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장애인, 국가유공자, 백수 십니다.
월남전쟁에서 다치신거 때문에 장애인이 되셨고 그 때 발생한 고엽제 때문에 국가유공자가 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연세도 많아 백수가 되셨습니다. 이제는 연금 타고, 모아 놓은 노후보장비로 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릴적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풀 사달라고 하면 밥풀로 붙이라 했고, 주스 먹고 싶다고 하면 물 먹으라고 했고, 볼펜이 없다고 하면 본인이 쓰던거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어릴적 아빠는 폐차장 상무였습니다.
아빠 친구가 사장이었고 아빠를 고용한 것이었습니다. 근데 폐차를 시키기 전에 차를 한번 둘러 보시곤 의자 밑이나 발판 밑에 두리번 거려 떨어진 동전을 모우셨습니다. 어떤건 검정색으로 기스가 났고, 어떤 동전은 구멍이 났고 어떤 동전은 동전으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아빠는 그런 돈으로 가끔 백원, 이백원 용돈을 주셨습니다. 전 창피해서 그런 동전 쓰지도 않고 모으기만 했습니다. 근검절약이 몸에 베이신 아빠를 닮은 것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의 갈색 가죽 구두가 너무 낡아 보였습니다. 깨끗하게 닦아도 낡은 건 낡은 거 겠지만 어린 마음에 아빠를 흐뭇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신문지나 휴지에 물 묻혀 닦으면 되는데 전 그 생각도 못하고 구두약이면 더 광채가 날 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전 구두솔로 빡빡 검정 구두약을 바르고 갈색 가죽 신발에 힘껏 문질렀습니다. 그러나 문지르고 나서야 알아 버렸습니다.
검정색을 칠하면 검정색이 된다는 걸 말입니다. 억울 했습니다. 하지만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었지만 말을 해야 했지만, 고의가 아니였으므로 묵묵부답으로 지냈습니다.
아빠는 물어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한쪽은 갈색구두, 한쪽은 검정색으로 앞부분만 칠이 된 구두를 신고 얼마간 다니시다가 나중엔 그게 창피 하셨던 모양이었습니다. 한쪽은 갈색구두 한쪽은 슬리퍼를 신고 출퇴근 하셨습니다. 아빠는 몇 달 후 시장 가서 제일 싼 구두 하나 사 신으셨습니다.
이젠 아빠의 환갑이 이젠 10월로 접어 듭니다. 언제나 무뚝뚝하기만 하실줄 알았던 아빠의 얼굴에 이젠 삶의 여유도 나타납니다. 좁아진 어깨만큼 작아진 키 만큼 많아진 흰머리만큼 자식들이 속 섞인 증거가 아닐까 생각듭니다.
비록 임신을 먼저 하고 부모님이 원하지 않던 결혼을 한 거였지만, 전 아빠의 환갑 때 값진 선물을 하렵니다. 그 동안 모와 놓았던 돈 이백만원과 언니가 보태준다는 이백만원 으로 부모님 여행 한번 보내 드릴랍니다.
아빠에게 아직도 구두를 사 드리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자식들이 보내주는 일본 여행 한번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아빠는 그것 조차도 낭비라고 방방 뛰시지만, 이미 많이 작아진 아빠의 모습에서 이젠 행복의 웃음이 보입니다.
사랑합니다. 더 많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