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으로 생활하십시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저자 헨리 T. 블랙가비의 영성 생활
-- 헨리 T. 블랙가비 (Henry T. Blackaby)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과 골든게이트 신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 동안 교회 개척과 목회 사역을 감당해 왔다. 현재 미국 남침례회 북미선교부의 ‘기도와 영적 각성’ 부문 책임자이며, 라이프웨이와 국제선교부의 컨설턴트이다. 그는 1997년 「홈라이프」(Home Life)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영적 지도자에 포함되기도 했다. 아내 마릴린 수 웰즈 사이에 리처드, 토마스, 멜빈, 노먼, 캐리 다섯 자녀를 두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목회와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Experiencing God)」(요단출판사 간), 「하나님과의 신선한 만남(Fresh Encounter)」(클로드 킹 공저, 요단출판사 간),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What the sprit Saying to the Churches),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The Man God Uses), 등이 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은 현재까지 5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450만 부 이상이 보급되었으며 한국에서도 6만 부 이상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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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목사님의 큐티 시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저에게 있어서 큐티 시간은 사실 조용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사일을 받는 엄청난 시간이죠.(웃음) 저는 늘 새벽 4시에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생각으로 큐티를 해야 하고, 그 시간에 분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상고하고 묵상하는 중에 세상을 흔드는 것처럼 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큐티라는 것이 정해진 시간에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큐티는 하루 온종일 계속되는 것입니다. 저는 큐티 시간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질적인 큐티 시간을 가질 것인가 아닌가의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내 안에 충만히 계시며 나와 교통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새벽 큐티 시간은 좀 더 특별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분주하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Q. 성경을 읽어 나가실 때 특별한 기준이나 원칙을 갖고 계신가요?
A. 늘 복음서부터 시작합니다. 큐티를 할 때 주로 4복음서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읽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주신 것이 그 아들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에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분의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기대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복음서를 읽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구약의 몇몇 성경을 보고 다시 신약으로 와서 몇몇 성경을 더 읽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많이 인용하신 말씀들을 좀 더 많이 공부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중요했다면 저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자주 인용했던 성경은 시편이었고 그 다음은 신명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오케스트라에 동참하라
Q.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하나님은 ‘말씀·기도·환경·교회’ 이 네 가지를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에 비추어 본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지 않습니까?
A. 네, 하나님의 뜻은 말씀, 기도, 환경, 교회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통한 그분의 뜻은 일치하게 돼 있어요. 만약 각각의 방법을 통해 깨닫게 된 뜻이 서로 같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네 가지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도 믿음의 행동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이 네 가지 방법 중에 우리가 가장 소외시하는 것은 아마 교회일 것입니다. 현대는 마치 사사기 시대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자기의 뜻대로 행동하면서 살아갑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영적 은사를 발견해서 개인적으로 그것을 활용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사장은 단수가 아닌 복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의 공동체에요.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흩어져서 사역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하나의 몸으로서 감당하는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 가운데 교회를 종종 제외시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은사를 갖고 있으면서 서로 연결하지 못한 채 독단적으로 사역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이뤄지는 사역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같은 성령의 은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요. 사도 바울은 개인적으로 사역하면서도 그 사역이 공의회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교제하면서 협동 사역을 감당했지요.
Q.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A. 저는 ‘하나님, 내 삶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 주위에서 늘 행해지고 있어요. 그 뜻을 발견하고 그 뜻과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 임무죠. 하나님께서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 사람들을 통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십니다. 모든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끌고 있는 오케스트라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에 순종하면서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있어서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고 계신 일을 바라보면서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개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그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늘 공동체와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Q. 대체로 우리는 큰 사건이나 변화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일상의 사소한 일들 가운데서도 그분은 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A. 하나님께 있어서 사소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조차도 하나님께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불타고 있는 가시떨기나무’는 좋은 예가 됩니다. 그것을 본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현상을 보았는데 별 거 아닐거야’라고 얘기할 수도 있었겠죠.
제 신앙의 기초에는 ‘하나님에게는 사소한 일이 없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사소한 전화 한 통화가 그 지역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놀라운 하나님 역사의 한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릴까요? 간단한 이메일로 인해 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그 분에게 영적인 조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메일 하나가 귀한 도구로 사용된 것이죠. 사소한 일들 속에도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무시해 버리곤 하는데,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Q. 주님께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세상에서의 직업을 포기하고 사역자로 헌신해야 할까요?
A. 아니요,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직장 가운데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여전히 같은 직장, 같은 장소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관점으로 직장을 섬기게 하십니다. 저는 미국에서 130여 명의 최고경영자들과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앉아 있는 최고경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갈지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기업의 경영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요. 저는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세상 속의 직장에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그분과 교제하는 삶
Q.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분의 임재와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A. 성경적으로 말씀드리면 문제는 우리의 불신앙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과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히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죄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성경이 얘기하고 있는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개념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우리 안에 죄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십니다. 성경에 ‘하나님 말씀과 성령과 물로 우리를 깨끗게 하여 하나님께 순결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명령도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왜 ‘나는 거룩한 성도입니다’라고 고백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부를 때 ‘성도’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마서 6장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죄를 극복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에는 우리가 거듭났으면 더 이상 죄 안에 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Q. 목사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씀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A. 그 말씀에서의 ‘기도’가 어떤 개념인가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우리는 보통 ‘기도’라고 얘기하면 손을 모으고 어느 한 구석에서 무릎 꿇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사실 기도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늘 나누는 교제입니다. 우리의 뜻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알아 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기도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한 과부의 예를 들면서 늘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아마도 일맥상통할 겁니다. ‘쉬지 말고’라는 표현을 ‘멈추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그분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는 그런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Q.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A. 우리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알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로 말미암아 그분 중심으로 확장되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이고 그분은 나무입니다. 나무를 떠난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내 중심의 삶에서는 영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갖고 계신 목적은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인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성을 추구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우리 중심으로 산다면 그런 하나님의 목적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그분 중심으로 생활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김현정 기자
2002년 1월1일자 (재창간27호/통권215호, 빛과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