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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후야 한 숨 푹 자고 났더니 이제야 머릿속이 맑

김의현 |2006.09.13 23:53
조회 25 |추천 0

*폭풍후야

 한 숨 푹 자고 났더니 이제야 머릿속이 맑아졌다. 찌뿌드한 몸에 기지개를 펴며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의자에 몸을 눕혔다. 좌우로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의자에서 방안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고요한 듯한 적막함이 싫어 텔레비젼을 켰다. 아주 오랜만에 브라운관을 통하여 보이는 모양새가 흥미로웠지만 이내 질려버렸다.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금 하산해야 하는 산악인의 허무함과 같은 것들이 밀려들어왔다. 지난 날을 되새길 필요가 있는 것인지, 남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 셈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냉기가 가라앉지도 않았던 3월 초의 어느 날, 나는 머리를 쥐어싸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던 것이었는지 약간의 화도 났었던 것 같다. 다시금 밀려오는 후회와 남에게 덮어씌우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에이씨, Y전도사만 아니었다면.' 혹은 'L군만 아니었더라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Y전도사는 5월의 예정된 그날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나'를 보고서 그런 결정을 했던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결정된 일은 번복할 수 없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꼼수를 써내야 되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5월 첫 주에 내정되어 있는 집회의 첫머리를 장식하라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노래하며 마이크를 잡는 일도 어색하고, 앞에 있는 대중들도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의 반응이 궁굼했다. 조직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경험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까 조심스러웠다. 주변에서야 중심이 서고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더욱 위를 바라본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맡아서 할 수 있다면 잘하고 싶고, 잘보이고 싶고, 그래서 걱정하게 되는 것이 사람마음인데 말이야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만, 쉬이 행동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가만히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유독 올 한 해는 학교생활을 착실히 해보기로 결심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회의감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개척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이미 학교에서는 몇 몇을 빼놓고는 선배를 찾을 수 없을만큼 고학번인데도 처음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드나들지 않던 과방도 넘나들며 사람들과 인삿말을 건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착실하게 쌓여가던 생활전선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지방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교회의 모임에 참석하려 내려갔었는데 'Y전도사'의 권유로 목요일에 올라가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처음 한번이 2주에 한 번꼴로 늘어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매주 목요일이면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생활의 양분하며 당장에 문제가 생긴것은 학교생활이었다. 학년 엠티, 동아리 엠티, 인문대 체육대회, 과대항 농구와 축구 시합 등등 매 주마다 굵직한 기회비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큰 마음 먹고 시작했던 일들이 갑작스레 생겨난 일들로 차질을 빚자 다시금 셈하기 시작했다. 과연 어떠한 것들이 나를 위한 것일까? 나를 변화시키는 힘은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5월에 있을 계획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은 오히려 기대화 희망으로 앞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작은 단체의 '회장'으로 군림하는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찾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학교의 문제는 핑계에 불과한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분명 나는 어느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려 하고 있었고, 나 자신의 작은 감상에 이끌려 더욱 커다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외려 기회비용이 커다랗게 변할 수록 훨씬 큰 것을 얻을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도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짧게는 4개월 남짓한 '친구L군'과 'C전도사님'의 듬직한 모습과 리더쉽에서 수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고 10년 넘게 생활했던 'C'양과 'S양'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은 내가 뒷짐만 질 수 없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으며 'K양'과 고등학생 'L군'과 'C군'의 성장하는 모습은 나의 가슴을 흐믓하게 채워주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웃고 함께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이날을 기다려 왔던 나로서는 이 안에서 더욱 커다란 것을 보게 만들었다. 이미 '도전'을 넘어 '화합'의 경지까지 이르렀던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모습을 기분좋게 바라보고 있을 이는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푸념섞이며 가지말라는 학교친구들의 한숨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가볍게 서울행 버스에 올라탄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

 매주 예배가 끝나면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평일에 서로 떨어져 있는 만큼 연습량이 절대로 부족했고, 갑작스레 결정된 찬양단인지라 실수도 많고, 가사 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앞을 보고 위를 올려다며, 서로를 격려할 수록 그런 기준들은 중요치 않게 되었다. '교회 오는 것이 이젠 즐거워요.'라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커다란 징소리가 되어 가슴을 심하게 진동시켰다. 처음에 했던 불만과 걱정들은 이제 또다른 감동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을 보며, 그것도 함께 생활해온 내 동생들을 보며 또 다른 중심을 보고 내가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학교에서도 생활의 중심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비록 일주일에 4일정도밖에는 없지만, 짧은 시간만큼 집중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만큼이나 신경을 쓰게 되었다. 교회의 일 때문에 내 나머지 생활을 갖지 못한다면 오히려 절반의 성공에 머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열심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가끔 또 내려가냐며 탄식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때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이곳에도 있다는 확신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함께 끌고가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곤한다.

 시간이 지나고  약속의 날이 왔다. 검정색 정장을 입고서 약간 이른시간에 마춰서 도착하며 짧지만 지나온 날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신앙과 기도는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왔는지, 이날의 '도전'을 '계기'로 만들어 달라는 나의 외침들은 '과정'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 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마음껏 나의 변화에 감사하면 그뿐이었다. 한달 전 'C전도사님'께 나에게 주신 깨달음을 호소하며 추천하였던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곡을 첫곡으로 우리는 시작했다.

 뜨거운 열정, 말그대로 폭풍과 같은 감사의 빛줄기 속에서 나는 오늘 무료함을 느끼고 있다. 이젠 더이상 연습을 할 필요도 없고, 연습을 할 필요도 없는 지금의 시간이 약간이 무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의 휴식은 더욱 뜨거운 폭풍과 같은 나의 변화와 도전을 담는 그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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