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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구현모 |2006.10.07 03:13
조회 169 |추천 3

한글날의 발자취

올해도 한글날은 국경일이 아닌 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렇게 한글날의 발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우리의 글인 ‘한글’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926년부터입니다. 그 해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에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학회)와 신문사가 공동 주최로 서울 식도원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이름도 한글날이 아닌 ‘가갸날’로 그 자리에서 정해져서 2년 간 그렇게 불러오다가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처음에 음력 9월 29일을 기념일로 잡은 것은 28년(1446) 9월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달’이라고 했으니 1일부터 29일 사이 어느 날짜인지 모르므로 그 달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게 1931년까지 매년 음력 9월 29일에 기념하다가 1932년부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바꾸어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하였습니다. 그때 기준이 된 달력은 ‘율리우스력’이었는데, 1934년부터는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에 따라 10월 28일로 날짜가 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 정책으로 광복 이전까지는 한글날 기념 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원본이 1940년 7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책의 정인지 서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上澣)”이라는 날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상한 즉 상순으로 날짜가 좁혀지게 되어서 상순의 마지막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한 것은 당시 조선어학회 회원 등 당대의 대표적인 국어학자들이 많은 연구와 논의를 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한 때 한글이 창제된 날이 1443년 12월 즉 양력으로 1444년 1월이므로 이 날을 한글날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미 굳어진 한글날을 또 다시 바꾸는 것은 혼란스럽고 이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1월 15일을 기념한다고 합니다.

광복이 된 후 1946년부터는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하고 공휴일로 공표하여 기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오랫동안 공휴일로 기념하다가 1991년부터는 경제단체의 요구로 공휴일 조정을 한 결과 국군의 날과 함께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1989년 6월에는 유네스코에서 ‘세종대왕 문맹퇴치상’을 제정하였는데, 이 상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고, 문맹퇴치에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의 노력을 격려하고 그 정신을 드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상의 이름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세종이 만든 한글이 그만큼 배우기가 쉬워서 문맹을 없애는 글이라는 사실을 세계가 인정한 셈입니다. 또한, 은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의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우리 민족처럼, 이처럼 우수하고 독창적인 문자를 가진 민족은 없습니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한글에 대한 가치를 되새길 기회마저 잃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한글날이 한글과 관련된 몇몇 사람들의 잔치 마당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글날은 마땅히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 ‘국경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 더 일함으로써 생산량을 늘리는 것보다 한글날 하루 동안만이라도 한글에 대한 고마움과 가치를 되새기며 민족적 자긍심을 갖고 세계화를 향해 우리의 힘을 모으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부터는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어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그려봅니다. 

 

출처 [김형배: 한글문화연대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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