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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효도.. 그리고 깨달음의 순간..

최지우 |2006.10.12 00:52
조회 33 |추천 0

 

기본은 SLR 클럽에 있던 글입니다. kmug 라는 곳에서 가져오셨다는군요.

 


 

 

 

낮 술 한잔 했습니다...

                                                                                                최기영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특별히 배운적도 없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 사진 잘 찍는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커서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특별히 수중에 든 돈이 없었기 때문에 군 제대 후 한 친구에게
20만원을 주고 디지털 카메라 라는 것을 손에 넣었습니다. dslr 도 아니고 반자동 보급형
디카였습니다. 그것을 갖고도 참 행복해 하면서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못된 아들들이 그렇듯이 커가면서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느라 일부러 아버지께 무관심 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처럼 카메라를
좋아하면서도, 잘 찍는다고 칭찬을 들으면서도 아버지의 카메라를 빌려서 찍고자 하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작년...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난 후에야 어머니께서 마음을 다잡으시고
유품을 정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 책장 밑 서랍에서 뽀얗게 먼지가 앉은 카메라
가방이 나왔고 그 가방 안에서 낡은 필름 카메라 하나가 나왔습니다. 당시 신혼이던 저는
dslr 을 하나 살까 고민하고 있었고 디지털 카메라가 뭔지, 필름 카메라가 뭔지 모르시던
어머니께서는 네가 가져다가 쓰면 좋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별 생각없이 가져왔습니다.

가져와서 보니 측광 장치도 동작을 하지 않고 있었고 렌즈 내부에는 얼룩도 많이 있었습니다.
수리점에 가져갔더니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 고장이면 수리 불가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당장 수십만원짜리 dslr 바디를 사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 수리를 부탁했습니다. 다행이도 잔고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몇 번 사용을 했고 괜찮은 사진도 몇 장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드는 필름값과 현상,인화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인화비용을 줄이기 위해 필름 스캐너도 알아 봤지만 너무 비싸더군요.그래서 아무리 아버지께서
쓰시던 카메라 라고 하지만 요즘이 어느 때인데...하면서 괜찮은 dslr 바디를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이 카메라가 얼마나 오래 된 녀석인지가 궁금해 졌습니다.
별 생각없이 pentax kx history 라고 구글링을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1975년도에 출시된
모델이더군요. 제가 1976년생입니다. 묘한 느낌에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카메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셨던 어머니께선 카메라를 제게 줄때 별 말씀이 없었고 저도 별다른 질문을 하진
않았었습니다.

제가 어머니 배속에 자리잡았다는 것을 아시고 일본 출장을 다녀 오시면서 제 사진을 찍겠다고
사갖고 오신 카메라는 기억하는데 이후에 카메라를 사신다고 말씀하셨던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래고 그 카메라가 그때 산 카메라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미워하면 더 잘 안다고 하죠. 최신 전자제품을 병적으로 좋아하셨던 아버지께서 만일 제가 태어난 이후에 카메라를 따로 구입 하셨다면 보다 최신 모델이었을 것이라는 걸 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1975년도에 출시된 카메라. 1976년도에 태어난 아들.

그랬습니다. 빨가둥이때 부터 제 성장과정을 두터운 앨범 여러권에 담았던, 그 수많은 사진들이 모두 지금 제 손에 있는 이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저를 바라봤던 아버지의 시선이었던 겁니다. 그 앨범속의 전 정말로 티없이 맑고 사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카메라를 통해 나름대로 많은 피사체를 담아봤던 전 압니다. 사진속에 담겨진 피사체의 모습은, 뷰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사의 시선이라는 것을요. 아버지께선 제가 커오는 수십년간 뷰파인더를 통해 저를 바라보시면서 그처럼 애정어린 시선을 제게 보내 주셨던 겁니다. 당연히 그 사진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찍었던 사진들일진데 오늘 이 순간까지 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실 책상에 붙어있는, 바로 그 카메라로 찍은 제 아내의 사진들을 바라봤습니다. 제 사촌동생이 사진을 보고, "평소 느끼는 언니보다 훨씬 예쁘고 사랑스럽다" 면서 감탄했던 그 사진입니다. 그 동생은 제가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제 아내를 바라보는 제 시선속의 아내를 본 것이죠. 그 사실이 연상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수십년동안, 그처럼 나를 오롯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던 아버지를, 사춘기때의 감정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그처럼 냉담하게 굴었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을 누군가 대못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도저히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카메라 가방을 들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을 탔습니다. 요즘 카메라들에 비해 유난히 컸기에 같이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품에 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숨쉬기 싫을 정도로 숨쉴때마다 가슴을 무엇이 찌르는 아픔에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서는 찬장에 있던 술병들을 꺼내서 목구멍에 들이 부었습니다.

낮 술 한잔 했습니다. 꽤 취했습니다.

이제와서 불효자니 뭐니, 나이 서른 넘어서 이제야 깨달았느니 뭐니 다 소용 없다는 거 잘 압니다.
대신에, 아버지께서 저를 바라봤던 그 뷰파인더로 제 가족을 바라볼 생각입니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제 아내를, 어머니를, 처가의 장인 장모님을, 그리고 언젠가 태어날 또 입양할 제 아이들을..모든 제 가족을 바라보고 그 시선을 기록으로 남길 생각입니다.

아내와 영화보러 가기로 약속한 날인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몽롱하게 취한 지금 이대로 오늘 하루가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지겹도록 듣는 말입니다. 살아계실 때 잘 해 드리십시요. 진부한 조언이라는 건 알지만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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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같은 음악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어 다행이랍니다.
아버지와는 음악이라는 취미로 함께 대화하고.. 할아버지와는 카메라라는 취미로 함께 대화하고..

음.. 어머니랑은.. 음.. 걍 수다 -_ -??
(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의 카메라 사진 세례로 사진이 싫으시다네요.. 하도 도망다닌
기억이 많으시다고.. 그래도 많이 알고 계시더라는 ㅎ )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된다. 아직 돌아가신 분이 없진 않지만 당연히 해야될일 못하고있는거 같은 기분이 드는 경우가 무척 많네요.

 아직 학생의 신분으로.. 유학까지 하면서 집을 힘들게 하고만 있지만..

열심히 해야될 때인거 같네요 ^^..; 지금으로써는 열심히 하는것만이 가장 큰 효도일지도 모르나

그거 한가지만이 아닌 참 여러방면에서 부모님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속썩이는 마찬가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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