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유천 김화경(柳泉 金華慶, 1922~1979) 화백이 1971년에 그린 작품이다.
유천은 초가(草家)집을 많이 그려 '초가집 화가'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작가다. 주로 하얀 눈에 뒤덮인 초가를 그리고는 강아지가 꼬리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이 는 파격적으로 한낮의 고요를 창출해 낸 것이다. 방금 방아를 찧다가 들어간 듯 절구공이가 놓여 있다. 대담하게 늘여 뺀 초가지붕이 강한 이미지를 전한다. 지붕 위에 걸린 해가 이 작품에 앤센트를 주어 작가의 의도를 말하고 있다.
유천이 명체를 로 붙인 것도 한낮의 초가 풍경을 강조한 게 아닐까... 정적이 감돌 정도로 대낮의 고요가 잘 표현되어 있다. 송편이라도 빛을 양으로 떡방아를 찧는 것일까. 궁금하기 그지 없다.
유천은 생전에 를 놓고, 이 초가에 몇 사람이나 살고 있는 지 알아보라고 퀴즈를 내기도 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반문에 작가는 넌지시 두 켤레의 신발을 가리키며 힌트를 주었다.
유천은 "부부가 방에서 무얼 하는지 아느냐."고 조크, 배꼽을 잡게 했다. 더러는 낮잠을 잔다고도 하고, 짖궂은 사람은 한낮에 사랑을 속삭이는 게 아니냐고 공연한 상상력을 유발시켰다.
유천은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의 제자다.
성격이 꼼꼼해서 근대 미술에 관한 많은 자료를 간수하고 있어 이당이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구술할 때 (1976년) 중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유천의 그림에는 화제(畵題)가 없는 게 특색이다. 이당이 "자네는 글씨가 미워, 화제는 쓰지 말고 아호만 크게 쓰게."하고 엄명. 유독'柳泉'이란 아호만 크게 썼다는 것이다.
유천은 말년에 직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꼿꼿한 자세로 국전 심사장에 나와 열심히 심사, 강인한 자세를 보여줬다.
유천은 동경 제국미술학교를 졸업, 1958년 반공미술전에서 동양화부 수석상을 받았다. 1970년에는 카뉴 국제회제에 한국대표로 출품했다. 국전 추천 및 초대 작가를 역임하고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 이규일 中
예전에 한분과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길가에 있는 폐가를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경치도 너무 좋은 그 집에 사람이 없음으로 해서 너무나 괴기스러울(?!) 정도로 썰렁한 폐가가 되어 있어 안타까웠다. 시골에는 사람 사는 집보다 이런 폐가가 더 많다.
사람에게는 에너지가 발산되어 허물어져가는 집까지도 든든히 하고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허름한 집도 사람 사는 집은 그리 정겨워 보이니 말이다. 정겨운 초가집에 사랑이 흐른다. 미소짓게 하는 이 그림을 보면서 그때 대화한 이야기가 언뜻 생각이 났다.
* 음악: 너영 나영 - 제주민요 <EMBED style="LEFT: 178px; WIDTH: 286px; TOP: 17px; HEIGHT: 46px" src=http://www.soundspace.co.kr/pds/CD_MP3/SCO-074CSS/TR03.MP3 width=286 height=46 type=audio/mpeg AllowScriptAccess="n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