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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거시분석

이유철 |2006.09.24 03:09
조회 61 |추천 1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때문에

한 중간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의 동북지방, 즉, 장성(長成) 동북방의

길림성, 료녕성, 흑룡강성....(동북3성이라고 합니다)....

의 범 인문사회학적 연구프로젝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다음의 2가지 성격으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학계에서 자주 행하는 순수한 연구, 즉 지리, 지질, 기후, 식생,

인구, 민족, 인종, 언어, 사회, 조직, 역사 등의 측정 및 연구와

 

앞으로 국제적으로 더욱 개방되는 중국사회가 당면하게 될 문제인

계층 간 분열, 지역간 분열, 민족간 분열에 대한 학술적인 대응책입니다.

 

중국은 50여개가 넘는 민족(인종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의 결합체이며, 지역별로 상이한 문화사조를 가지고 있고, 비록 한족(漢族)이란 '민족집단'이 중국인의 91%를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한족이 아닌 집단이 소유한 땅이 중국영토의 50%에 육박하는데다, 중국사회 자체가 14억이 넘는 인구로 인하여,

 

향후 개방화로 인한 세계적 보편사조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민족주의의 도입으로, 사회 각 계층 내부의 이해관계상충, 지역분열, 그리고, 이민족의 이탈 및 분열의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중국은 다원화된 국토의 안정된 통치와, 차후 분열을 막기 위해서, 그 통치, 및 정책의 근본이 되는 학술적인 연구를 추진하게 됩니다.

 

이미 서기 1980년대부터 중국은 동북(뚱뻬이: 만주)지방뿐만 아니라, 서북부의 신강위구르자치구(중앙아시아계 이슬람문화권), 서장자치구(티벳), 내몽골자치구(유목문화권)지역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동북공정은 서기 2000년대 초 무렵 완성단계에 이르렀고, 이 중에 동북지방(이하 '만주'로 통일합니다.)의 역사인 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이 중에 약 10% 가량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만주지역의 역사연구가, 북한의 붕괴 및 한국의 통일시 야기될 수 있는 만주지역의 조선족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를 또다시 국내적으로 중국인들에게 가르치고,

국제적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이른바 '왜곡'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왜곡의 범위는, 조선, 부여, 예맥, 고구려, 발해, 말갈 등 북방고대한국사 전반부에 걸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구려사가 주로 부각되어,

한국에서는 고구려사왜곡으로 주로 통칭하고 있으며

일반에서, 고구려사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역사연구의 연계성을 고찰하면,

고구려는 바로 상고시대의 조선, 부여와, 고대후기의 발해와의 중간시기에 존재한 국가이고, 이 조선이나 부여, 발해와 매우 밀접한 연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사를 연구하면, 북방고대한국사를 동시에 연구하게 됩니다.

 

그러면 중국당국의 고구려사의 귀속문제에 대한 주장을 한번

분석해보겠습니다.

중국측의 고구려사귀속문제에 대한 견해는 총 2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고구려는 중국 동북부에 존재한 맥(貊)계 국가로,

한반도 남부에 있던 한(韓)인과는 다른 부류이다.

 

-. 고구려는 대대로 중국에 있던 왕조들과, 조공책봉관계인

사대관계를 지속한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먼저 첫 번째 주장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하겠습니다.

흔히, 국제적으로 대한민국과 북한과 만주의 조선족을 이루고 있는 '한민족'의 원류를,

 

한반도 남부의 한계,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 중서부에 있던 맥계, 그리고 중국귀화인으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며 거의 정설입니다.

 

이는 국어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바로 '남방한어(南方韓語)'와 '북방한어(北方韓語)'입니다. 이 남방한어는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신라의 언어이고, 북방한어는 고구려의 언어였다고 합니다. 일례로 산(山)의 신라/백제의 언어는 '모리'였고, 고구려어로는 '달'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사시대 이래로, 각종 유적, 유물, 그리고 역사시대의 각종 기록을 고찰하면, 한인과 예맥인은 남한인, 북한인, 조선족(국제적으로 KOREAN 이라 통칭되는 집단) 의 '원류'이지

 

'이민족'이 아닙니다.

선사시대의 비파형동검의 분포도, 각종 토기의 분포도, 그리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주민의 기록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라/백제계 남방한어와 고구려계 북방한어가 크게 다르다는 주장 역시, 강길운선생의 한국어계통론과, 각종 기록을 보면, 그것이 서로 다른 민족집단이라는 것을 웅변해주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주장의 핵심인 조공책봉관계를 고찰하면, 당시 사대교린이라는 국제관계 내지 외교시스템은 동아시아지역의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이런 논리라면, 일본, 몽골, 베트남, 티벳,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로마제국까지 중국사의 일부가 된다는 결론이 성립됩니다.

 

이 사대교린이란 국제시스템은 유럽의 예루살렘성역화, 아랍권의 메카성역화같이, 당시 고대인들이 신봉하던 철학, 종교에 의한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근대적 내셔널리즘에 의한 만국공법체제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리고, 각종기록의 흐름과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면,

고구려는 대륙세력에 대하여, 항상 대항해왔고, 독자적인 천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웃한 대륙세력보다, 인접한 백제와 신라에 대한 동질의식이 더욱 많았던 것으로 고려됩니다.


또한 중국측은 서기 1980년대 이전까지, 자신들의 교육자료에, 고구려를,'중국 동북부의 소수민족정권'이 아닌, '조선반도 북부의 고대노예제국가' 로 기술하고 있었으며,

 

중국인들은 아직도 한국인을 '가우리방쯔' 라고 칭하는데, 가우리는 고구려의 중국식 발음입니다.


즉, 중국측이 고구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때는 1980년대 이후로써, 이 시기는 중국이 주변의 티벳, 몽골에 대한 역사왜곡을 시작한 시기입니다.

 

즉, 학술적인 문제보다 정치적 성향이 짙은 의도적인 역사왜곡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국내적으로, 고구려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고,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며,

 

국제적으로 같은 역사왜곡의 피해자인, 몽골, 회홀, 티벳등과의 연대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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