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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의 마지막 방학

신용연 |2006.09.03 09:20
조회 46 |추천 1


 

병태의 마지막 방학

 

오늘은 동화를 띄워 보냅니다.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늘 생각이 났던, 실제로 있었던 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형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신은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지만 가난했기에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은 부모님이 더 아팠겠지요. 너무나 생생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동화로 꾸몄습니다.

 

병태네는 끝내 서마지기 밭을 팔아야 했습니다. 병태네 형 병철이의 학비와 하숙비를 대려면 할 수 없었습니다. 병철이는 그해 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고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병철이를 가르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어갔습니다. 툭하면 돈을 부치라고 했습니다.

 

병태 아버지가 처음 밭을 팔자고 했을 때 어머니는 무슨 얘기냐며 펄쩍 뛰었습니다. 그 밭은 기름질 뿐 아니라 집에서도 가까웠습니다. 고추, 고구마, 감자, 콩, 깨, 옥수수 등 철마다 먹을 것을 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팔자니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산다요?"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전주행 버스에 병철이를 태워주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병태 어머니는 남편은 쳐다보지도 않고 혼잣말처럼 물었습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는가. 그놈 뒷바라지를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지. 이제 와서 어떡하겠는가."

 "우리집에 입이 몇 개인디……. 뭘 먹고 살라고……."

"허허 이 사람……. 그리고 병태는 새 학기부터 학교를 그만두라고 허소. 우리 형편에……." "그게 무슨 얘기대요? 지 형 가르칠라고 학교를 그만두게 해요? 난 말 못허겄네요. 중학생 된지 몇 달이나 됐다고. 참말로 난 말 못허겄네요."

 

그러자 병태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따져보면 병태는 새 옷 하나 변변히 얻어 입지 못했습니다. 무엇이든 형의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읍내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입학식에 식구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형의 입학식을 보러 전주로 몰려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병태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형은 형이고 자기는 자기였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놀러 나오려는 병태를 어머니가 불러 앉혔습니다.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 이제 집안을 살펴야지. 형이 밖에 있으니 니가 집안을 챙겨야지. 괭이질도 배우고, 논물도 보고, 꼴도 베고……. 니 아부지도 늘 젊은 것이 아니여."

"어머니는 그렇게 공부허라고 하더니 무슨 말씀이당가요……. 그리고 괭이라도 들라치면 그까짓 괭이질 배워서 뭣에 쓰냐고 허시더니 웬일인감요?"

병태는 어머니를 반은 놀리면서 말대꾸를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소리쳤습니다.

"이놈아 하라면 해. 요즘 같으면 못살겠다. 그리고 학교도 그만 둬."

그러고서는 머릿수건을 고쳐 쓰더니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병태는 무언가에 얹힌 듯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어머니의 꾸중이 왜 나왔는지 그 처음과 끝을 알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도 어머니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병태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밭에 나갔습니다. 저녁 찬거리로 고구마순을 뜯었습니다. 가을이 끝날 무렵 이 고구마만 캐면 이제 남의 밭이었습니다. 그러나 병태 어머니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평생 우리 것인줄 알았는데……. 이 땅을 얼마나 공들여 일구었는가. 흘린 땀이 얼마이며 닳아 없어진 호미가 몇 자루였던가.’

그런 생각이 들자 땅이 자꾸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이 원수였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밥을 먹지 않는 병태가 맘에 걸렸습니다. 그때 병태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볼이 잔뜩 부어 있었습니다.

"어머니, 나 학교 그만두라는 말 참말이여?"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고구마순만 잘랐습니다.

 "참말이냐고. 왜 말을 못해? 형만 사람이고 나는 짐승이란 말이여, 뭐여!"

 병태가 악을 썼지만 어머니는 아무 대답을 안했습니다.

 "용돈 한번 줘봤어? 새 옷 한번 사줬어?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우리 어메 맞어? 그럴라면 뭣 허러 낳았냐고."

그러자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병태에게 다가갔습니다. 병태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무서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대뜸 병태의 허리 끈를 잡더니 밭 아래로 끌고 갔습니다.

 "이놈아, 그려. 니놈은 내 새끼가 아니라 그런다. 이놈아, 오늘 너랑 나랑 죽자. 요 팍팍헌 놈의 세상, 죽어버리자."

 

어머니는 병태를 마을 앞 방죽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방죽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병태는 만날 그곳에서 멱을 감기 때문에 방죽의 속과 겉을 잘 알았습니다. 손을 뿌리치려 해도 그날따라 어머니의 힘은 무서웠습니다. 병태를 데리고 방죽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거침이 없었습니다.

 

방죽 가운데는 어른 키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병태는 무서웠습니다. 자신은 얼마든지 헤엄쳐 나올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정말 죽으려 작정한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더 들어가면 죽어. 이렇게 빌게. 나 학교 안갈게. 학교 절대 안갈 거야. 제발 어머니."

어머니는 멈춰 서서 병태를 바라보더니 허리끈을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혼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 정신 차려. 제발, 제발 죽지 말아요. 어머니 죽으면 나도 죽을 판이여."

 

이번에는 병태가 어머니의 허리를 붙잡아 끌며 엉엉 울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가 멈춰서더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손으로 방죽물을 내리치다 가슴을 치고, 가슴을 치다 방죽물을 내리쳤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이 밝았습니다. 병태도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선생이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병태는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갔습니다. 일순 교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선생님, 저 학교 그만 다닐랍니다. 일이 생겨서……. 그간 고마웠습니다. 그럼 가볼랍니다."

선생님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거든요. 병태는 얼른 밖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유리창 문으로 떠나는 병태를 지켜봤습니다. 이를 악물고 운동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날 병태는 울지 않았습니다.

 

-김택근 동화집 `벌거벗은 수박도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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