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7일 해태 타이거즈는 팀 통산 1천 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83년 해태 감독을 맡은 이후 15년 동안 장수를 누리는 노장 감독의 이름은 이제 한국 프로 야구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김응룡의 야구 인생은 팀의 이전이 잦고 생명력이 짧은 프로 야구의 세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한 편의 승부사이다. 한때 '모래알 같다'라는 평가를 받던 해태 타이거즈 야구단.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해태 타이거즈는 한국 최고의 팀웍과 실력을 갖춘 팀으로 한국 스포츠계의 역사를 장식하는 주인공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해태 타이거즈의 발전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응룡이라는 한 사람의 15년 한결같은 뚝심이 있어서 가능하다 할 것이다. 최고의 선수로 활동하던 야구인생을 바탕으로 한 감각, 힘과 근성을 가진 지도력, 국내 유학파 감독 1호라는 선견지명, 바로 이점이 오늘의 해태를 낳은 김응룡의 저력이다.
☞ 성공 비결 1 :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김응룡 감독이 10살이던 지난 51년. 그는 1.4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대동강을 건넌다. 부산에 정착하면서도 그는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고향집에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응룡이는 어려서부터 거구, 다른 아이들의 두 배의 덩치를 가졌다. 중학시절 반대항 야구시합에 나갔다가 코치 눈에 띈 게 그 시작. 야구단에 들어가자 하루종일 연습에 미쳐 살게 된다. 중학교 때 대회를 앞두고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도 출전을 고집, 모교인 부산 개성고에 제 3회 문교부장관기를 안기기도 했다.
☞ 성공 비결 2 : 노력이 최고를 만든다
부산상고에 진학하면서도 그의 꿈은 오로지 야구였다. 그러나 고 1.2학년 당시에 야구팀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김응용은 부산에서 싸움꾼이 되었다. 고3이 되면서 자신이 계속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깨우침에 야구부 친구들과 당시 남전 야구팀에서 활약하던 어우홍 씨를 감독님으로 모셔오면서 야구단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스파르타식 훈련에 하루 20km 로드웍 등. 김응용은 홀로 배팅 연습하러 전교에서 가장 먼저 등교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졸업 후에 입단을 부탁하러 찾아간 당시 최강이던 농업은행팀에서 문전박대 당하고 한국운수에 연습생으로 겨우 입단하게 된다. 이후 남산에서 홀로 타이어를 두드리는 맹훈련 끝에 그 이듬해 대표선수 4번을 달게 되는 등 화려한 실업야구 선수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결정적 홈런을 날려 한국팀에게 대회참가 첫 감격의 우승을 안긴다.
☞ 성공 비결 3 : 우연은 없다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되던 82년. 미국에 유학중이던 김감독은 몰래 귀국, 잠실 개막전 경기를 관전했다. 한일은행 감독으로 팀을 우승팀으로 만들고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따내기도 여러 차례. 그러나 정작 프로야구 시작 때 그를 불러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실망과 허탈감을 안고 다시 미국으로 간 그를 당시 하위권에 머물던 해태에서 찾는다.
개성 강한 선수들 때문에 모래알 같다는 평가를 받던 해태팀은 김감독이 사령탑에 앉은 83년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비정할 정도의 판단력 그리고 어떤 선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그의 감독 스타일. 그의 배짱있는 뚝심과 경기운용의 세심함이 오늘날 한국 시리즈 9차례 우승에, 1천승을 이룩한,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해태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