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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즉각 응답 없으면 못 참아..

윤수진 |2006.08.26 11:24
조회 63 |추천 0

“메시지에 즉각 응답 없으면 못 참아”"완벽한 네트워크 사회의 특성" 대학생 이화섭(23)씨는 자신이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 상대방이 응답하지 않으면 잘 참지 못한다. 처음 30분은 5분 간격으로, 그 다음 30분은 10분 간격으로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에게 전화를 건다. 1시간이 넘어도 30분마다 전화를 걸어 끝내 답 문자를 받아낸다. “처음엔 바쁜가 하다가도 나중에는 내가 뭐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시 당하는 느낌마저 들어 계속 전화를 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교생 김진희(여·18)양은 얼마 전 문자 메시지 때문에 애를 먹었다. 며칠 전 자신을 따라다니던 한 남학생의 구애를 거절했는데, 이에 그 남학생이 “나를 놀리는 거냐”며 거세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항의의 근거가 된 것은 김씨가 별 생각 없이 보낸 이모티콘(emotion과 icon의 합성어, 문자나 특수 기호를 사용해 얼굴 표정 등을 나타낸 것)이었다. 잘 자라는 내용의 그 문자엔 ‘♡’ 표시가 하나 끼어 있었는데, 남학생은 이것을 보고 그녀 역시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휴대전화 메시지와 관련, 젊은층의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개인의 성격, 성장 환경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전문가들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휴대전화가 지닌 기술적 특성에 주목한다. 황상민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휴대전화 메시지에 과거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휴대전화와 같은 정보매체의 특성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의 특성 중 사용자의 감수성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완벽에 가까운 ‘연결성’을 들 수 있다. 휴대전화는 그것을 가진 사람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한다. 그래서 누구든 상대방의 휴대전화 번호만 알면 예외 없이 그 사람과 연결된다. 본인 역시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과 언제든 연결될 수 있다. 휴대전화가 전화번호라는 ‘접착제’로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이어 붙이고 있는 셈이다. 정보사회학자인 미국의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은 자신과 타자(他者)가 완벽하게 연결될 수 있는 이러한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 명명했다.

 

긴밀한 개인간 네트워크를 가능케 하는 휴대전화의 연결성은 휴대전화 메시지에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나와 타인을 완벽하게 연결시키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연락할 ‘마음’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편지를) 보냈는데 배달 사고가 난 모양이야” “그때 집에 없어서 전화를 못 받았어”와 같은 변명을 허용하지 않는 휴대전화의 완벽한 연결성이 사용자로 하여금 휴대전화 메시지와 그 사람의 ‘마음’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휴대전화 메시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휴대전화를 통해 아무런 장애 없이 완벽하게 연결되는 세상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락이 없으면 사정이 있으려니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연락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문자 메시지를 포함한) 휴대전화 연락의 단절을 ‘그 사람과의 단절’로 판단할 정도로 사람들이 예민해진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 두 여대생이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휴대전화가 지닌 ‘즉시성(卽時性)’ 역시 사용자의 감수성 변화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동일한 물리적 거리에 소요되는 사회적 시간은 줄어든다. 과거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대략 6시간이 걸렸다. 고속철도가 들어선 후 그 시간은 2시간 반 정도로 줄었다. 이젠 이 시간마저 무색해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간의 장벽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말한 ‘시공간의 응축(time-space compression)’이라는 표현처럼 우리는 휴대전화를 통해 세계 어느 곳이든 옆집처럼 즉각적으로 연락할 수 있다.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하는 데 며칠이 소요되는 편지와 달리 휴대전화 메시지는 보내는 즉시 상대방에게 도달한다. 자연히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전혀 지체가 없다. 편지는 답장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며칠간의 ‘자유시간’을 허락하지만 휴대전화는 사용자가 메시지를 보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답장 도착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이다. 홍순희(가명·여·22) 씨는 “문자나 음성 메시지를 남겼는데도 상대로부터 연락이 없으면 너무 화가 난다. 한번은 연락이 안 와서 50통 가까이 독촉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다”며 “분명히 내가 보낸 메시지를 바로 확인했을 텐데 곧바로 연락이 안 오면 날 무시하나 싶어 기분 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 메시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취재 중 만난 젊은 세대들은 중·장년 세대에 비해 휴대전화 메시지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활용 빈도가 높은 젊은층이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휴대전화의 연결성과 즉시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03년 동아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에서 휴대전화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휴대전화 일일 평균 사용 시간에 대한 질문에서 중·장년층(40~60세)은 33%가 ‘6~10분 이하’라고 대답,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청년층(10~20세)에서는 가장 많은 응답자(36%)가 ‘11~30분 이하’라고 대답했다. “매일 1시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중·장년층은 6%에 불과했지만 청년층은 24%나 됐다. 중·장년층의 60%는 문자 메시지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한다 해도 10명 중 8명은 하루 3회 미만의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청년층 응답자는 조사 대상 전원이 문자 메시지 기능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 중 절반이 하루 10회 이상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휴대전화 메시지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훈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휴대전화란 것이 원래 즉각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보니, 그만큼 사람 심리를 성급하고 감정적으로 만드는 면이 있다”며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메시지를 오해할 소지도 커져 소통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휴대전화에 빠진 내 아이 구하기’라는 책을 펴낸 한국일보 기자 고재학씨는 “책을 쓰면서 일선 학교의 국어교사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하나같이 지적하는 말이 ‘요즘 애들 국어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학교 시험 답안지나 기업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서나 사용될 법한 비어와 축약어가 버젓이 씌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씨는 “이러한 현상 역시 휴대전화 메시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에 기인한 것”이라며 “휴대전화 속에서의 의사 소통 행태가 부지불식간에 실제 언어 생활에까지 파급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혜원 주간조선 기자(happyend@chosun.com)

※이 기사에는 조백건(고려대 사회학과 4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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