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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 보는 브로크백 마운틴.

김윤영 |2006.09.19 01:45
조회 27 |추천 1

 영화관에 어떻게 혼자 가냐고 놀라는 사람이 있어 되려 놀란 사건이 있었다. 흥행과 입소문 차원에서 검증되지 않은 영화나 시사회를 보러 갈 때 혼자 가는 게 편한 이유는 옆사람의 오락과 흥미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색하고 지루하고 난잡하고 어이없는 장면과 대면했을 때, 홀로는 넘기고 말지만 누군가를 데려 왔다면 정신이 어느 새 스크린을 떠나 옆사람의 신경줄을 타고 다닌다. 참 하릴없는 짓이다.

 

 꼭 삼류와, B급을 가장한 C, D, E, ... , Z 급 영화들만의 경우는 아니다. 예술성과 작품성에 대해 활자의 차이로만 분별하는 게 전부인 나로서는 제법 괜찮은 영화에서 OTL을 할 때도 많고 '괜찮기만 한' 영화일 뿐인 것을 극오버해서 설레발치고 '이 영화 최고잖아' 입소문 퍼뜨리고 다닌 적도 파다하다. 확신을 갖고 매달릴 줄 아는 영화가 있다면 순전히 제 취향 때문이다. 전문가답게 별점 평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가끔 '이건 딱 내 취향이잖아' 하는 영화에서 딱 그 만큼 옆 사람의 취향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올 때가 있다. 놀랍고 기묘하게도, 있고 만다.

 

 요즘 CGV CHOICE에서는 '브로크백 마운틴'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그러면 오늘 언제가 또 여유가 있으려나, 계산해 보는 내가 있다. 홀로 있을 시간 쯤을 짐작해 본다.

 

 

  시사회를 볼 당시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군'이라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아직 취향에 대한 판가름이 날 타이밍이 아니었는 데도 말이다. 친구의 지루함과 겨루고 혼자서는 초조함을 견뎠다. 주동과 선동의 위치에 서서 영화를 보러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상당한 것이었다. 어찌 됐든 다른 사람의 오락과 흥미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벌벌 떨릴 것만 같이, 살로 느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눈치 보는 성격답게 죽을 것 같은 연장전의 연속이었다.

 

 마띠유 카소비츠의 '증오'처럼 보려고 했다. '내 취향은 아니잖아', 수십 번을 곱씹으며 영화를 견디듯 길고 긴 러닝 타임 위에 서 있는 것. 보기 좋게 실패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고 어쩔 도리도, 터무니까지도 없었다.

 

 그러나 러브씬이 나올 때마다 욕과 야유를 퍼붓던 전후좌우의 몇몇과 무리들은 응당 이유 삼을 수 있겠다.

 

 오늘도 집에 혼자 남을 때쯤 리모콘을 찾아 브로크백 마운틴을 주문한다. 더욱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외로 볼 줄을 알게 된 탓이다. 다음은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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