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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자가 남에게 베푼다

KBS강태원... |2006.09.18 16:53
조회 51 |추천 1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언제 지갑을 여는가? 얼마나 자주 여는가? ARS전화는? 혹은 가족끼리 힘을 합해 복지사업을 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복지사업을 위한 정기적인 후원자는 아닌가?


이 시대의 대표적 배우 김혜자 씨가 우리나라의 세계적 구호기관인 월드비전과 함께 다른 나라 어린이들을 구호하는 것을 보면 매우 감동적이다.

그는 자신이 쓴 책의 인세도 모두 기부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매월 과다하다 할 정도의 금액을 후원금으로 보시(布施)하며 꺼져가는 생명을 붙들고 신음하고 있는 지구촌 어린이들을 살려내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그것이 위대한 사랑, 자비(慈悲)가 아니고 무엇이랴.

어린 생명들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대표하는 거룩한 모습이다. 


김혜자 씨처럼 남을 위해 보시하고 돕는 것이 생활화된 고귀한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은 희망이 있고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향상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면 김혜자 씨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과 자비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왜 이리 어려운가? 

아직 그러한 행동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든지 동기나 자극이 없는 등의 이유로 처음의 실천이 어려운 것도 한 이유가 되리라 본다.

무슨 일이든 첫 경험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처음 한번을 가르쳐주거나 안내해 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훨씬 쉽고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부를 하거나 보시를 하는 것을 자꾸 자꾸 연습해 보아야 한다.

어느 때 한 번 지갑을 열어 본 사람,  ARS 전화를 돌려본 사람은 두 번째 세 번째를 이어갈 수 있다.  한번 하고 또 하고 그러다 보면 남을 돕는 행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보시하는 그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맑혀서 자신에게 생각 못했던 큰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자리이타(自利利他)가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조계종포교원에서 나온 ‘불교입문’이란 책을 보면 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한다.

 “인색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베풀 줄을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베푸는 것을 좋아하나니  그는 그 선행으로 인하여 보다 높은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보시가 현명한 것일까. 역시 같은 책에 소개된 에 그 답이 나와 있다.

 

- 보시를 바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자진해서 베푸는 보시

- 이따금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는 보시

- 남에게 주고 나서 뉘우치는 마음이 없는 보시

-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주고받는 물건이 여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 보시

- 오직 대승의 궁극적 깨달음인 영원의 법을 위한 보시

- 세상에 삶을 받은 모든 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보시

- 모든 사람의 번뇌를 끊어주기 위한 보시


이제 우리는 알 것 같다. 사랑과 자비심 때문에만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 행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귀한 의무이며 신성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고, 우주와 내가 하나이듯이, 한 시대 한 공간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보시를 할 수 있다고 한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시를 행할 때 준다는 상(相)을 내거나 자신에게 이로운 뭔가가 반대급부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로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를 깨닫고자 수행하며

자신의 것을 남김없이 아낌없이 남에게 나눠준다.  나눠주는 행위로 자기 안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비울 때 그 자리에 지혜가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의 눈을 뜨고 싶다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보시의 마음을 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보시부터 연습해보자. 그렇게 하여 그것이 각자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한 실천으로 이어지고,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가 서로 다른 둘이 아닌 하나(不二)가 되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이룰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바랄 수 없는 멋진 세상이 될 것임을 믿는다. 

조계종포교원(2005), 불교입문, 수정 증보판.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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