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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삶의 긴 여정

김철희 |2006.09.04 16:35
조회 84 |추천 3

고독한 삶의 긴 여정

 

8월의 마지막이었던 어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차량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업무를 보게 되었다. 흔히들 차량을 오래도록 이용하던 사람들을 보고 이른바 “길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적으로 주변인들을 접해보아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도 예전에 경험했던 일을 이번에 다시금 재 반복해서 당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원망아닌 원망을 했는지 모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사전에 해당지역을 통과하는 버스노선을 확인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었다. 버스를 이용한 나는 여느 장소에 내렸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을 가지고 걷던 행선지를 어느새 확인해보니, 예전에 차량을 놔두고 버스를 이용하여 동일지역에서 내려 행선지를 찾아 갔을 때 시간이 한참이나 되었는데 목적지는 나오지 않고 버스를 내린 인근지역에서 다람쥐 쳇바퀴마냥 뱅뱅 돌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 했 을 때 의 허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재차 그런 전철을 다시금 밟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그런 나 자신에게 그러지 말자고 재 다짐을 하며 구두끈을 다시 묶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눈에 익숙한 상표와 함께 건물이 들어온다. 이전에도 그런 광경이 벌어져 애써 피했다.

 

그곳은 개인적인 아픔이 남아있는 회사였다. 이른바 구제 금융시대 때에 고급 관리직으로 근무하던 나는 몇 차례에 걸쳐 압박해오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었다. 하루가 다르게 주변의 동료들이 말도 없이 떠나갔다. 그때에 회사에서는 공장을 쉬지 않겠다는 정책적 배려에 현장은 기계가 돌아갔고 급여도 지급되었다.

 

그러나 관리직 사원들에겐 몇 개월씩이나 급여를 준다, 안준다, 언제 주겠다는 아무런 기약도 없이 사장은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고, 경영보다는 땅장사에 더 안목이 높았던 사장을 대리했던 부사장은 나는 모르겠단 반응이었고, 그가 데려온 서울 S대 출신에겐 공장장이란 직위를 얹혀 주며 해고의 칼춤을 추게 만들었다.

 

해고의 채찍과 밀린 급여와 퇴직금과 위로금 몇 푼 안되는 당근으로 유혹하였던 사람, 사장은 애써 자신의 손에 순박한 사람들이 흘리는 아우성 을 피하고 싶어서인지 그런 점을 부사장과 공장장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며 자신은 그들 뒤의 한발 치 뒤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당시 인간의 추악함의 진수를 볼 수 있던 시기였다.

 

그 긴 1997년은 마무리 되어 갔다. 그런 씻을 수 없는 기억들이 남겨진 그 곳 간판을 오랜만에 보니 이전의 악몽과 같은 그림자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언젠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들이 회사 근처를 지나가는 일이 있으면 차 한잔하러 꼭 들르라던 말도 공허한 메아리로 산산히 길거리에 훑 뿌려졌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무던히도 탓해본다. 나는 길눈이 어두운 것일까 아니면 나의 의지와는 반대로 연민의 정에 이끌려 나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발길이 옮겨졌는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직 전지전능하신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돌고도는 것이 신이 우리에게 내 맡긴 삶이란 생각을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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