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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너무나 프랑스적인... <프랑스적인 삶>

백혁현 |2006.10.07 11:10
조회 31 |추천 0

  소설가라면 한 번쯤 밴치 마킹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생길 소설이다. 한 나라의 근현대 정치사와 한 남자의 생애가 따로 또 같이 진행되는 모양이 흥미롭기 그지 없다. 프랑스에 비해 전혀 손색 없는 우여곡절의 정치지형을 가진 우리나라라면 이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소설이 탄생하게 되지 않을까... 소설은 세계대전 이후 샤를 드골에서 알랭 포에르, 조르주 퐁피두,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로 이어지는(우익과 좌익, 진보와 보수의 파노라마와도 같은) 프랑스의 정치인과 그들이 풍미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한 남자의 일생이 가지는 희노애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그 시대 우리 가족은 이러했다. 불쾌감을 주고 고루하고 반동적이고 너무나 슬픈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프랑스라는 나라와 닮아 있었다. 수치와 가난을 극복했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나라. 농부를 경멸하여 그들을 노동자로 만들고, 그 노동자들에게 기능적이지만 추한 건물로 꽉 들어찬 괴상한 도시를 건설하게 하여 지금은 아주 부자가 된 이 나라와 닮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의 기어박스는 삼단에서 사단으로 바뀌었다. 나라 전체가 자동 증속장치로 변속된 속력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고 할 만했다.”

 

  열 살이던 형의 죽음, 그 죽음을 전화로 통보받는 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형의 죽음을 듣고 부리나케 형의 장난감을 향해 돌진하는 여덟 살의 내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절대로 맥을 끊지 않으며 간간히 등장하는 프랑스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이야기... 그렇게 형의 죽음과 함께 웃음과 대화가 사라진 곳에서도 성장을 거듭해가는 나는 그저 빨리 이 집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수피르 가의 공간을 나누어 쓰는 사람은 넷이었다. 마티아스는 집요한 섹소폰 연주자, 헥토르는 치료 불가능한 기타리스트, 나는 이성적인 피아니스트, 시몬은 결코 베이시스트처럼 보이지 않는 베이시스트였다...”

 

  성에 눈을 뜨게 해주었던 친구의 어머니 마르트 로샤스를 통해 나는 집을 얻고,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시작한다. 꽤나 진보적이었고 거칠 것이 없었던 이들은 함께 밴드 활동을 했고, 68년 혁명의 중심에서 젊음을 발산했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게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나는 종종 열 살이라는 가볍기 그지없는 생의 순간에 성장을 멈춘, 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나보다 우월한 형의 위치에 영원히 박제된 듯한 형을 떠올린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 형, 나를 인생과 어른의 세계로 이끌어갔을 부르릉거리는 구명보트 같은 형... 떠나기 전에 적어도 한 번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고해주어다면 무척 좋았을 것이라고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 사이 몇 명의 여자와 교제를 하던 나는 결국 안나를 선택한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68혁명을 거치면서 분명하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나이지만, 여자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결국 욕조를 만드는 기업체를 가지고 있고 스포츠지를 발행하는 경영자를 아버지로 둔 안나를 선택하고 만다.

 

  “우리는 나란히 각자의 우주에 속해 있었다... 나는 좌익 신학을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반면에 안나는 정치라는 것을 레이스 짜는 기술 정도로 여겼다... 나는 혁명 이론가들의 책을 읽었고, 그녀는 격주로 발행되는 경제지 「엑스팡숑」지를 정기 구독했다... 사방 2.8미터의 네모난 침대만이 이렇듯 많은 불일치를 없애주고 그 차이를 줄일 수 있었다. 이 평범한 면적에서 우리의 육체가 이 난처한 상황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변신을 하게 되는 나... 아내는 아버지로부터 기업체를 물려받고 타고난 자본가의 기질을 맘껏 발산한다. 두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고(형의 이름을 따서 뱅상, 옛 여자친구의 이름을 따서 마리), 나는 그들을 돌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어느날 우연히 나의 아마추어적인 사진 작업에 흥미를 느낀 출판업자와 손을 잡고 책을 출간하게 되고, 그 책이 초베스트셀러에 등극하게 되면서 나는 또 한번 인생의 변화를 겪는다.

 

  “1985년 여름 소심한 사회 민주주의자 로랑 파비위스가 내각을 이끌던 시절에 시작된 『프랑스의 나무』는 자크 시라크가 총리에 지명된 지 두 달 뒤에 끝이 났다... 나는 이제 막 서른여덟 살이 되었다. 나는 나무 한가운데서 살고 있었다. 나의 아이들은 나를 믿지 않았다. 나의 장모는 애인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사회 반역자에게 투표를 했다. 나의 아내는 노사관계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르는 타락해지만 신중한 랍비의 두 팔에 안겨 오르가슴을 발견했다.”

 

  의도하지 않은 성공, 그리고 멀어져버린 아내와 두 아이, 어설프지만 꽤 지속되었던 오도를 거쳐 이제 마흔 살이 된 나...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내 안나의 죽음(에는 비밀스러운 부분도 있다)에 이어 안나가 운영하던 회사의 부채탕감을 위한 전재산을 처분해야만 하는 지경에 처하게 된 나...

 

  “... 이제 마흔 살이 되었지만 나의 감정은 여전히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와 다름없었다... 나는 한 번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궁핍을 모르고 살았다. 원한 것도 아니었으며 의도한 바도 아니어지만, 나는 가차없이 기회주의적인 한 시대의 순수한 산물이었다. 노동이 용기없는 사람들에게나 가치가 있을 뿐인 그런 시대의 산물이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다. 나는 생전 처음 노동을 해야했고 정원을 가꾸는 직업을 선택한다. 이미 결혼을 했던 아들은 일본인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떠났고, 딸은 정신병증을 나타내며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나는 이제 그렇게 온전하지 않은 정신상태의 딸을 데리고, 자신의 엄마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올랐던 산에 오른다.

 

  “아이를 하나 잃는 것은, 그것이 인생의 한 부분을 잃는 거라고 해도 물 불 따위의 시련으로 판결을 내리는 신명재판이다. 신과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나날의 시련이다. 어깨를 짓누르지는 않지만 훨씬 음흉하게 우리 자신의 내면을 누르고 가슴을 옥죄는 무게이며 끝나지 않는 고통이다.”

 

  정말이지 소설이 가져야 할 훌륭한 덕목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인간의 삶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도, 그 인간의 성장을 사회의 성장과 절묘하게 매칭시키고 있다는 점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한결같이 생생하다는 점도, 유려한 문장력이 뒷받침되어 인물과 사건의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을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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