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나무처럼 한 사람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주위 환경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다음 여덟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부모 아래 어떤 가정 분위기 가운데서 성장했는가?
가정은 인간의 성격의 틀을 형성하는 곳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가정 경험은 건강한 성격이나 병든 성격의 뿌리가 됩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상처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식을 폭행하거나 물질로 어려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부부관계가 불안함으로 인해 아이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 시간을 갖지 못한 데서 끼치는 상처입니다. 즉, 부모의 사랑이 결립되어 생기는 상처입니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 밑에서 자란 아이 또는 교회 목회에 쫓기느라 가정을 보살필 시간이 없는 목회자 자녀에게서 이런 상처를 종종 봅니다.
그 다음으로는 부모로부터 직접 받은 상처입니다. 신체적인 폭행이나 언어적인 폭행, 또는 자식에 대한 무관심에 의해 자리잡는 상처입니다.
둘째, 어떤 문화에서 성장했는가?
한 사람이 배경으로 삼고 성장해온 지역문화는 그의 성격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그가 어떤 공동체에서 성장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치유상담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어떤 문화의 특성을 나타내는 지역에서 성장했는가?
어떤 분위기의 학교에서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살았는가?
그가 몸담고 살았던 지역문화 풍토가 상처를 주는 풍토인가, 치유하는 풍토인가?
그가 출석했던 교회가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거나 억압하는 교회인가, 넓게 감싸주는 교회인가?
그가 일주일 중 5, 6일 동안 하루의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학교가 상처를 주는 곳인가, 치유하는 곳인가?
유태인 공동체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비교적 건강하고, 미국의 일부 인디안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건강한 것은 그들의 공동체가 치유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인간의 병든 성격은 그가 어떤 분위기의 문화에서 성장했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셋째,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인간의 마음 속의 깊이 자리잡은 상처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깊이 뿌리를 내리지만, 사춘기, 즉 청소년기와도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건강한 성격 형성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한반면, 청소년기에 이르면 주위 동료들과의 관계가 성격에 아주 중요한 변수로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좋은 성격 바탕을 마련했지만, 청소년기에 주위 동료들로부터 충족해야 할 애정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자리잡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시시때때로 분노를 폭발하는 사람들을 주의깊게 관찰해보면, 상당수가 사춘기에 입은 상처가 그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사춘기에 애정 결립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사춘기에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얌전한 청소년 또는 착실하기만 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치유의 대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오늘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가장 큰 약점은 사춘기 청소년들로 하여금 마음놓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입시라는 불안과 공포 속에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할 수밖에 업습니다. 우리 국민 가운데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사춘기 고착증' 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넷째, 결혼 이후 부부간의 애정 욕구가 충족되고 있는가?
유년기와 사춘기를 건전하게 보냈다고 해도 결혼 이후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면 마음에 상처가 자리잡습니다. 음식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과 또같이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결혼 이후 가장 중요한 대상은 상대 배우자입니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역시 마음에 상처가 됩니다. 어린아이가 받는 상처처럼 깊지는 않더라도 오랫동안 수 년에 걸쳐서 상대 배우자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는 사랑에 이를 만큼 상처는 심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부부간의 애정 결핍에서 오는 상처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보고 있습니다.
다섯째, 치유가 역사하는 공동체로 다섯째, 삶의 의미 상실에서 오는 상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의미 상실로부터의 상처는 흔히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증상입니다. 지금까지 성공과 물질 만능 사상에 휩싸여서 정신없이 살아오던 사람들이, 중년기에 접어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들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지나온 세월에 비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실존적인 질문에 시달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보람있는 삶이었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공허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이면서 우울증으로 빠져듭니다. 삶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젊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사람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쾌락에 휘말리는 중년들은 모두가 치유의 대상입니다.
이런 증상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중년기가 병들고, 따라서 병든 노년기를 맞고야 맙니다.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신앙을 통한 영적인 의미, 자연과 예술을 통한 사랑의 의미, 그리고 보람있는 노동을 통한 의미를 찾아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섯째, 죄책감에서 오는 영적 상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은 영성을 지는 존재입니다. 영성은 하나남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접촉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났을 때 그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낍니다. 죄책감은 인간의 영적인 능력에 혼란을 초래하고 신체의 이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은 손도 대지 않으시고 먼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다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막 2: 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이 근원이 죄책감인 것을 직감했습니다. 상상 외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죄책감으로 인한 심리적 우울증과 신체적 이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와 용서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일곱째, 치유는 믿음과 소망과 사람이 함께 역사하는 공동체를 통해서 가장 강하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강하게 느끼고 이웃과의 사랑을 가장 뜨겁게 체험할 수 있는 길은 성령이 역사하는 소그룹 공동체라고 믿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회개하고 용서하거나, 또는 개인상담으로도 치유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의 체험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과 영의 상처는 대부분 관계에서 시작된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인 가족 관계에서 얻은 상처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소그룹 공동체에서 제일 쉽고 강하게 치유된다고 믿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질서인 믿음, 소망, 사랑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소집단 신앙 공동체 안에서 치유는 가장 분명하게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상처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세 가지 증상은 불안, 절망, 분노입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지식적으로 증상과 치유를 설명하는 것은 부분적인 치유 상태에서 머무르게 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이 확신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분노가 사랑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할 때만 온전한 치유가 됩니다. 이런 체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정신으로 엉켜진 소그룹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아볼 때만 가질 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지역공동체에서 사랑을 받지 못해 움츠러든 성격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자신을 수용해주는 사랑의 사람들을 만날 때만 달라집니다.
여덟째, 현대의 의학, 과학, 심리학을 하나님의 창조원리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환자를 만났을 때 의학이나 다른 학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곧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합니다. 세상의 과학과 의학도 하나님이 인간을 건강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창조하신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영, 그리고 신체의 치유에 임할 때 언제나 그 분야의 전문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돕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과 사랑이 필요하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게 되고 이해할 수 있다. 약한 우리들이지만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고 그 안에서 사랑하라는 신의 섭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이미지: 영혼의 나무 N-100 김희경 2000.jpg
*글출처: 정태기저, 『내면세계의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