니까 어제. 어제 그녀의 집에 찾아갈 수 있었어요."
표정이 한결 밝아진 남자가 크게 숨을 내쉬더니 눈을 깜박였다. 벌써 졸린 모양이었다. 고개를 한차례 크게 내저었다.
"근데 오늘 깨달았다는 건 뭐죠?"
사내는 그것이 사뭇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 그거요. 말하자면... 그러니까... 아, 술이 모자라네요."
사내가 얼른 채워준 잔을 호쾌하게 비운 남자가 말했다.
"오늘 기분이 나빴던건, 그녀 태도 때문이었어요. 점심 먹을 때 그녀를 봤는데 저를 보고 이죽거렸어요."
"이죽거려요?"
사내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이가 없고 화가 난 듯 싶었다.
"네. 전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계속 가슴이 답답해 하다가 저녁에 다시 그녀를 만났죠. 그녀에게 따졌어요. 왜 그렇게 이죽거리느냐고. 그러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넌 나쁘게 받아들이잖아! 하고 말했어요."
"으음..."
"밥을 먹으며 곰곰히 생각해봤죠.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걸까. 그녀는 이죽거린게 아니라는데, 평소처럼 대했다는 건데 왜 그렇게 느꼈던 걸까. 하고요. 생각해보니까 결론이 나오더군요."
"?"
"전 예전에 그녀가 제게 보여주던 그런 태도를 바라고 있었던 거에요. 이미 그녀가 더 이상 저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저 예전의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녀를 포기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게 남아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느끼게 된 것 같다는 말인가요?"
"네. 뭐, 그녀가 변하긴 했죠. 더 이상 절 바라보지 않는다는 거. 제 뒤에 그를 보고 있다는 사실말이에요. 그러니까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죠. 안 변할 순 없잖아요?"
"......"
"그래서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녀와 헤어진 제가 짊어지고 가야할 대가잖아요. 예전에 그걸 기대하면 안돼는거죠."
"슬픈 일이군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슬픈 일이죠.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당신은 너무 착한 것 같아요."
"하하하, 그건 착한것보다는 강해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네요. 저 알고보면 무지 나쁜 녀석입니다. 화가 나서 그녀의 뺨도 때렸어요."
"그런건 나쁜게 아니죠. 여자가 나쁜 짓을 했으니 맞아도 싼겁니다."
"여섯번 때렸어요."
"......"
"후후... 이별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말 있잖아요, 이별을 하면 성숙해진다고. 네, 그 말이 맞아요. 생각에 변화도 오고, 조금 더 성숙해지고, 그 동안 콩깍지에 씌여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만들죠. 제 자신도 그래요. 그 동안 하지 않았던 운동들, 공부들. 모두 새로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선 그녀가 고마워요."
"휴..."
"그녀가 이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친동생을 바라보는 오빠의 마음처럼요."
해맑게 웃는 남자의 눈가에 생긴 빛무리가 불어온 강바람에 날려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