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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포소녀

이영주 |2006.09.29 12:09
조회 30 |추천 0

 

이감독에 대한 몇 가지 오해 그리고 야릇한 감탄

 

    의도된 촌스러움이 과장되게 표현된, 도색잡지 같은 포스터가 웬간히 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비호감을 갖게 하던 영화. 개봉 후 관객들의 평이 첫인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비호감으로 완벽히 돌아선 영화. 그런데도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마음이 퐁퐁 솟아났던 것은 왜일까? 결국은 같이 갈 사람을 찾지 못하고 혼자서 극장을 찾아 이 영화를 보고야 만 이유는 뭘까?     이감독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우선, 이재용 감독을 부를 때 이름을 빼놓고 이감독이라고 하는 것은, 내 의도가 아니라 순전히 이감독의 바람임을 밝혀두는 바다. 이감독은 와 의 감독 이재용이라는 이름이 관객들에게 주는 기대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크레딧에도 굳이 '감독 이재용'이 아닌 '감독 이감독'이라 집어넣었던 걸 보면. 그러면 뭘 하나? 포스터에는 그냥 이재용도 아니고 ' 의 이재용 감독'이라고 떡, 하니 박혀 있는 걸. 소박해 보이는 감독의 바람이 마케팅 전략 앞에서 무너지는 꼴이란. 쯧...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껏 이감독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첫째, 이감독이 달콤한 그래서 치명적인 사랑에 꽂힌 멜로감독인 줄로만 알았다. 이감독의 전작 을 다 보았다. 만 비디오로 보고 두 편은 극장에서 보았다. 워낙 산만한 인간이라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본 는 그리 집중해서 보지 못했고, 그래서인가 내용도 느낌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그러고 나니 남는 것은 같은 부류로 묶일 법한 와 뿐. 이감독 영화 중 흥행에 성공한 두 편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연히 나는 마케팅 담당들이 노리는 그렇고 그런 관객에 속했다. 와 을 만든 정통 멜로 감독이 엽기 학원물을 만든다면 어떨까, 그런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를 보고 나니 내 생각은 참으로 얄팍한 판단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이감독이 와 이라는 멜로영화를 만든 감독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정말 관심 있는 것은 멜로가 아니라 '금지된 욕망'이었다는 걸. 그걸 절절한 멜로로, 그래서 사회적·도덕적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거리낌 없이 흠뻑 빠져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었다는 걸.   둘째, 이감독의 가장 큰 경쟁력은 고품격 미장센이라고 생각했고, 이감독도 그것에 집착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 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동생의 약혼자와 격정적 욕망에 휩싸인다거나, 바람둥이 한량이 정절녀를 유혹하다 결국 사랑의 마수에 걸려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거나, 하는 이야기 전개보다 (물론 이야기 자체도 매력 있었지만) 인물들이 담긴 스크린 안의 색깔들 때문이었다. 무채색 톤으로 일관된 직선형 가구가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적막하고 단조로운 서현의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을 때, 옥빛 저고리에 쪽빛 치마로 꽁꽁 동여맸던 숙부인의 욕망이 핏빛 목도리(?)로 드러났을 때, 말 그대로 스크린에서 빛이 나던 강렬한 색채는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에서는 예쁜 화면이 하나도 없다. 핑크빛과 빨주노초파남보 총천연색이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물결치지만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이 아름답지 않고 촌스러운 원색의 퍼레이드 역시 색채의 연금술사 이감독이 의도한 바겠지만, 이거 너무한다 싶다. 이감독은 미장센을 중시하는, 그래서 스토리만큼이나 미장센이 중요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임엔 틀림없지만, 그것이 꼭 고품격(!)일 필요는 없는 감독이었는데, 나 혼자 착각한 거다.   셋째, 이감독은 점잖은 양반일 거라 생각했다. 나 은 비디오대여점에서 야한 영화로 분류되긴 하지만, 그래도 '점잖은 영화' '야하지만 천박하지는 않은 영화'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이감독이 관객 대중에게 '고품격 멜로(에로가 아닌) 감독'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이감독이 를 촬영하기 전 한 영화잡지와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감독은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막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본능에 충실하자"고도 했던 것 같다. 를 보고 나니 전에 했던 이감독 말이 진심이라면 이 양반 속으로 별별 상상 다 해본, 한 마디로 점잖지 못한 양반이다. 물론 점잖지 못한 만화가 원작이니 이감독이 원조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걸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로 점잖지 못하다.     이감독에 대한 야릇한 감탄   왜 '야릇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냐면, 를 보는 내내 '야릇하다'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묘하고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안 된다'고 한 모든 것들이 가능한, 그리고 권장되는 공간 무쓸모고등학교의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주인공 격인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와 외눈박이, 안소니 등등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갈 때까지 관객과 섞이지 못하고 생소하게 겉돈다. 각각의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개연성보다는 우연과 돌발상황에 기대 있고 캐릭터들의 일관성도 별로 없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평소 영화 보던 버릇 그대로 감상하다가는 낭패를 겪기 십상인 것이다. 반면 각각의 상황과 설정은 수없이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기호들로 가득 차 있어서 영화를 보는 동안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이렇게 골치 아픈 영화는 처음 본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이감독은 '본능에 충실'해서 '막 나가는' 영화를 만들었고, 자신의 가장 큰 경쟁력인 고품격 멜로를 버리고 유치하고 촌스러운 학원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유치함과 촌스러움, 과장되고 두서없는 이야기의 전개는 이감독이 의도한, 계산된 결과라는 것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야릇한 감탄과 더불어 짜증이 살짝 치밀었다. 품격을 버리고 유치한 척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방끈 긴 먹물의 잘난 척으로 보여서. 아마도 개봉 후 관객들이 비호감으로 완벽히 돌아선 이유 중에는, 이감독의 잘난 척에 대한 삐따닥한 반감도 한몫했을 것 같다. 이 영화가 관객과는 소통하지 못하고 평론가들하고만 소통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것도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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