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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어머니 (17)

이성도 |2006.09.28 21:23
조회 16 |추천 0

1974 년 8 월 19 일 내가 대학 시절이던 20 대 초반 육 여사께서는 10 여년 동안 머무시며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시던 청와대를 영영 떠나셨다.

 

생전 그토록 사랑하셨던 박 대통령과 삼남매의 깊은 슬픔 속에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떠나시던  그 날을 잊을수가 없다. 

 

박 대통령께서 흰 국화꽃으로 장식된 영구차의 뒤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오열하시던 그 뒷 모습은 아마도 많은 국민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눈물로 어머니를 보내던 근혜.근영.지만 삼남매의 모습이 30 년이 지난 지금도 서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며 아직도 생생한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 갔어도 아무리 역사를 빨리 잊어 버리는 민족이라 해도 두 분께서 떠나신 참담하고 비통한 역사를 어찌 잊을 수 있으리요 ?

 

육 여사께서 문세광의 흉탄에 맞으신  1974 년 8 월 15 일 저녘 7 시경 소나기가 퍼붓던 서울의 하늘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하늘 전체가 붉은 분홍빛 노을로 물들었다.

 

아마 극락 세계의 문이 열리지 않았나 싶다.

 

바로 얼마 후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하늘도 서러워하듯 다시 비가 내렸고, 그날 밤 늦게 육 여사께서 서거하셨다는 뉴스를 들으며 이나 국민들은 통곡하며 울어야 했다.

 

그러나 육 여사는 아직도 생전에 큰 스님으로 부터 대덕화라는 법명을 받으신 것처럼 영계에서 큰 자비의 날개를 펼치시며 우리들을 보살피시고 계심을 나는 느끼고 감지한다.

 

육 여사의 비석에는 모윤숙 시인의 시문이 새겨져 있다.

 

사무쳐 그리운 여인이시여

 

돌아서 당신의 삶을 끝내고 가시는 길

이토록 다 버리고 가는 길에 비옵니다.

꽃보라로 날리신 영이시여

저 먼 신의 강가에 흰 새로 날으시어

수호 하소서 이 조국 , 이 겨레를

 

박근혜 의원에게 있어 육영수 여사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삶의 스승이었고,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육영수 여사가 생활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국민에 대한 애정과 헌신 봉사와 희생정신 자녀에 대한 엄격하고도 자상한 교육, 부모에 대한 효도와 이웃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의 실천 등을 박 의원은 고스란이 체득할 수 있었고,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값진 교육이었다.

 

우리가 오늘 날 왜 박근혜 의원을 지도자로 삼아 새로운 희망의 나라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 육영수 여사의 삶을 되집어 보면, 그 이유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훌륭한 어머니 슬하에서 그 본을 그대로 받은만큼 박 의원 역시 훌륭한 국모이자 너그러운 맏이, 따뜻한 딸로서의 역활을 잘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지금 나라의 지도자로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은 20 년 전 박목월 시인이 쓴 육영수 여사 전기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대신해 수행해야 할 퍼스트레이디로서의 각오를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이 글을 쓴게 1976 년 초 여름으로 22 세에 어머니를 잃고, 갑자기 국모 역활을 맡은 지 2 년 정도 지난 시점이다. 당시 어린 나이임에도 어머니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우며, 나랏일을 이끌었던 박근혜 의원은 당시 어떤 자세와 각오로 삶을 이끌었는지 잘 드러난다.

 

"마음의 고향, 어머니는 영원히 나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어도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품안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배우며 자라온 품 속 언제 돌아가도 이해와 사랑으로 충만된 고향입니다. 비록 어머니는 돌아 가셨지만, 언제까지나 나의 고향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이 세상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되어 버렸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좌절과 헤어날 수 없는 슬픔속에서의 자포자기 상태에 두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평소 가르침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결코 좌절로 인해 평소 그렇게 애타게 가르치신 어머니의 말씀을 헛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생전에 착한 일, 바른 일 , 그 수많은 일들을 오직 사랑과 사명감으로 조용히 그리고 한결같이 쌓아오신 어머니 생애가 끝을 맺음으로써 더욱 빛이 나게 됨은 많은 교훈을 남겨 줍니다.

 

크든 작든간에 누구나 이 세상에 올때는 사명을 지니고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민족 중흥을 일으켜 보자고 애쓰는 우리 민족은 우리 세대에 주어진 오늘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지도자의 책임이란 더 크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아내로서 이 세상을 사신 어머니의 생애는 결코 평범하고 안락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엄마는 이렇게 모든 면에서 자제해, 하시던 말씀이 생각 납니다. 어머니는 모든 말씀과 행동을 깨끗한 마음의 거울에 비춰 보시면서 매일 매일 한곳이라도 흠이 있을까, 남의 모범이 되는데 부적당한 곳은 없는가 .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시고 항상 부족하신듯 그 거울을 닦고 또 닦으셨습니다. 돌아 가시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매일 몇 십통씩 답지하는 편지를 통해 수많은 사람과의 접견을 통해 국민의 소리를 정확히들으려고 노력하시고 구석진 곳은 아시는 한도 내에서는 전부 빛과 사랑, 그리고 자립의 의지를 심어주고자 노심초사 하셨습니다. 그 고달프고 거룩했던 생애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이 세상에서 물질과 자기 자신만의 안위가 결코 제일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이상의 숭고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안락을 포기함으로써, 얼마나 풍성하고 귀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다고 생각 합니다. 아울러  한 사람의 고결한 희생과 노력이 얼마나 많은 씨앗을 뿌렸는가 하는 것도 분명 저승에서도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은 아버지와 이 민족 이 국라를 위한 것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이제 영원히 그 모습을 뵐 수 없지만, 어머니는 영원히 우리 마음 안에 살아 계시며 어머니께서 쌓으신 덕은 그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우리들의 노력에 따라 더욱 크게 꽃피울 수 있음을 생각하며 오늘도 굳은 결심 아래 하루를 시작 합니다.

 

육 여사는 한 남자의 어진 아내, 세 자녀의 자애로운 어머니였으며 또한 국민들로 부터 진심어린 존경과 찬사를 받았던 이 나라 국모였다.  박 대통령 일기에서처럼 우아한 모습, 다정한 목소리,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으로 국민들이 가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다. 육 여사가 운명을 달리한 지 벌써 30 년도 더 지났지만 그 분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은 국민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독재자란 비난을 들으면서도, 박 대통령이 그렇게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너그럽고 자상하며 인자한 모습으로 국민들이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었던 육 여사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많은 퍼스트 레이디들이 거쳐 갔지만, 육 여사만큼 국민들로 부터 존경받고 사랑받은 분은 없었을 것이다.

 

학처럼 곱고, 단아한 모습으로 환하게 미소지어 주던 생전 육 여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 오른다. 해마다 목련이 눈부시게 피어 오를때면, 마치 육 여사가 환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공연히 서럽기도 한데 , 한철 잠시 탐스럽게 꽃을 피웠다가 무심하게 툭툭 떨어져 내리면 또 내 가슴이 얼마나 무너져 내리는지.  내 꿈 속에서 뵙는 육영수 여사도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흰 바탕에 갈색 꽃 무늬가 새겨진 포플린 저고리와 밤색 한복 치마를 입으신 우아하고 단아하며, 자비로운 모습일때가 많다.

 

목련꽃은 4 월이 되면, 세상의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햇빛 좋은 앞 마당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피어나 그 자태를 뽐낸다. 그 황홀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박목월 시인의 4 월의 노래가 절로 홍얼 거려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흰 목련이다.

 

그리고 계절 중 4 월을 가장 좋아한다.

여고 시절 교정 앞에 가득히 피어 있던, 그 목련꽃을 바라보며 4 월의 노래를 부르던 그 때가 가장 그리운 시절이기도 하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누구나 아름다운 추억이 있지만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던 젊은 시절은 무심한 세월의 강물에 실려 흔적도 없이 흘러가 버리고, 이름 없는 항구에서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며 희한에 잠기듯 우리 슬픈 역사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가 ?

 

삼각산 자비정사 대웅전 앞뜰에도 해마다 사월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또 생명의 등불을 밝히며 목련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다.

 

그럴때마다 어이하여 우리의 국모이신 육 여사는 다시는 오시지 못하는가, 생전에 그리도 좋아 하시던 목련이 좋으셔서 봄이면 목련꽃 흐드러지게 피는 아름다운 자비정사 산상 고혼되어 오시지는 않으실까 , 하는 애절함으로 가슴이 미어질 때가 있다.

 

그 분께서 생존하실 때는 "생명의 등불"을 밝히고 그 분의 넓은 사랑 안에서 우리 민초들은 편안히 안주하며 살았건만, 그러나 그분께서 떠나신 후 이 백성들의 봄은 어쩔수 없이 "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 아닌 "눈물어린 시련의 계절" 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목련의 꽃말은 봄을 마중하며 피는 꽃이라 하여 영춘화라 한다.

 

목련은 봄이 얼마나 찬란한 계절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짧은 계절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꽃이기도 하다. 모진 바람 불어 닥치는 엄동설한을 견디며 간직해 온 꽃망울을 눈부시게 피워 내지만, 겨울 한달도 못가 꽃들이 무심하게 떨어져 내려 버리고마는...

 

그러나 그렇게 아쉬워해야 할 만큼 사랑할 수 잇는 시간이 너무도 짧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결코 오래도록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올해도 눈부시게 순결한 목련은 피었다 지는가 보다.

 

육 여사 또한 그렇게 자비로운 미소를 온 국민에게 남기신 채 아쉽게도 49 년의 짧은 생을 마치셨던가 ?

 

목련 ! 그 꽃봉오리가 한결같이 북쪽을 향하고 있기에 북향화라고도 한단다.  햇볕을 잘 받은 남쪽 방향의 겉껍질이 북쪽면의 것보다 실하고 오동통하게 자라다 보니 늦게 피고 힘도 적은 북쪽의 꽃잎은 자연히 남쪽 꽃잎의 기세에 눌려 고개가 수그러들게 되기에 북쪽을 향해 피어나는 것과 같이 보여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꽃이라고도 하여 목련을 실향민의 꽃이라고도 한다.

 

육 여사의 영혼께서도 북악산을 그리워 하시며 생전에 그토록 사랑 하셨던 박 대통령과 자녀들,  그리고 국민을 그리워하시건만, 그 깊은 뜻은 어찌 다 헤아리며, 또 그분의 고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다.

 

애끓는 국민의 애도 속에 그렇게 홀연히 떠나가신 님 !

 

자비정사 대웅전 앞들에 목련이 활짝 피면 두 분 영전에 북향화인 목련을 한 다발 올려 두 분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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