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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국 고구려의 발전

김수연 |2006.09.17 16:13
조회 62 |추천 2

391년에 왕위에 오른 광개토태왕은 세종대왕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임금님입니다.

 

그럼데 조선시대 사람들이 고구려왕들 가운데 가장 많이 기억해준 분은 수나라를 선제공격하고, 수백만 대군을 물리친 영양태왕이었습니다.

 

고구려의 면적도 612년 수나라와 전쟁을 할 때가 가장 넓었습니다. 그럼에도 광개토태왕을 고구려 역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었일까요?

 

광개토태왕은 평범한 지역의 강국 고구려를 진정한 동아시이의 대국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축적해둔 국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쳤습니다. 남쪽으로는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고, 백제와 가야를 굴복시켜 조공을 받았으며, 백제의 용병이었던 왜를 거듭 격파하였습니다. 복쪽과 동쪽으로는 숙신과 동부여를 굴복시켜 속국으로 삼았으며, 서쪽으로 현재의 서요하 중상류에 있는 거란족을 정벌하였으며, 모용선비족이 세운 후연을 명망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복활동을 통해 고구려는 넓은 농경지를 확보했고, 엄청난 소와 말을 확보해 농업의 발전과 군대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동해와 서해의 지배권을 장악하여 동아시아 바다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리하여 고구려는 5세기에 유목세계의 유연, 황야유역의 북위, 양자강유역의 송 등과 함께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4강의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함께 인구도 크게 늘었고, 경제,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고구려 전체를 크게 변모시켰기 때문에 광개토태왕을 고구려 제국의 건설자로 높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인 장수왕 시대에는 북으로 더욱 세력을 넓혀 대흥안령에 위치한 지두우를 유목제국인 유연과 함께 분할하여 차지하기도 했으며, 남쪽으로는 아산만에서 경상북도 영일만에 이르는 지역까지 영토를 넓히기도 했습니다. 고구려의 영토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넓어져 북쪽 영역은 대체로 동류송화강, 서쪽은 요하를 넘어 의무려산, 동쪽은 연해주 남부에 달하였습니다. 이 영역을 넘어 유목부족 등에 대한 간접지배 등을 통한 영향력이 미친 범위, 즉 고구려의 세력권은 대체로 현재의 만주전역과 연해주 일대, 한반도의 대부분, 그리고 일본열도의 일보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까지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세력권 안에는 거란, 말갈, 지두우, 신라, 예 등이 속국과 속민의 형태로 속해 있었습니다. 이 무렵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하의 질서의 수호자, 천하에서 가장 신성한 나라로 자부하는 제국이었습니다.

 

5-6세기 고구려는 동아시아 4대 강국의 하나로 항상 전란이 끊이질 않았던 북위나 송 등과 달리 상대적 평화를 누리면서 풍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6세기 초 북중국의 지배자 북위는 고구려를 일컬어 커다란 술항아리라고 일컫고, 그 안에 작은 술독이 빈 것은 고구려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만리장성과 대흥안령 동쪽은 고구려가 통제하는 하나의 세계임을 주변 강대국들도 서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550년대 신흥 유목제국인 돌궐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틈을 타서 공격해 온 백제와 신라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지만, 돌궐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대제국의 위상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6세기 후반 동아시아 4강 체제를 무너뜨린 새로운 강자 수나라가 등장하자, 고구려에게도 위기가 닥쳤습니다.

 

수나라는 황하와 양자강 일대를 통일하고, 돌궐마저 굴복시킨 후, 고구려에게 창을 겨누었습니다.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598년 선제공격을 하였고, 1차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612년 수나라는 수백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해왔습니다. 이때, 을지문덕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살수 전투에서 적의 별동대 30만 5천명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고구려는 614년까지 4차례에 걸친 수나라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 반면, 수나라는 패전의 후유증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 고구려는 수나라를 계승한 당나라와 또 다시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고구려를 굴복시키겠다는 야욕을 가진 당태종은 645년에 무모하게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이때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서부 변방의 군사기지인 신성과 건안성, 안시성, 그리고 주필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당태종이 이끄는 적군 수십만을 격파했습니다. 당나라는 661년에도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해왔습니다. 고구려군은 662년 2월 당의 주력군을 사수 전투 등에서 궤명시키는 등 적의 침략야욕을 다시금 꺾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고구려는 외적의 침입을 거듭 물리치며 강대국 고구려의 진면모를 과시했습니다. 고구려가 대제국을 건설하고, 수와 당을 거듭 물리친 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형의 유산으로 전해져 우리겨레의 자부심이 되어 있습니다.

 

 

                                     출처 : www.lovekogur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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