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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윤이상과 동백림 사건

정동수 |2006.10.05 08:01
조회 64 |추천 0
젊은 시절의 백남준 (왼쪽) 과 윤이상 (오른쪽)


 

 

알게 모르게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름만 알고 실제로 어떤 업적이 있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시간에 뭍혀지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 이다

 

현대음악의 한획을 그엇다고 볼수있을정도로 윤이상 본인의 곡이 유럽에 알려졌을땐 굉장히 충격적이였고 '새로운것' 이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서양음악에 우리나라의 전통음악 작법을 도입시켜 동양적인 사상과 철학등을 담아내어 '낙양' '가사' '바라' 등의 제목으로 서양인들에겐 아주 새롭고 신선한 음악으로 다가왔었던 것이다 여튼 '현대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12음기법' 을 창안해내었던 '쇤베르크' 와 같이 거론되는 '현대음악' 의 중요한 위치를 가진 인물 이지만 '현대음악' 이라는 것의 특성상 워낙 난해하고 이해되기 어려운 음악이라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기때문에 아마 '윤이상' 이라는 이름 자체가 낮설기만 할듯 하다

 

통영이 고향인 그는 통영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일본에서 음악을 배우고 음악 선생님을 하며 지내다 독일로 유학길에 오른다 이미 그때 상당히 나이가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먼 타국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다름슈타트' 라는 음악제에 참여하여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되며 그당시 음악 공부를 위해 독일에 유학중이던 '백남준' 선생님과 만나 약 2주정도 함께 방을쓰며 서로의 예술관과 인생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했었다고 한다

 

당시 독일은 '서독' 과 '동독' 으로 나뉘어져있는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이였지만 '서독' 과 '동독' 의 왕래가 가능했었기 때문에 '서독' 에서는 '동독' 으로 가는 패키지 여행 상품 까지 나올정도로 어느정도의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독' 엔 '북한대사관' 이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북한에 있을 자신의 친구의 근황을 알기위해 편지를 보냈던것을 계기로 '윤이상' 과 그당시 독일에 있던 젊은 유학생들은 긍정적인 통일에 대한 생각을 품고 또 헤어진 자신의 친구나 가족의 소식을 알기위해 북한과 접촉을 하게 되었었다 그당시까지만 해도 경제사정은 남한 보다 북한이 더 좋았었기에 북한은 여행도 시켜주고 대접도 해주며 자신들의 사상을 투입시키려했으며 포섭하려고 하는등의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자리에 있던 남한의 유학생들은 정말 북한에 포섭되었던 인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저 '가벼운 호기심' '통일에 대한 희망' '친구와 가족의 소식을 알기위해' 라는 동기로 이루어진 인물들이였지만 일행중 한명이 청와대에 직접 자수를 하여 관련 유학생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와 재판을 받아야 됐었다 하지만 국제법상 자국내에 사람들을 체포해가는것은 위배되는 사항이였는데 그렇기때문에 정보원들을 보내 몰래 한국으로 귀국시켰지만 그 사실을 알게된 유럽쪽 국가에선 '인권이 없는 한국' 이라며 비난을 하였었고 독일측에선 압력을 가해 2년정도만의 모두 석방이 돼었긴 하지만 그 후유증이 너무 심해 아직까지도 많은 비난이 일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이용되고 조작되었다는 '동백림 사건' 은 얼마전 진실규명을 위해 진상위원회가 구축되어 당시 '간첩단' 이라고 칭하며 사형선고 까지 내렸었던 당시의 정부의 잘못을 들춰내기도 하였지만 그 그곳의 출신들은 후유증이 너무 심한탓에 병에 시달려야만 했었고 앞서 말한 '윤이상' 역시도 계속 병과 스트레스로 시달려야만 했었고 그 이후로 남한땅을 한번도 밟지 못한채 외국에서 숨을 거두셔야만 했었다 그가 남한에 올수있었던 기회가 있었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약속과 국민에 대한 사과를 요구 해왔었기 때문에 그 기회마저도 무산되어버리고 북한과의 관계도 끊어져버린탓에 그에겐 오직 하나였던 조국이 둘로 나뉘는것도 모자라 두군데 모두에게 버림받아버린 '상처받은 용' 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 이 그에게 붙게되었기도 하다 '윤이상 탄생 75주년 음악회' 는 일본에서 열렸었다

 

'동백림 사건' 에 관련해 가장 황당했던 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옥같은 시를 들려주었던 '천상병' 시인인데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던 사람의 수첩에 이름이 적혀있는것만으로 체포가 되었고 더군다나 천상병 시인은 주변인들에게 언제나 그렇듯이 오백원 천원정도의 막걸리값을 받고는 했는데 그것을 간첩의 뒤를 봐주는 댓가로 금품갈취까지 했다는 어이없는 죄목까지 더해져 갖은 고문으로 인해 심신이 망가져버렸다 (그 이후로는 죽었다는 소문만 흘렀었지만 어느날 길에 쓰러져있는것이 발견되 응급실로 실려가고 천상병 시인의 친구 여동생의 극진한 간호로 둘이 결혼하게 되어 같이 살며 간간히 작품활동을 하다 93년도에 돌아셨었다..)

 

이젠 고인이 되버린 '백남준' 선생님의 회고의 의하면 원래 '윤이상' 이라는 분은 '남한' '북한' 의 개념이 없었고 그저 '코리아' 로 기억하셨다고 한다 자꾸 잊는것만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나라가 '분단' 이 되었다는 것을 자꾸 잊는것만 같다 점점 시간이 흘러가고 새로운 세대들이 성장하면서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아픔을 자꾸 잊는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민족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다 그의 국적은 독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얼마나 잃어야 하는지 참 씁쓸한 마음이다 결국 한때 시끄럽게 했던 '동백림 사건' 은 시간속에 묻혀져버리는듯 하다 다시 재기 되어 진실을 규명하였지만 모두가 짐작했듯이 조작으로 밝혀지고 그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기집권당시 장기집권을 위한 조작이였던것으로 평가되 굴곡진 우리 과거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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