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그 얘기 좀 해봐."
순신이 히로시에게 말했다.
"무슨 얘기?"
야마시타가 물었다.
"이교도 얘기."
순신이 대답했다.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 무슨 얘기야?"
야마시타가 다시 물었다.
"잘됐네. 나도 오랜만에 듣고 싶으니까, 얘기해봐."
아기가 말했다.
히로시는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내가 오키나와에 살던 때 일인데, 옆집에 미군이 곧잘 놀러왔었어.
그 집에 여자 혼자 살고 있었거든, 아마 그 여자 애인이었겠지.
그 군인이 여자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집 외벽에다 설치 해놓은 농구 골대에 슛을 하는거야. 하루에 몇백 번씩 말이야.
마치 무슨 도라도 닦는 것처럼, 열심히 말이야."
히로시의 낭랑한 목소리에 인도되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히로시 주위로 모여들었다.
"난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조금 떨어진 담 위에 앉아서, 들어간 골 수를 세곤 했어. 그런데 어느 날, 군인이 나한테 다가와서, 몇 골이나 넣었냐고 일본 말로 더듬더듬 묻는 거야.
내가 78골이라고 대답하니까, 그러냐면서 되돌아갔어.
그런 일이 몇번 되풀이되면서 나하고 그 군인, 꽤 친해졌거든."
어느 틈엔가 멤버 전원이 히로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군인 이름이 리틀이라고 해병대 중사였는데, 나한테 농구도 가르쳐주고, 기타 연주고 들려주고, 제법 같이 잘 놀았어.
아마 리틀 중사, 나한테도 자기하고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거 알고서 잘해줬을 거야."
무릎을 껴안고 앉은 녀석, 정좌를 한 녀석, 드러누운 녀석,
모두 히로시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한 반년 정도 지났는데, 슛을 끝낸 리틀 중사가 내 곁으로 와서는 섭섭한 표정으로, 고향에 돌아가게 됐다고 그러는거야.
하지만 자기는 제대하고 오키나와에 그냥 있고 싶다면서.
나는 리틀 중사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어.
나하고 리틀 중사,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늘 앉는 담 위에 앉아서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흔들흔들 흔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리틀 중사가 옛날 얘기를 꺼냈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본 말로, 열심히.
그 옛날 얘기란 게 이런 거였어."
히로시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서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 어떤 왕국의 조그만 마을에 한 남자가 흘러들었다."
나는 히로시의 부드러운 억양에 가벼운 졸음을 느꼈다.
다른 멤버들도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히로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끝없이 계속되리라 여겼던 얘기가 드디어 클라이맥스에 접어들었다.
"남자가 마을에서 맞는 70번째 일요일, 두 다리를 잃은 남자는 다시 광장에 모습을 나타냈어. 그리고 의자에 앉은 채 두 팔과 두 순과 양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지.
그 춤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어, 이번에는 왕의 부하가 두 팔을 싹뚝 잘라버리고 말았어. 그런데도 130번째 일요일, 남자는 목을 교묘하게 움직이면서 목으로 춤을 춘 거야.
그리고 끝내 왕의 부하가 남자의 목까지 쳐버리고 말았는데, 땅으로 구르는 남자의 목을 본 마을 사람들,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
남자가 리듬을 바꿔가면서 눈꺼풀을 감았다 떴다 눈으로 춤을 췄던 거야. 하지만 그 춤은 오래 가지 못했지. 그리고 남자는 두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갔어.
남자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지만, 남자의 춤은 마을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그 후에도 오래오래 이어져 내려갔대."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야마시타가 입을 열었다.
"그 왕하고, 왕국은 어떻게 됐는데?"
"나도 리틀 중사한테 같은 질문을 했었어.
그런데 리틀 중사는, 왕과 왕국이 어떻게 되었냐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왕과 왕국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훌륭한 그림을 보면서 그림을 담고 있는 액자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러는 거야."
히로시는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부드러운 눈길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리틀 중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작별인사를 했어.
너는 고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아 좌절하는 일도 있겠지, 라고 말이야. 그리고 ‥‥‥."
우리는 세계와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느끼면서 히로시의 마지막 말에 귀 기울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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