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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1811~1886)♪

신문섭 |2006.10.01 11:18
조회 102 |추천 1

                    프란츠 리스트                 

          Franz von Liszt (1811.10.22 ~ 1886.7.31]

 

리스트는 1811년 10월 22일 헝가리의 라이딩그에서 태어나, 1886년 7월31일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19세기에 피아노 음악의 거장으로서, 또한 희귀한 연주 기교의 명인으로서 먼저 들 수 있는 사람이 리스트이다. 리스트는 화려한 연주가로서 전 구라파를 석권했으나, 그는 단지 한 피아니스트로 시종하기에는 너무나 풍운아의 기질과 패기가 넘쳤다고 보겠다. 이는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가, 교사, 평론가, 그리고 승려로서의 다양한 그의 생활 행각이 잘 입증하여 주고 있다. 리스트는 그야말로 19세기 낭만파 음악의 거장으로서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지 역사의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바그너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후세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 음악가라 하겠다.

 

 

리스트의 부친은 게스테르하지 후작의 토지관리인이었으며, 음악적인 재능도 있어서 피아노도 치고 첼로도 즐기는 사람이었다. 리스트는 6세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820년 9세 때 에덴부르크에서 독주회를 가져 천재의 출현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 결과 귀족들이 장학금을 대주어 1823년 비인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가족들과 같이 라이딩그를 떠나 비인으로 이사를 하였다. 비인에서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피아노 교칙본으로 유명한 K.체르니에게 피아노 지도를 받았고, 한편 A.살리에르에게 작곡이론을 배우고, 다시 파리로 가서 파에르와 라이하로부터 화성(和聲)을 배웠다. 다음해 파리에서 데뷔한 후 프랑스 각지로 연주여행을 하였고, 런던에서도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827년 여행길에서 부친을 여의고 수년 동안은 고난의 시기였으나, 그 동안에 체험한 7월혁명(1830), 여·제자 카롤린과의 사랑, 페티스, 쇼팽, 베를리오즈, 파가니니 등과의 교제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었다. 특히 파가니니와의 접촉으로 그의 연주는 종래 체르니의 스타일로부터 명기주의(名技主義)의 스타일로 전환하였다. 그 후 교향시 창조의 기반이 되는 문학적 교양을 쌓고, 1833년 22세 때 6세 연상인 말리 더그백작부인과 알게 되어 1835년 리스트와 부인은 제네바로 가서 동거생활에 들어가, 두 사람 사이에서 브랑딘, 코지마, 다니엘 등 세 아이가 태어났는데, 코지마는 후에 바그너의 부인이 되었다. 이 말리 더그부인과는 성격차이로 1839년경부터 불화가 잦아 1844년에는 끝내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1842년 러시아로 연주여행을 할 때 키에프에서 알게 된 카로리네 뷔트겐슈타인 후작부인과 다시 두 사람은 생활을 같이 하게 된다. 물론, 이러는 사이에도 리스트는 창작에 강한 의욕을 보여 연달아 작품을 썼고, 1838년경부터는 거장적인 연주가로서 빈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 일대를 무대로 한 연주여행을 하였으며, 이것은 그가 바이마르에 정주(定住)한 1847년까지 계속되었다. 그야말로 비인이나 베를린도 리스트가 석권해버리다시피 하여 퀘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는 그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연주 생활도 1847년 36세 때 카로리네 부인의 권고로 유럽 전역에 걸친 연주여행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바이마르에 정착하여 창작에만 전념하게 된다. 바이마르에서는 지휘자 ·작곡가 ·교육가 ·사회활동가로 폭넓게 활동하였으며, 지휘에서는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창작면에서도《3개의 연주회용 대연습곡》·《초절기교연습곡(超絶技巧練習曲)》·《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과 소나타 ·협주곡 등의 피아노곡,《파우스트교향곡》·《단테교향곡》·《전주곡》·《타소》·《마제파》·《오르페우스》·《이상(理想)》등의 교향시와 대표작을 연달아 내놓았다. 1861년 후작부인과의 결혼식 때문에 로마로 갔으나 부인 친척의 이의(異議)로 실패, 그 후 부인은 종교생활에 들어가고, 리스트도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 동안 흑의(黑衣)를 두르게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작품에는 종교성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69년 로마에서 바이마르로 돌아와서는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리스트는 낭만파 시대로서는 보기 드문 여러 방면에 걸쳐 폭넓은 작품을 쓴 다작가로서 여러 종류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리스트가 활약하던 때는 바야흐로 낭만주의가 무르익던 시대로서 특히, 그가 살던 파리는 여러 예술의 근원지로서 교류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문학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유고, 라마르티이느, 죠르쥬 상드등과 친교 함으로써 사상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여기에 리스트는 구성이 크고 복잡 다채로운 표현력을 갖는 관현악에 자기의 이상을 찾게 되어 드디어는 시적인 상념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교향시』라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피아노곡들은 19세기의 거장들이 갖는 어려운 연주 기교를 구사하여 화려한 효과를 내는 풍조를 따르고 있다. 19곡으로 된《헝가리안 랩소디(헝가리 광시곡)》, 12곡으로 된《초절 기교용 연습곡》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이러한 피아노 작품에서의 기교라든가 효과는, 동 시대는 물론 후세의 연주가나 작곡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밖에 리스트의 업적으로는 형식에 있어서 주제를 변용, 사용하여 전체의 곡을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등, 그리고 연주가로서, 교사로서의 공적, 또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의 재인식, 바흐, 그밖에 피아노 레퍼토리의 확대, 지휘에 있어서 바그너를 비롯한 동시대작 곡가의 작품은 물론 선배 대가들의 명곡을 소개하는 등, 그의 업적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리스트는 피아노 연주상의 명기주의의 완성과 표제음악의 확립이라는 음악사상 매우 중요한 공적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편곡까지 포함하여 방대한 수에 이르며 악종도 다양한데, 그 중심이 되는 것은 피아노곡과 교향시이다.

 


                                   리스트 자필악보

                                   리스트의 자필악보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페라하우스에 있는 리스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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