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TV 체널을 돌리다가 테니스 경기를
중계하면 우리 온 가족 시선은 자동적으로
그 체널에 고정이 되고 만다.
잘 하지는 않지만 테니스를 좋아한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가족이 테니스를
하면서 가족애를 돈독히 하기도 했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공을 넘기다보면
테니스는 운동의 한 부분이라기 보다는 사람을
세우는 사역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른 운동과 달리 테니스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매너가 좋아야 자동적으로 그 선수를 좋아할 수 있게 된다.
프로들의 테니스 모습을 보면서도 매너가 아니다 싶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졌어도 응원의 박수는 약해질 수 밖에
없음이 필연이다.
직접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21년간 코트에서 살았던 테니스 선수인 애거시가
눈물로 은퇴하는 장면을 여러번 되풀이 해서 보여 주었다.
우리도 역시 그 눈물의 의미를 알기에 말없이 함께 울어 주었다.
'인생의 밑바닥을 떠돌 때 조차 팬 여러분의 한결같은 사랑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 줬습니다.'
'코트의 스코어보드는 오늘 내가 졌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지난 21년간 내가 얻었던 것을 모두 알려주지는 않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던 애거시
'팬 여러분의 사랑이 코트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나를 이끌어 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비록 짧았지만 영화배우 브룩 실즈와의 결혼생활로 뭇 남성들의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한 때 '테니스 여제'로 군림했던 아내 수테피 그라프와 두 아이도 관중석에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패배를 안고 있는 애거시에게 스텐드를 가득 매운 2만여명의 관중들은 4분동안이나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비록 마지막 경기의 승자가 되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이미 승리자였기 때문이다.
애거시는 92년 윔블던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사상 5번째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4대 메이저대회를 시기에 상관없이 모두 우승하는 것)을 달성했다. 시야가 넓고 상대의 서브에 반 박자 빨리 움직여 '리턴의 황제'라는 별명이 알려주듯 손꼽히는 테크니션으로 평가를 받았다.
97년 랭킹이 142위로 추락하는 등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그는 99년 다시 프랑스 오픈 정상에 오르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펼쳤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경기 후 의자에 앉아 연거퍼 수건을 떼지 못하고서 우는 모습을 계속 지켜 보았다.눈물을 감추지 못한 그가 다시 일어나 자신의 특유의 세리머리를 관중들에게 보냈다.
묵직한 테니스 가방을 짊어진채 환희와 감격, 설움의 한이
묻을 때로 파 묻혀있는 그 정든 코트를 떠나는 테니스의 황제의
모습은 참 감동이었다.
'아름다운 퇴장'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비록 눈에는 눈물이 젖어 앞을 가리겠지만
그의 뒷 모습은 최선을 다한 한 인간 승리를 지켜보는 듯 했다.
때론 넘어지고, 엎어지기도하고, 방황의 늪에서 조차 헤어나오지 못한 우리 인생이지만 다시 일어서는 재기의 피와 땀, 눈물과 이를 악문 투지, 혼신의 사투.
그가 그 코트에서 흘린 땀방울은 커다란 강도 만들고도 남았을 것 아닌가!
그가 넘긴 공의 횟수는 높다란 산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겠는가!
패배했을 때 좌절의 아픔은...
승리했을 때 환희의 춤은...
그도 세월의 무게를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그의 코치는 진통제를 맞고서야 경기에 임한 애거시의 몸의 상태를
알기 때문에 경기도중에 여러번 코트 밖으로 끌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온 몸과 허리에 통증이 얼마나 심했으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렇듯 겉사람은 후패한 인생이다.
가장 좋은 운동중의 하나이고, 건강을 유지시킬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테니스라도 말이다.
세월이라는 시간앞에서는
젊음이라는 패기앞에서는 당할 수가 없나 보다.
우리네 인생은
코트라는 자신의 필드에서 영원히 뛸 것 같은 착각을 안고 있다.
그래서 세월을 계수하지 못한 미련함을 가슴에 안기도 한다.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에만 가능한 것을...
내게 주어진 사역의 필드에서
내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주님이 정해 준 시간과 구역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눈물의 기도와 섬김
주님의 심정으로 목양하는 것
그 이후에 사역의 필드를 떠나는 뒷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두손모아
기도드린다.
주님앞에 드린 눈물이 강을 이루고 섬김이 산을
이루어 주님앞에 서는 그 날 영광의 면류관을
그리워 볼 때면
오늘도 다시 주님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