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Family Ties, 2006)
대한민국 / 드라마 / 113분 / 개봉 2006년 5월 18일
감독 : 김태용
출연 : 문소리(미라), 고두심(무신), 엄태웅(형철), 공효진(선경)
김혜옥(매자), 봉태규(경석), 정유미(채현)
[ 메인카피 ]
스캔들 넘치는 가족의 탄생
도.대.체 무슨 사이?
모이기만 하면 들썩이다! 사랑, 스캔들, 비밀
[ 하승보의 씨네필 ]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식적인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그렇게 벗어나있게 될 수있는 것은
논리와 상식으로 이해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더 넓은 마음이며, 그것이야말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
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그 상식적인 사랑을 가끔
더 넘어서거나 더 넓게 생각하는 일반적인 커플끼리의 사랑에서도
물론 가능한 것이겠으나,
감독은, 이 영화는 그러한 더 넓은 사랑은 아무래도
가족끼리 혹은 가족들 사이에서 혹은
가족이라 '묻지마' 받아들이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에게
가능한 아름다운 그림임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세 개다.
하나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문소리에게 어느날
군에 가서 제대하고도 5년 동안 집에 발도 들이지 않았던
말썽꾸러기 동생이 20년이나 연상의 여인(고두심)을
앤이랍시며 집에 데리고 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마음씨 착한' 문소리는 늘 그렇듯이 동생을 아무말없이
받아들이고 동생이 데리고 온 여자도 편안하게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보인다. 외롭게 홀로 살아가는 문소리에게
가족의 존재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겨나는 듯 하다.
그러나, 동생의 여인이 전에 살았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이 집에 찾아오면서 문소리의 그 드넓은 사랑의 끝을 만난다.
문소리는 말썽꾸러기 동생, 그 여인, 그 여인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까지 모두 집에서 나가라고 내민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까칠하고 독기어린 공효진이다.
혼자 살아가는 공효진은 바람끼 많은 엄마가 싫어
집을 나왔다. 엄마의 남자들도 짜증나고 그런 엄마도 짜증난다.
도대체 지지리 궁상들로만 보이는 이들의 연애로 가득찬 삶도
그렇고,
자신과 삐그덕거리는 애인이 다른 여자랑 만나는 것도
꼴보기 싫다.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하는 마음 있지만,
이들의 좁은 사랑이 왜 늘 그렇게 못나게 반복되는지
사람이 다르든 세대가 다르든
상관없이 복작대는 이런 사랑의 꼬라지가 공효진은
꼴보기가 싫은 것이다.
그렇게 꼴보기싫은 엄마에게 아들이 하나 있다.
공효진이 아저씨라 부르는 엄마의 남자가 엄마랑 만든 아이.
쥐어박고 화내고 짜증 만땅이지만, 하기싫대놓고도
공효진은 그 아이의 숙제를 엄마를 도와 같이 해주고
엄마의 부탁으로 엄마 대신 아이의 유치원 운동회에 가서
친누나처럼 같이 뛰고 웃고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죽는다.
그렇게 꼴보기 싫은 엄마가 죽고나서 공효진은 엄마가 남기고간
커다란 가방을 겨우 열어본다.
이전에 엄마가 남자친구와 싸웠는지,
김치와 같이 싸들고 온 가방이다.
공효진은 엄마를 쌀쌀맞게 나가라고 문전박대했지만,
엄마가 싸다준 김치로 밥을 혼자 우걱우걱 먹었었다.
과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 안엔 효진의 모든 추억이 담긴 물품들이 들어있다.
사진, 가지고 놀던 인형, 엄마랑 함께 찍은 사진 등
효진은 그때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엉엉 운다.
돌아가신 엄마의 사랑을 그렇게 물건들을 통해 확인한
자신이 너무 밉고 서러운듯 펑펑 운다.
세 번째 이야기.
봉태규가 나온다. 봉태규가 만나는 여자는
오지랖 절라 넓어서 온갖 사람들 고민 다 들어주고 모든 행사
다 참여하고, 심지어 돈까지 부담없이 빌려주는 사람.
주위 사람들한테 인기를 독차지하고 사람좋다 소리 듣지만
봉태규는 늘 외롭다.
자기만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사랑이 그리도 넓고 큰지
여자친구는 온갖 사람들한테 마구 마구 그 사랑 퍼주고 다니니까.
나만, 나의 것, 나만의 것
보통 사람들은 다들 그러지 않은가.
사랑은 1:1 대응이라고. 더 넓고 완전 넓은 거 그거 사람이
할 짓 아니라는 거.
그래서 그런 길 걸어간 사람들 예수님, 석가모니, 공자님 모두
우리가 존경하는 것이고.
그런 위대한 성현들 따라하며 사는 듯한 여자친구를
결국 견디지 못하고 헤어지려고 하지만,
봉태규는 헤어지자 해놓고도 그 여자친구를 따라
그녀의 집까지 가게 된다.
그녀가 아무리 싫다 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봉태규 이름이 공효진이 그리 미워하던 엄마와 그 아저씨의
아이 이름과 같다.
세월이 흘렀는지, 같이 살고 있는 공효진과 봉태규를 통해
우리는 엄마, 그 아저씨, 나아가 그 아이까지
사랑으로 감싸안게 된, 그리하여 가족으로 함께 하는
공효진과 그 아이를 보게 된다.
공효진이 엄마가 죽기 며칠 전,
그 '아저씨'네를 찾아가 와이프와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대뜸 "우리 엄마 사랑하세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아저씨는 "그래, 사랑한다." 라고 대답했고
효진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분노를 느끼며
연애가 그리도 대단해서 이리 사는 거냐고 한 마디 남기고
그 집을 나온 적이 있다.
그녀에게는, 아마도 가족이라는 정해진 테두리를
지키지 못하고 서로 넘나드는 엄마와 그 아저씨의 연애행각이
무책임하고 짜증 만땅으로 보였으리라.
그게 무엇이든 사랑이든 연애든 꼴보기 싫은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나,
무엇으로 인해 그리 되었든지 간에
혹자는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혹자는 팔자가 그래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으나,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듯한 속좁은 인간들 세상사
보는 것 같은 엄마와 그 아저씨의 사랑이
한없이 어리고 팔팔한 공효진의 눈에는 지지리 궁상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들" 이라고 보였던 엄마의 효진을 향한 사랑을
확인한 이후 소외되고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졌던 효진의 마음은
사랑으로 녹아내리고,
또 다시 그런 운명에 처할 것만 같은 그 아이에게로
그 녹아내린 사랑과 애정의 눈물이 흘러갔던 것이다.
그 아저씨가 제외된 것은,
어쩌면 더 큰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 아저씨는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했고,
다가갈 수 없는 선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의 모습은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들 모두의 모습이기에
그를 욕하고 나무라고 책임을 묻는 것은
이전에 엄마의 사랑을 지지리 궁상으로 보았던 효진에겐
일종의 회귀이자 번복이므로.
그 아이 봉태규가 누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
"누나는 엄마같이 구질구질 해. 맨날 연애나 하고."
누나는 그런 말을 한다.
"엄마는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정이 많으셨던 것야."
딸은 엄마의 삶을 살고 있고,
그 아들은 엄마의 삶을 살지 않을꺼라 하지만,
그 엄마 혹은 그 딸, 즉 자기 누나같이
오지랖이 넓어서 한 사람한테만 사랑 주지 못해서
연애나 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오지랖넓고 헤픈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다.
봉태규도 곧 "그들 모두"를 이해하게 되거나
혹은 이해하지 못해도 어쨌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봉태규에겐 가족이므로.
봉태규가 쫓아간 여자친구의 집은,
다름 아닌 그 옛날 문소리와 고두심 두 "마귀할망구들" 이
살고있는 집이다.
즉, 봉태규의 여자친구는
그 옛날 문소리네 집에 찾아왔던 고두심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
이었던 것이다.
집에 여자 셋 만 사는 금남의 집에 들어선 봉태규를
왕자처럼 대접하는 이들 이상한 세 모녀는
이미 옛날의 뻑적지근한 불유쾌함을 벗어던진듯
한 가족이 되어 그를 맞는다.
이들의 스토리를 모르는 봉태규이지만,
이상스럽게 보이는 두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는
여자친구를 분석하거나 따져보려 하지 않고
그냥 그 안으로 스스럼없이 편입되려고 하는듯 보인다.
왜냐하면,
막 말로 이미 볼꺼 안볼꺼 다 봤던 삶이고
말이 안되기로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다 나올 법한
그들의 삶에 스스로 이미 다들 적응이 된듯
아니면, 약간 더 나아가
이미 도가 다 튼듯, 도인 비스무리하게 삶에 통달한
이들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의 모습이
봉태규에게는 누나와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봉태규에겐
참 아름답게 보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썽꾸러기 문소리의남동생 엄태웅이
이미 한 가족이 된듯 김장김치를 담그며 하하호호 웃는
이들에게 또 그 옛날 그리했듯 들이닥친다.
이번에는 만삭이 된 어떤 여자를 하나 달고 왔다.
"그냥 지나치기가 뭣해서.. 좋은 사람이야.."
라고 둘러대지만,
보통 사람들 같으면 기가 막히고 가슴이 내려앉을 일이지만
문소리, 고두심에게 모두 이런 모습은 이미 한 차례 겪어본
삶의 질곡 내지는 경험에 다름 아니고,
문소리는 조용히 이들을 내쫓고 문을 걸어잠근다.
걸어잠근 문 뒤로 엄태웅의 고함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서 영화는 끝난다.
모르긴 해도,
분명히 이 사람들 다시 엄태웅을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겐 그 말썽꾸러기 엄태웅도 소중한 가족이며
그 가족의 사람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자, 그러나 현실 속의 사랑은 그닥 이런 모습만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과
조금만 다정하게 굴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어떤
작은 실수를 하기만 해도
함부로 쉽사리 살자 말자 죽네 사네 하는 세상이다.
사실, 그런 모습이 더 우리가 말하는 그 '사랑'의 모습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독점하고 소유하고
쟁취하는 사랑.
더 넓은 마음을 가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구태여 김태용 감독은 이런 종류의 사랑을
[ 가족 ] 으로 풀어냈을 것이다.
더 넓은 듯 더 아량있는 듯 더 이해하려는 듯
노력은 할지라도
마음에서 그리 못되고 질투하고 따져묻고 확인하고 점검하고
그리고 단속하는 그런 사랑은
사람으로 태어나 누군가와 결혼에 골인할 때까지
아니, 결혼한 이후라도
영원토록 막말로 세속적인 우리들 사람들에겐
당연한 모습들이다.
싸우고 지지고 볶고 그래도 더 넓은 맘을 가지게 되는 건
그게 가족이기 때문이건,
혹은 싸우고 지지고 볶고 그래도 더 넒게 이해하게 될 때
우리가 비로소 가족으로 더 크게 묶이고 함께일 수 있건간에
어울리지 않은 듯 보이는 무수히 많은 이상한 일들이
이 세상에 벌어지지만
그게 삶이며 그게 나의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내 것일때
용서와 이해, 관용과 더 큰 사랑으로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말을
감독인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무엇보다 대사다.
인물들이 치고 쳐내는 대사는 마치 지금 내 앞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양
생생하며 사실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적절히 생략과 암시를
느끼게 하는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사람에 대한 미움, 애정, 애증과 사랑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김태용 감독은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선을 드러내고 싶어
같은 씬을 여러 번 다른 각도에서 반복 촬영했다고 하는데,
편집의 호흡이 빠르지 않아 그러한 점은 피부로 와닿지 않으나
살아있는 대사와 사실적인 인물들의 행동,
이런 것들이 담겨진 좋은 그림을 통해
매우 정적이면서도 펄떡이는 멋진 영화를 만들어냈다.
나는 이 감독을 잘 모르고 있었으나,
여고괴담 2편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고괴담 2편 역시 공포영화라기보다는
인물의 심리적 선을 따라가는 차분한 대사와
아름다운 화면들로 잘 정리된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떤
기억이 떠올랐다.
이 때가 99년 이었는데
만 6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가 연출한 영화가
몇 편 없는데다, 상업적으로 개봉되어 주목을 받은 것은
여고괴담2편과 가족의 탄생 정도로 보여지는데
그 까닭은 순수히 내 생각이지만
빨리 어쨌든 재미나게 팔리는 영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자본주의 한국영화시스템에서
그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섬세하거나
많은 공을 들이는 아트웍 개념의 영화를 김태용 감독은
추구하는 게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가족의 탄생을 보면
참 정리가 잘 된 영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본 영화의 마케팅은 실패라는 것이다.
요즘은 마케팅이 영화의 성공을 좌우한다.
괴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살인의추억 이후 머머의 머머 하는 식으로 제목을
짓는 것이 유행인듯 보여지느데,
본 영화의 제목을 가족의 탄생으로 한 것은
명백한 실수다.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앞서거나 뒷서거나 어쨌든 사랑은 가족으로 이어지지만
가족이 탄생한다는 명제는 관객들이 듣고싶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슨 가족주의도 아니고 본질은,
많은 경우에 가족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히 사랑으로 아파했던 사람들이
사랑으로 회복되고 가족으로 그 사랑을 꽃피운다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핵심은 [ 용서와 화해, 관용과 받아들임 ] 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제목 역시 표면적인 것에 그치지 말고
좀 더 내포하고 응축할 수 있는 힘을 실었어야 했다.
아울러, 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을 지향하긴 하지만
결코 그 내용은 화기애애하고 즐겁지만은 않다.
오히려 바로 내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내밀한 정서와
삶을 일갈해본듯한 씁쓸함, 연민과 여백의 느낌
그리고 잔잔한 여운 등이 남아도는
끈적끈적한 영화다.
포스터는 밝게 웃는 모습들만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인 해피엔딩의정서를 극대화하려고 한 듯 보이지만,
오히려
영화를 제대로 포장하지못하고 영화를보고 난 사람들에겐
허탈하기 까지한 느낌을 준다.
활짝 웃으며 한 가족을 이룬 모습과 가족의 탄생이란 타이틀이
더해져
가문의 부활.. 류의 코미디 영화처럼 보여진다.
명백한 마케팅의 실패다.
오히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봉태규와 문소리, 고두심, 봉태규의 여자친구가
한강변에서 불꽃이 터지는 모습을 실루엣을 잡은
옥상 신을 메인으로 하는 게 더 나았다.
제목은, [ 꼭 껴안으세요 ] 정도로 하고.
프로듀싱의 이유 혹은 프로듀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늘 깨닫게 된다.
잘 된 영화도 중요하지만
일련의 정보들 속에서 영화소식을 접하게 되는 오늘날
미디어의 포화상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슴에 와닿는 말 한 마디 건네는 건
1시간 40분짜리 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 몇 초 단 몇 분의 순간에 스쳐지나가듯 하면서도
마음과 뇌리에 꽂히고 사로잡히는
멋진 그림과 말들인 것이다.
어쨌든, 영화 자체로는 참 잘 만든 영화이다.
따로 보이는 듯 하지만 나중에 엮이는 구성이
여전히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대사와 인물들의 과잉되지 않은 행동을
찬찬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랑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고 감동받을 수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인물들의 특정 상황 속 대사는 살아있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미처 마무리 되지 못한 듯 보이는
엄태웅이나 공효진의 그 아저씨와 그 아저씨의 가족,
잠깐 나왔다 사라져버린 류승범(효진의 애인)
등은 차라리 과감히 처음부터 빼버리던가
아니면 완벽히 다른 인물들처럼 연계성을 지닐 수 있도록
구성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 정도.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정서와 화면, 대사를 좋아하고 즐기는 탓에
이 영화는
내게는 몇 안되는 참 좋은 영화 베스트 5에 드는 수작이다.
보편적인 정서로 디테일한 구성을 통해
뭔가 삶의 어떤 원리나 가치를 깨닫게 만드는 것은
오직 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좋은 영화만이 가능한 일이자
좋은 영화의 미덕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탓이다.
[ 줄거리 ]
누가 보면 연인 사이라 오해할 만큼 다정한, 친구 같고 애인 같은 남매 미라(문소리)와 형철(엄태웅). 인생이 자유로운 형철은 5년 동안 소식 없다 불현듯 누나 미라를 찾아온다. 인생이 조금은 흐릿한 20살 연상녀인 무신(고두심)과 함께.. 똑 부러지는 인생을 꿈꾸던 미라는 사랑하는 동생 형철 그리고 동생이 사랑하는 여인 무신과의 아슬아슬,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한편, 리얼리스트 선경(공효진)은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김혜옥)때문에 인생이 조용할 날이 없다. 사랑이라면 만사 오케이인 엄마의 뒤치다꺼리 하다 보니 이리저리 치인 기억에 사랑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선경. 남자친구 준호(류승범)와의 애정전선에 낀 먹구름도 맑게 개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딸의 연애가 위태위태한데 매자는 왜 또 선경을 찾으시는지..
그리고 그 놈의 사랑 때문에 인생이 편할 날 없는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이 있다. 얼굴도 예쁘고 맘도 예쁜 채현이 넘치는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나누어주다 보니 정작 남자친구는 애정결핍증에 걸리고 만 기구한 커플이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경석. 참고 참다 둘 사이에 강수를 놓기로 하는데..과연 채현이 그 수에 걸려들까?
하루가 멀다 하고 웬~수처럼 으르렁대는 이들.. 사랑만으로도 복잡한데 이 7명은 여기저기서 또 얽히고 설킨 스캔들로 인생 들썩이기 일쑤다. 어쩌다 저렇게 엮이는지, 살짝 피곤해지려고 할 때. 꿈에도 생각지 못한 하나의 비밀이 이들에게 다가오는데.
사랑에, 스캔들에, 바람 잘 날 없는 이들 과연 찬란한 행복이 탄생할 수 있을까?
[ 홍성진의 영화해설 ]
홀로 분식집을 운영하는 미라네(문소리) 집에 5년 동안 소식이 끊긴 말썽 많은 동생(엄태웅)이 무려 스무살 연상의 여인(고두심)을 데리고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애인(류승범)과 결별 후 엄마(김혜옥)와 사별을 맞는 여성(공효진)의 이야기, 그리고 인정이 넘치는 여자친구(정유미) 때문에 스트레를 받는 청년(봉태규)의 이야기.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세 이야기가 후반부에 연결되는 독특한 형식의 드라마로, 혈연과 무관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가족'의 의미를 그렸다. 를 통해 데뷔했던 김태용 감독이 상업성을 의식하지 않고 연출한 두번째 작품.
참고 사항. 최초 시나리오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출연자의 변화가 생겼다. 고물상 역의 우현, 기차에서 싸우는 남자와 여자 역의 조희봉과 이은정 등은 영화 엔딩의 플랫폼 장면에만 잠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