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올라오는 신궁과 도화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노부인, 단영이었다.
사립문 앞에 서서 도원을 바라보며 꼼짝없이 서있기를 벌써 두 시진 째.
손님을 잘 모셔오라고 일러준 뒤 도화를 구름바위로 내려 보내곤, 굳어버린 망부석처럼, 그 자리 그대로 꼼짝없이 서 있었다.
평소 같으면 옆에서 궁시랑 거리며 잔소리라도 한마디 보태야 정상인 노인이지만, 지금은 말없이 부인 옆에 선 채로, 그저 뒷짐을 지고 끝없이 펼쳐진 운해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그는 간간히 알 수 없는 한숨을 운해 너머로 보태고 있다.
마치 노인의 한숨이 구름들을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진속에서 두개의 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하나는 그녀에게 너무나 친숙한 백색의 기.
백색의 기는 익숙한 동작으로 진을 속을 유영하는 중이었다. 차례로 절맥의 흐름을 헤집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작은 은빛 물고기가, 유속이 빠른 계곡의 물줄기를 역방향으로 힘있게 헤엄쳐 올라오듯 역동적이다. 단영은 그 기의 흐름이 흐뭇했는지, 내내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입꼬리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 백색의 기 옆으로 이어지는 붉은색의 기.
그 기를 감지하며 노부인의 주름진 아미가 미세하게 떨렸다.
백색의 기가 작은 은고기라면 붉은 색의 기는 상어의 기운이다. 가느다랗게 연결된 두개의 기는 환각의 늪과 화염의 결계를 이제 막 지나서 정상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자신의 피로 완성한 절진인 만큼, 단영은 마치 진이 몸의 일부인 마냥, 그 안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낼 수 있었다. 단영이 주시하던 붉은색의 기.
처음에는 불그스름한 선홍빛이었던 그 기는 정상을 향하며 점점 핏빛으로 진해지더니 이제는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이제 그 두개의 기가 마지막 관문을 막 벗어난 참이다.
드디어 도원의 입구가 열렸다.
마침내 그곳으로 두 인영이 모습을 드려냈다.
그중 작은 녀석이 엄마를 크게 부르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겐 이 사랑스러운 아들을 마주 안아 줄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저기 서있다.
노부인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세월의 상처를 담은 그녀의 노안에는, 끝을 없는 깊숙한 곳으로부터 울려오는 슬픔이 가득했다.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반길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고, 이런 날이 온다면 그 아이를 볼 때 웃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해왔다. 그리고 도화를 내려 보낸 후, 두 시진 내내 그리하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한영의 얼굴을 확인한 노부인의 얼굴엔, 오랫동안 놀라움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슬픔과 반가움이 차례로 스쳐갔다.
이 아이는 너무도 닮아있었다.
지금도 단영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기억속의 주인공.
그와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꼭 빼닮은 모습의 한영.
노부인의 눈가가 뜨거운 슬픔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영은 첫눈이 세상을 덮는 날이면 소리 없이 울음을 토한다.
한영의 얼굴을 확인한 백아의 얼굴에도 잠깐 동안 놀라움의 빛이 스치더니, 조용히 단영의 뒤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두 손을 감쌌다. 노부인의 어깨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으리라. 차마 다가설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선 채로 흐느끼고 있으리라.
노인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듯 말없이 그녀를 토닥였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놀란 듯 노부인의 옷깃을 붙잡고 멍하게 올려다보고 있는 도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도화야 손님을 여기까지 잘 모시고 와야지. 쯧쯧……. 저기에 서 있게 해서 되겠느냐.”
단영과 마찬가지로 도원의 입구에서, 한영 또한 꼼짝 않고 서있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리로 막 뛰어가려던 도화는 발길을 멈추어야 했다. 그 순간 석상처럼 굳어 있던 신궁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독기를 띤 눈에 이슬을 머금은 채로, 그녀는 세 사람을 향해 담담하게 걸어왔다.
아마도 한영 쪽이 조금은 더 용감한 것 같다.
이제는 손을 내밀어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거리다.
단영과 한영.
뚱뚱한 체격의 노부인과 미모의 젊은 여궁사.
두 사람은 젖은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긴 목소리로 젊은 여궁사가 먼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이모.”
“......”
노부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이모라는 단어가 그녀의 가슴에 박혔다.
얼굴과 체격만 닮은 게 아니었다. 목소리까지도 눈앞의 아이는 그 사람과 똑같다.
단영은 너무나 목이 메어, 차마 아이의 이름을 불러줄 수 없었다.
잠시 뒤 서글픔과 원망이 담긴 한영의 말이 이어졌다.
“날……. 그렇게 버려두고 간 나를, 한번은 찾아 올 줄 알았어. 아니,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기다렸어……. 하지만, 지난 20년간 당신은 단, 한번도……. 날 찾지 않았어.”
한번 터트린 봇물은 멈출 줄 몰랐다. 지난 세월 가슴에 묻어 두었던 분노와 증오를 그리고 묻고 싶었던 말들과 따지고 싶었던 말들을 이참에 다 쏟아 부으려는 듯 흐느낌을 눌러 참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직접 내 발로 찾아왔어. 왜 날 버려두고 간 건지, 변명이라도 들어야겠어. 난 이제 더 이상……. 당신 이름을 부르며 울다 지쳐 잠드는 아홉 살짜리 꼬마가 아닌데.......말이야.”
칼날 같은 한영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노부인의 심장을 아리며 틀어 박혔다.
단영은 떨리는 손을 뻗어, 앞에 서있는 젊은 여인의 얼굴을 더듬으며,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한영이……. 우리 한영이가 맞구나 내 ....... 아기…….”
이제 서야 단영은 지난 이십년간 참아왔던 가슴속의 말을 내뱉었다.
내 아기. 내 소중한 아기 영이…….
노부인의 주름 곳곳에서 안타까움이 밀려나왔다. 그녀의 두 눈은 이제 쉴 새 없이 슬픔을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읍읍-
온몸을 떨며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노부인.
잠시 동안 10년은 더 늙어 버린 것 같다.
사실 처음 도원 입구에서 노부인을 본 순간 한영의 마음은 이미 그녀를 용서했으리라.
이제는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단영의 얼굴에서, 그 눈빛에서 한영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그녀를 그리워했던 만큼, 그녀 또한 자신을 지난 세월 동안 애타게 그리워 해 왔었다는 것을. 한영은 단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것이 30년간 자기 자신에게도 속이려 했던 그녀의 진심일 것이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흑흑”
“…!!”
단영은 팔에 힘을 주어 서럽게 우는 아이를 더욱 꽉 안았다. 그때도 한품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아이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한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아이다.
지금 그 녀석이, 이십년간 그리워했던 내 소중한 아이가 품안에 있고
서러워 울고 있는 아이를 이제는 보듬어 줄 수 있다.
그 사람도, 단영의 가슴을 늘 아프게 하던 그 사람도 지금은 아마 웃고 있을 게다.
‘아아 언니……. 연화언니, 언니!’
노부인은 연화라는 이름을 가슴으로 애타게 부르며, 한영을 더욱 품에 끌어안았다.
* * *
소북의 저잣거리.
행인들은 하나같이 다들 긴장된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걸이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챙! 서걱!
갑자기 저쪽 골목 안에서 칼날이 맞부딪치는 쇳소리가 들렸다.
쏴아!
그 순간 거리를 메우고 있던 인파들이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모두들 ‘작은 소리라도 들리거든, 숨도 쉬지 말고 무조건 튀어야 산다!’라는 좌우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만큼 여기 소북은 위태롭고 살벌한 기운이 가득한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무림의 양대 축인 양지와 음지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파의 10대 고수 중의 하나로 이름 난 청정대인. 그리고 사파의 5대 지존 중 서열 2위의 환사 위제혁. 오랜 옛날 이 두 가문이 소북의 동쪽과 서쪽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후로부터, 이곳 소북 땅 위에서 끊임없는 암투와 혈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또한 정파의 천하통일이나 사파의 군림을 꿈꾸는 제3세력들의 지저분한 음모가, 항상 이곳 소북을 향해, 뱀의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음을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두 거물이 뿌리박고 있는 한, 소북이 정․사 세력의 균형점이자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늘 감도는 곳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청정대인은 조상의 묘가 대대로 모셔진 이곳 소북의 동쪽을 지켜내야 했다.
저 사파의 사악한 무리들이 같은 공간에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왔다. 가솔들과 제자들을 위험에 내몰더라도 이곳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이 정파의 운명이었고, 그의 자존심이었다.
환사라고 해서 그냥 오기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환사의 조부 그리고 다시 그 조부의 조부시절부터의 염원이었던 대규모 방어의 주술. 그 술법을 완성시킨 것이 환사 자신이다. 그리고 환사가 주술을 완성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이 소북 서쪽 땅 자체였다. 그에게 있어서 여기 소북은 앞으로 그가 죽을 자리이며, 그의 자손들을 보호해줄 울타리인 것이다. 여기 두 늙은이의 고집을 꺾기는 요원해 보인다. 고로 이 땅의 평화도 물 건너 간 듯 보인다.
여기 소북이 바로 단영과 백아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 * *
환사 위제혁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연화와 단영.
환사나 그의 막내딸 단영에게 있어서 큰 딸 연화는 일찍 죽은 아내대신이자,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의 생각이 깊은 연화.
그녀는, 괴팍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식사랑이 깊은 아버지 환사의 고단한 영혼의 쉼터였다.
고운 그 아이를 보고 있자면 환사는 피로 얼룩진 지난 세월의 상처를 보상받는 듯 했다.
연화는 딱히 주술이나 무공에는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현명하게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해냈다. 마음씀씀이가 부처처럼 자애로웠고 매사 지혜롭게 판단했다. 엄격한 규율로 집안 가솔들을 단속하는 통솔력도 있었다. 환사는 연화에게 억지로 주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나중에 이 일을 두고두고 자책하고 후회했지만, 그 당시 연화는 소질도 없었을 뿐더러, 배우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었다.
대신 막내딸 단영은 자신을 꼭 빼닮아 주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환사는 있는 힘을 다해 막내딸을 수련시켰다. 단영은 하나를 가르치면 백가지를 이해할 만큼 머리가 뛰어났고, 막히는 일이 있을 때는 삼일 밤낮을 매달려서라도 꼭 해 내고야 마는 고집과 끈기가 강한 아이였다. 이런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단영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환사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일취월장 하는 단영! 대신 어린 소녀가 겪었을 고생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언니 연화가 있었다. 비록 어머니가 없을지는 몰라도, 그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넘치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자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연화와 단영자매는 남들이 보기엔 모녀지간이라고 오해 할 만큼 정이 깊은 사이었다. 오죽하면 연화가 남편감 1순위로 아버지를 같이 모시고 살고, 동생을 친딸처럼 보살필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로 꼽았을까? 아무튼 환사는 팔자에도 없는 데릴사위를 들이는 호사를 누리며 단영을 점차 무림 최고의 술사로 성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큰 딸 연화가 임신을 하고, 딱 열 달 후 환사의 손녀딸이 태어났다.
새 생명이 주는 기쁨을 어디에다가 비하랴!
연화부부는 딸아이를 한영이라고 이름 지었다. 단영은 자신의 이름을 딴 조카를 누구보다도 예뻐했다. 그 아이는 모두의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었고, 지켜야할 소중한 것이 되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 하늘이 그들을 질투해서 일까. 유난히도 추웠던 그 겨울.
한영이 10살이 되던 해에, 백경에서 십오 년만의 정사대전이 벌어질 듯한 기미가 보였다.
그 곳은 소북과는 꽤 떨어진 곳이었다. 주위 정찰병들의 말로는, 벌써 이틀 전에 청정대인도 백경으로 휘하 고수들을 이끌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고 한다.
불길한 정세에 온 무림이 술렁이고 있었다.
환사역시 이대로 소북에 들어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칫하다 정사의 균형이 깨지는 날이면 지금까지 그가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리라. 결단을 내린 환사는 고심 끝에, 실전경험을 쌓게 할 목적으로 단영과 주력고수 백여 명을 데리고 백경으로 출발했다. 연화부부와 어린 한영은 가솔들과 함께 집에 남았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교활한 적들이 노리는 바였던 것이다.
환사가 떠나고 반나절 뒤였다. 제갈세가를 중심으로 한 오대세가 전체가 합심하여, 소북의 서쪽을 치고 들어왔다. 서성을 방어할 수 있는 고수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노린 공격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무차별 살상! 이곳을 멸문하는 것이 목표다.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을 계획으로 500여명의 고수가 돌진해 온다.
도저히 이를 막을 길이 없어 보였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온 세상이 함성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살타는 냄새와 혈향(血香)으로 가득했다.
안주인인 연화의 얼굴이 납빛으로 하얗게 질렸다.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 나간 낭군은 한 시진 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적의 칼에 가장 잔인하게 유린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옆에선 겁에 질린 종복들이 어서 피하시라고 눈물을 뿌리며 연신 재촉하고 있었다.
연화는 혀를 깨물며, 결심을 했다.
가장 먼저 믿을 만한 가솔을 시켜 한영을 지하의 비밀 토굴로 피신 시켰다.
적들이 벌써 큰문을 넘어 선 듯 했다. 이미 싸울 수 있는 고수들은 모두 떠난 후였다.
그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여기로 달려온다 해도 두 시진은 넘게 걸릴 것이다.
정파가 천하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며 옳은 길을 강조하던 오대세가.
그들의 손속은 두 눈이 절로 감길 만큼 잔인했다. 평범한 가솔들을 무참하게 죽이며 밀고 올라왔다. 그중에는 아이도 있었고, 노파도 있었으며 배에 생명을 담은 임산부도 있었다. 잔인하게 모두를 도륙했다. 피 비린내가 안쪽 내원까지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